걷는 부부의 이탈리아 여행(Final)

(2025.9.1-9.10)

by 밤안개

2025년 9월 10일 수요일

새벽부터 비가 옵니다. 이탈리아 9박 여행 중 처음 만나는 비입니다. 9시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 부부는 지금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Basilica of 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 안에 있습니다. 이 낯선 성당에 온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시간대 별로 예약(Time Slot)해야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은 11시 15분이고, 4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당 밖으로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약간 오한이 느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세상에! 책에서는 분명 촬영이 안 된 다고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댑니다. 저도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왼쪽부터 찍은 모습, 예수님만 맨 처음 순서에 넣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각 인물들의 손 모양을 보면 됩니다. 레오나르도의 친구 중에는 말 못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레오나르도는 이 친구를 통해서 수화법에 배우게 되었고, 수화를 응용하여 손만 보고도 성경 속 인물들이 누구에 해당하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표현하였습니다.



어제 스포르체스코성을 투어 할 땐 <론다니니 피에타>를 직접 못 보고 설명만 듣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오늘 오후 스포르체스코성 박물관에 다시 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박물관 안에서 동시에 경악했습니다.

예수님 얼굴과 겹쳐 보이는 미켈란젤로 얼굴

마리아 얼굴에 보이는 여인의 얼굴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조각된 여인상은 분명 두 명입니다 측면에 있는 여자와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여자가 이중으로 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죽기 전까지 이 작품 속에서 마리아 얼굴 속에 자신의 어머니 얼굴을 넣어둔 것입니다. 왼쪽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다비드>에서 표현된 것처럼 어떤 남자가 왼쪽 측면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보이고, 정면을 보는 또 다른 남성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수님과 본인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미스터리한 작품을 말년에 남겼을까요?

어린 시절 어머니 없이 성장하면서 교황과 군주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으며 한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미켈란젤로, 때로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던 천재 예술가, 죽을 것 같이 싫어했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를 4년 만에 완성했던 불굴의 사내, 본인 작품 값을 깎으려는 재력가를 향해 단호히 거부했던 불 같았던 사내, 이 사내는 중세 꽉 막혔던 어둠을 뚫고, 예술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르네상스에 왜 저런 이원적이고, 의문 가득 찬 작품을 만들다가 생(生)을 마쳤을까요?


<론다니니 피에타>를 계속 응시하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났습니다. 20평 남짓 공간에 딱 하나밖에 없는 크지도 않은 조각 하나 가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서 다시 어머니 품으로 가는 것 말고 더 얻을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가이드가 해주던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이 조각엔 배꼽이 없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결국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천재예술가가 말년에 가고 싶었던 곳은 결국 어머니 품이었습니다. 왜 너는 더 높이 오르려고 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했는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서 결국 어머니에게로 가는 것 그것보다 더 바랄게 무엇이 더 있겠는가?


17시 30분, 밀라노 말펜사공항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탑승할 대한항공 KE 928호는 22시에 밀라노를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9월 11일 16시 40분에 도착예정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1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은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 중 가장 스펙터클한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도시 3곳을 휘젓고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도시별로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봅니다.



로마

3일간 로마여행은 '바티칸, 로마시내, 교회와 황제' 3가지 테마여행이었습니다. 첫날 바티칸투어는 무려 6시간을 걸어 다녀야 했던 강행군 이었지만 국가 안에 국가 바티칸시국, 베드로대성당이 참 인상적 이였습니다. 미켈란젤로란 천재예술가의 시스티나성당 천장벽화, 피에타가 기억에 남고, 라파엘로 등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둘째 날 우리 부부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등을 걸었고,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트레비 분수에 가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셋째 날은 성당을 4군데 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각 성당에 얽힌 전설 등을 들으며 침이 꼴깍 넘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날 무엇보다도 콜로세움 내부를 별도의 티켓을 구매해서 둘러보았는데, 고대 로마 검투사와 동물, 검투사와 검투사끼리 서로 죽이는 것을 상상하며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피렌체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할 때 탔던 트랜이탈리아 열차는 엄청 편하고,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피렌체 숙소는 관광지가 몰려있는 두오모 바로 옆에 있었는데, 창 밖 소음이 심하고, 화장실이 불편했지만 모든 여행지가 숙소 근처에 몰려있어서 잠깐씩 숙소에 들어와 쉬었다가 다시 관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토의 종탑 계단을 오르고는 몸살기운으로 좀 힘들었지만 다음날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보는 두오모 야경을 보고는 두통이 말끔히 사라 졌습니다.


밀라노

밀라노는 전체적인 느낌이 2개 도시에 비해 차가운 느낌이지만 적응이 되니까 오히려 더 편했습니다. 실수로 잘못 주문해도 비웃음 당하지 않았고, 호텔 종업원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차번호와 도착시간까지 찍힌 카피(영수증 같이 생긴 종이)를 건너 주어서 신뢰감이 들었습니다. 밀라노 여행의 압권은 역시 <최후의 만찬>과 <론다니니 피에타>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15분간 짧게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북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했는데 입장하자마자 모두들 사진을 찍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감동을 주는 작품은 역시 오늘 본 <론다니니 피에타>입니다. 인생의 깊은 질문을 하는 노년의 미켈란젤로, 나는 마지막 그의 작품에서 인생의 큰 통찰을 얻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서,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갈 인간들이여! 뭐 그리 애써 생(生)을 깡그리 탕진하는가? 돈, 명예, 권력 모두 물거품과 같은 것, 너는 네가 온 곳을 다시 보고. 네가 처음 두 다리로 걸었을 때를 생각해 보고, 네 부모가 네게 준 사랑을 기억하라.


긴 여행이 끝났습니다. 친구들과 늘 여행하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부부가 함께 걷는 해외여행을 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아내도 그렇다고 하네요. 부부가 서로 좋다고 하니까 아쉬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년 또 이탈리아를 올 수 있기를 트래비 분수 앞에서 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곧 탑승이 시작됩니다. 비행기는 인천으로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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