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은 진화했지만, 왜 관객의 평은 갈리는가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이후 무려 13년 만에 내놓은 첩보 액션물, 영화 '휴민트'를 보고 왔습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든 첫 생각은 이게 내가 알던 첩보물이 맞나, 첩보의 탈을 쓴 휴먼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감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극장을 찾을 이유는 차고 넘쳤습니다.
지난번 '베테랑2' 개봉 당시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꽤 갈렸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시사회로 먼저 접했을 때만 해도 와 이거 대박이다, 액션 미쳤다 싶었는데 정작 개봉 후 관객 반응이 엇갈리는 걸 보며 꽤나 당황했었거든요. 이번 '휴민트' 역시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개봉 후 평들을 찾아보니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고 있더군요.
제 감상부터 먼저 정리하자면,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이 그동안 쌓아온 액션 연출의 정점에 가까운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어디까지 도구로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였습니다. 겉포장은 화려한 첩보 액션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베를린 세계관의 확장, 그러나 온도는 정반대
줄거리는 국경도시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합니다. 남한 국정원 요원 조과장과 북한 보위부 요원 박건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다 납치된 최선화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얽히고설키는 이야기죠. 스포일러가 크게 중요한 영화인가 싶긴 하지만, 영화를 보셨다는 가정하에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감독이 공식적으로 밝혔듯 이 작품은 전작 '베를린'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베를린' 마지막 장면에서 표종성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며 끝났던 걸 기억하실 텐데, 이번 영화에서 황치성과 박건의 대화 중 표종성이 직접 언급되기도 하죠. 남한 국정원 요원과 북한 공작원 커플이라는 기본 설정도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톤앤매너가 완전히 다릅니다. '베를린'이 차갑고 건조한 하드보일드였다면, '휴민트'는 훨씬 뜨겁고 감정적인 멜로 드라마의 정서가 강합니다. '베를린'이 표종성의 고독한 생존기가 주였다면, 이번에는 최선화를 둘러싼 인물들의 감정이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원래 초기 각본에서는 박건과 최선화가 연인이 아니라 외삼촌과 조카 사이였고 톤도 훨씬 밝았다고 합니다. 박정민, 조인성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지금처럼 좀 더 진중하고 비장한 방향으로 대본이 수정된 것이죠.
사람을 도구로 쓸 것인가, 존중할 것인가
제목인 '휴민트(HUMINT)'는 Human Intelligence의 약자로, 사람을 통해 직접 정보를 얻는 첩보 활동을 뜻합니다.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을 쓴다는 것, 뒤집어 생각하면 사람을 도구화한다는 말입니다. 영화는 이 단어를 서사의 중심에 놓습니다. 국가나 조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사람을 소모품이나 자원으로 취급할 때, 그 안의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죠.
영화 속 조과장과 박건은 처음엔 적대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둘 다 사람을 자원으로 쓰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최선화 역시 처음엔 단순한 정보원으로 취급받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점차 도구에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이야기는 전형적인 첩보극의 문법을 벗어납니다. 냉철해야 할 요원들이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명령보다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기 시작하죠.
이 지점이 호불호의 갈림길입니다. 어떤 관객은 첩보 영화라면 더 치밀하고 냉정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관객은 그 인간적인 모습이야말로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전반적인 흐름이 감정적이라는 비판도 이해는 가지만, 사람을 수단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존중할 것인가라는 주제 의식을 관통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로 느껴졌습니다.
타격감의 진수, 류승완표 액션
호불호가 갈리는 서사와 달리 액션만큼은 이견 없이 훌륭합니다. 액션 연출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는 확실히 증명해 냈습니다. 류승완표 액션의 특징은 아프게 맞는다는 데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저 절로 으 소리가 나올 정도의 타격감이 주특기죠.
초반 매음굴에서 조과장이 보여주는 일대다 액션은 시작하자마자 도파민이 돌게 만들었고, 중반부 박건과 국정원 요원 임대리의 격투 씬은 압권이었습니다. 계단 난간으로 떨어지고, 손가락이 꺾이고, 머리채 잡힌 채 매달려 있는 장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특히 후반부 거구의 외국인과 싸우는 2대 1 액션 장면은 성룡 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훨씬 비장하고 처절했습니다. 단순히 멋있게 싸우는 게 아니라 진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처절함이 느껴져서 몰입도가 상당했습니다. 타격음과 총격음 등 사운드 디테일도 훌륭해서 극장 사운드로 들었을 때 귀에 꽂히는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배우들이 만든 캐릭터의 입체감과 옥에 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모가디슈', '밀수'에 이어 류승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듯한 조인성 배우는 조과장 역을 맡아 비정한 첩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낭만과 약속을 믿는 구시대적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습니다. 첫 번째 휴민트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두 번째 휴민트인 최선화만큼은 어떻게든 지키려는 비장함, 난리통 속에서도 인간성을 붙잡으려는 내적 갈등이 긴 팔다리를 활용한 시원한 액션과 어우러져 좋았습니다.
박정민 배우가 연기한 박건은 차가운 엘리트 요원이지만 사랑 앞에 무너지는 인물입니다. 애정 씬 한번 없는데도 특유의 순애보 연기를 기가 막히게 살려냈습니다. 신세경 배우 역시 수동적인 존재에서 주체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잘 보여줬습니다. 박해준 배우의 악역 연기 역시 능글맞고 얄미우면서도 잘못 걸리면 큰일 나겠다 싶은 위압감을 잘 살려냈고요.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초반 식당에서 패티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신세경 배우가 열심히 한 건 알겠지만 너무 오글거려서, 영화를 좋게 본 저조차도 그 장면만큼은 흐린 눈을 하게 되더군요.
빛과 그림자, 그리고 친절해진 자막
연출 면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첩보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박건이 처음 등장할 때 어둠 속 실루엣으로 시작해 점차 밝은 곳으로 나오는 연출은 그가 어둠 속의 도구에서 감정을 가진 주체로 변화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해 멋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진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자막입니다. '베를린' 때는 북한 사투리와 외국어가 섞여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북한 말이 나올 때도 자막을 깔아줘서 스트레스 없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지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 있습니다. 제가 별 3.5개를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첩보물 특유의 쫄깃한 긴장감을 기대했다면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탐색전이 다소 느슨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사가 복잡한 척 판을 벌려놨지만, 결론적으로는 납치된 사람을 구하러 가는 단순한 이야기로 수렴해버려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가장 큰 호불호 포인트인 감정 과잉 역시 비판받을 만합니다. 냉철해야 할 첩보원들이 너무 감정에 휘둘린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저는 이를 시스템 속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받아들였지만, 거슬린다는 반응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류승완 감독 특유의 유머가 싹 빠져버렸다는 점입니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겁다 보니 숨 쉴 구멍이 없다는 게 단점으로 다가왔습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차가운 영화
그럼에도 이 영화는 꽤 매력적입니다. CG로 뒤덮인 액션이 난무하는 시대에 배우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땀 냄새나는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티켓값은 충분히 합니다. 류승완 유니버스가 점점 확장되는 느낌인데, 현재 '베테랑3'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는 소식도 들리더군요. 이준호 배우가 합류했고 천우희 배우도 검토 중이라니 기대해 볼 만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휴민트'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차가운 영화입니다. '베테랑2'가 단순한 척하지만 사실은 되게 복잡한 영화였다면, '휴민트'는 복잡한 척하지만 사실은 단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테랑2'의 평이 갈려서 이번엔 좀 더 쉽게 찍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류승완표 액션을 좋아하거나 짙은 감정선의 드라마를 선호하신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