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실 활줄에 담긴 비극, '왕과 사는 남자' 해석

왜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을 지켰을까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n4nXP-ipiQs

장항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이자 첫 사극 도전작인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습니다. 일단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명절 특수를 작정하고 노린, 가장 한국적인 흥행 공식을 충실하게 따른 작품입니다.


유해진, 유지태, 박지훈이라는 실패하기 힘든 든든한 배우 라인업에다가 적당히 웃음 포인트 심어두고, 마지막엔 눈물 콧물 쏙 빼놓는 감동 코드까지. 우리가 명절 특선 영화에서 수없이 봐왔던, 혹은 이제는 조금은 지겹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그 구성 그대로입니다.


이게 참 양날의 검인데요. 평소 영화 좀 본다 하시는 분들은 '아 또 이거야?' 싶을 정도로 진부할 수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다 같이 극장 나들이 가서 민망한 장면 없이 무난하게 즐기기에는 이만한 선택지가 또 없기도 하거든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으로, 정말 슴슴하게 보고 나왔고요.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자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간이 좀 덜 된 싱거운 음식 같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인 팩트에 영화적 상상력인 픽션을 더한 팩션 사극이고요,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빈틈을 채워나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서 제목부터 뜯어봐야 될 것 같은데요. 보통 사극에서는 왕과 평민의 관계를 다룰 때 '왕을 모시는', 혹은 '왕을 지키는' 같은 수직적인 관계를 그리잖아요.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죠. 모시는 게 아니라 같이 산다는 겁니다.


여기에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다 담겨있습니다. 왕을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 우리랑 똑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겠다는 감독의 의도인 거죠.


그래서 이 제목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왕과 동거하게 된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권력을 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된 왕 이홍위(단종의 본명)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유해진이 연기한 인물이 왕을 주군으로 대하기보다는 동거인으로서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는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고, 이걸 제목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457년, 청령포의 4개월

이 영화의 배경은 1457년 강원도 영월 청령포입니다. 숙부에게 왕위를 뺏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 온 16살의 어린 단종과, 그 마을의 촌장 엄흥도가 함께 보낸 마지막 4개월을 다루고 있죠. 한국 영화에서 단종의 유배 생활을 본격적으로 다룬 건 아마 이 작품이 처음일 겁니다.


계유정난이라는 거대한 피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 모든 걸 잃은 어린 왕과 마을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의 만남. 역사책에는 단 몇 줄로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했다' 정도만 기록된 이 인물이 도대체 왜 삼족이 멸해질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장항준 감독은 그 빈칸을 꽤 따뜻한 상상력으로 채워넣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하는 게 밥인데요. 식음을 전폐했던 단종이 마을사람들이 투박하지만 정성껏 차린 밥상을 받아들이는 순간, 왕과 백성 사이에 있던 벽이 무너집니다. 신분을 초월해서 함께 나누는 식사는 인간적인 유대감을 보여주더라고요.


장항준 감독도 인터뷰에서 "그 시대에 왕족과 산골 백성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장면을 더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역사의 엄격한 신분제 속에서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순간,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인 거죠.

역사적 배경

이제 이 영화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영화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어린 왕 단종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잘 모르고 봐도 무방하지만, 배경을 알고 보시면 박지훈 배우의 눈빛과 유지태의 위압감이 왜 그토록 숨막히게 다가오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제6대왕 단종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했습니다. 아버지 문종이 제위 2년 만에 급서하면서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르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조카를 압박했고, 결국 계유정난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조카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스스로 왕이 됩니다.


영화 초반에 잔혹하게 처형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사육신입니다.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이 돼서 능지처참에 극형을 당했죠. 금성대군은 단종의 숙부이자 수양대군의 동복동생인데요,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단종 복위를 시도하는 정축지변이라는 반란을 일으켰어요. 하지만 반란은 내부고발로 일찍 발각되어서 실패하고, 이 사건이 단종의 죽음을 앞당기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버립니다. 이 사건 이후 단종의 처지는 더욱 위태로워졌고요,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를 가게 됩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강원도 영월은 실제 단종의 유배지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험준한 산과 강이 나오는데, 실제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져 있고 뒤로는 험한 절벽이 막고 있어서 배를 타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천연 감옥과 같은 지형이었습니다. 왕권에서 완전히 단절된 단종의 처지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죠.


엄흥도는 실존인물이고요, 당시 강원도 영월지역의 호장이었습니다. 호장이라는 건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토착관리를 이야기합니다. 조선 왕조실록 현종실록 16권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노산군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가 곧바로 가서 곡을 하고 스스로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묘가 바로 그 묘입니다."


당시 세조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엄흥도는 아들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서 자신의 선산에 안장했어요.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엄흥도는 왜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을까? 단종이 유배되어 있었던 4개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엄흥도는 그런 선택을 했을까? 역사의 기록에는 단 몇 줄만 남아있는 이 공백을 장항준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내는 겁니다.


한명회는 계유정난과 단종 폐위 과정에서 수양대군을 적극적으로 도운 인물입니다. 영화에서는 수양대군, 그러니까 세조 대신 한명회가 주요 권력자로 등장하는데요. 역사적으로 한명회는 간신의 전형처럼 묘사되곤 하지만, 영화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재해석됩니다.


그런데 정작 단종 본인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거의 기록이 없습니다. 승자의 역사였기 때문이죠. 세조 측은 단종의 일상을 굳이 기록으로 남길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장항준 감독은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역사의 본질은 기득권의 서사가 아닌 뒤편에 있는 것들입니다. 단순히 승자와 패자로 나뉜 과거의 궤적이 아니라 실현되지 못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 작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입니다"라고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단종을 지키려 했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단종을 지키려고 했을까요? 여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명분과 정통성 때문인데요. 조선은 성리학, 그러니까 유교의 나라예요.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 장유유서, 그리고 적장자 계승 원칙입니다.


단종은 세종대왕의 맞손자이자 문종의 맏아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 적통이죠. 이렇게 깨끗한 혈통으로 즉위한 왕은 단종이 유일합니다. 반면 수양대군, 그러니까 세조는 삼촌이에요. 삼촌이 조카를 몰아내는 건 유교 윤리의 폐륜이자 국가 시스템을 부정하는 행위인 거죠.


당시 지식인들에게 단종 복위는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니라 무너진 도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을 겁니다. 유교 이념에서 적장자 계승은 절대적인 원칙이었고, 이를 깨는 것은 천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여겨졌던 거죠. 수양대군이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아 스스로 왕이 되자, 이는 명백한 찬탈이 되어버렸습니다. 유학자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죠.


두 번째는 세종의 유언이었습니다. 세종은 임종 직전에 어린 세손 단종을 잘 보필하라고 여러 차례 신신당부했습니다. 사육신을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유언을 받들어서 단종을 보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종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훈민정음을 만들게 하고 학문을 논하던 스승이자 은인이었거든요.


세 번째는 왕권주의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수양대군은 강력한 왕권을 원했습니다. 신하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죠.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그에게 절차나 법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신하들은 왕과 신하가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꿈꿨어요. 그런데 수양대군처럼 무력을 앞세운 독재자가 나타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와 국가 시스템이 위협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차라리 어리더라도 정통성 있는 단종을 모시고 신하들이 잘 보필해서 나라를 이끄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거죠.


마지막은 연민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삼촌이 어린 조카를 산속으로 쫓아내고 죽이려 한다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에 어긋나죠. 영화 속 백성들은 앞서 설명했던 그런 복잡한 관계나 성리학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애한테 저러면 천벌 받지"라는 마음과 반발심이 단종을 지키고 싶게 만드는 동력이었을 겁니다.


일반 백성들도 단종을 동정했다고 하는데요. 숙종 때 단종 복위를 논하면서 나온 말이 있는데, "단종의 일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백성이 없다"라는 말이 나왔었죠.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간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요,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뭐니뭐니 해도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사실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영화 전반적인 전개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뻔할 수 있는 전개를 배우들이 멱살 잡고 끌고 갑니다.


유해진 배우는 뭐 이제 연기 잘한다는 말이 입이 아플 정도죠. 다 아는 맛이라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초중반의 흐름을 특유의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로 꽉 채웁니다. 속물적인 촌장에서 점차 왕을 향한 연민과 충정을 품은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후반부에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까지 보고 있으면 왜 충무로에 유해진이라는 배우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지 다시 한번 납득하게 됩니다.


근데 한 가지 걱정이 됐던 건, 이 영화에서 유해진 배우의 대사 톤이 시종일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긁는 소리를 내시더라고요. 저러다가 목이 다 상하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을 그냥 괜히 한번 해봤습니다.


그리고 박지훈 배우는 진짜 놀라웠습니다. 솔직히 아이돌 출신 배우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저도 솔직히 말하면 약간은 그런 게 좀 있었고요.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그 편견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눈빛 연기를 보여줍니다.


사실 '약한 영웅'에서도 연시은이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한 단계 더 올라선 그런 느낌이 있더라고요. 역할을 위해서 15키로나 감량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화면에 잡히는 왜소한 몸과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텅 빈 표정이 단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과 섞이면서 점차 생기를 되찾고, 나중에는 왕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는 눈빛까지 보여주는데, 대사보다는 눈으로 말해야 하는 장면이 많을 텐데 그걸 아주 훌륭하게 소화를 했더라고요.


유지태 배우가 연기한 한명회는 그냥 화면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일부러 눈꼬리를 이렇게 위로 치켜올린 분장을 한 것 같던데, 평소 덩치는 산만 해도 인상은 순해 보였던 유지태 배우가 '와 저렇게 표독스럽고 무서워 보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새로웠습니다.

누에 실로 만든 활줄

그리고 영화적인 장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소재는 누에 실로 만든 활줄이었는데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엄흥도의 아들이 만든 이 활줄이 결국 단종의 목을 조르는 줄이 되잖아요.


이 소재가 인상 깊었던 이유를 설명을 해보자면, 첫 번째로 삶을 위한 도구가 죽음의 도구가 되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엄흥도의 아들이 그 활줄을 꼬았을 때는 산짐승이라도 잡아서 마을사람들 배를 불리고 싶다는 살리기 위한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가장 살리고 싶었던 사람의 숨을 끊는 도구로 쓰이게 됩니다.


두 번째는 관계의 끈입니다. 4개월 동안 지지고 볶으면서 왕과 백성이 맺은 끈끈한 관계가 마치 그 누에실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었을 텐데, 그 관계를 맺게 해준 물건으로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세 번째는 가장 인간적인 마무리를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사극에서 왕이 죽을 때는 사약을 받거나 자결을 강요당하거나 처참하게 살해를 당하는데, 단종은 적들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내가 신뢰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물건으로 편안하게 가는 걸 선택한 겁니다.


엄흥도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부탁이지만, 단종 입장에서는 가장 깊은 신뢰의 표현이었던 거죠. 어찌 보면 단종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주체적인 선택 아니었을까요.


결국 이 활줄 설정은 권력이라는 비정한 칼날 앞에서도 끝까지 서로의 삶을 위해 노력했던 그들의 관계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만든 삶의 도구로 마침표를 찍게 되는 아주 슬픈 결말을 보여주는 거죠.

아쉬운 점들

물론 아쉬운 점이 꽤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연출이 굉장히 촌스러워요. 특히 후반부에 번개 치는 장면도 나오고 이러는데, 거기서는 저도 모르게 탄식이 나오더라고요. 영화의 톤이 갑자기 튀는 느낌이라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서사적인 빌드업도 굉장히 약합니다. 마을 사람들과 단종의 유대감이 쌓이는 빌드업이 약한 느낌? 그러다 보니까 후반부에 감정이 터질 때 관객이 100% 동화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를 꼽자면 영화 초반에 마을사람들 캐릭터를 공들여서 소개해주거든요. 누구는 달리기가 빠르고, 누구는 요리를 잘하고. 저는 그래서 단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사람들이 각자의 특기를 살려서 뭔가 보여줄 줄 알았거든요. 그런 쾌감을 기대를 했는데, 후반부에는 마을사람들의 존재감이 그냥 사라져버리더라고요. 이런 디테일한 완성도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처럼 '왕과 사는 남자'는 아쉬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역사책에 숨겨진 따뜻하고도 슬픈 마음들을 스크린 위로 불러내는 작품입니다. 역사의 승자가 아닌 패자의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선택을 기억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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