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9.10)
2025년 9월 9일 월요일
밀라노는 ‘로마/피렌체’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듭니다. ‘로마/피렌체’는 역사적 관광지로서의 느낌이 있고, 사람들도 굉장히 밝고, 친절합니다.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닌데 눈치껏 이해해 주고, 관광객의 필요를 적절하게 맞춰주기도 해 줍니다. 이런 점에서 이 도시들은 연세 드신 분들이 편하게 유럽관광하시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밀라노는 좀 다릅니다. 차가운 도시라고나 할까요.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느낌이 듭니다. 상대방에 대해 격하게 호감을 보이지도 않고, 동양인이라고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손님과 주인, 본토인과 외국인의 경계를 넘으려 하지 않습니다. 처음엔 이런 태도가 불편할 수 있으나 이런 구분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 밀라노가 현대적이라면, ‘로마/피렌체’는 고전적이라고나 할까요.
오늘 아침은 숙소인근 Princi 베이커리에서 신선한 빵과 커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연이어 사람들이 빵을 사갑니다. 우리는 카푸치노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보다 양(量)을 조금 더 채워주네요. 사이즈는 아쉽지만 퀄리티는 그동안 먹던 커피와는 격이 다르네요. 산뜻하고, 참 신선합니다.
09시 브레라미술관(Pinacoteca di Brera) 관광
오전에 방문한 브레라미술관(Pinacoteca di Brera)은 예술적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입니다. 이 미술관은 롬바르디아 화파와 베네치아 화파의 그림을 중심으로 15세기 르네상스에서 19세기까지의 회화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주기도 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책에서 본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입맞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작품은 두 남녀가 뜨거운 키스를 하는 장면이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기념한 것으로 빨간색 스타킹과 하늘색 드레스로 두 국가의 국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시 밀라노 시내투어
오후 늦게 밀라노 시내 가이드투어가 진행되었습니다. 밀라노대성당,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라 스칼라 극장, 스포르체스코성 이렇게 네 곳을 둘러보는 투어입니다.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관광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임팩트 있게 밀라노 핵심지역을 돌아보면서 지역에 대한 소개, 이탈리아 통일, 예술, 문화 특히 스포르체스코성에서 아직도 계속 발굴 중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벽화에 얽힌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죽기 6일 전까지 조각했다는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관한 에피소드가 압권이었습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그의 인생 후기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나이 스무넷에 만든 베드로대성당에 있는 <피에타>가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인데 반해, 89세에 만들어진 이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예수님이 마리아를 엎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말년에 그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일찍 떠나버린 어머니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깊은 철학적 의미가 담긴 조각상으로 생각됩니다.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9일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다녔지만 머릿속에는 성당모습들과 수많은 그림들이 오버랩되면서 어느 것이 누구 작품인 것조차 헷갈립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들은 살아가면서 툭 하고 튀여 나올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난제들 앞에서 여행을 통해 느꼈던 감정과 배움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표지판이 되어줄 것을 믿습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기억은 기록으로 남습니다. 나의 글들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삶의 흔적으로 영원히 남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