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 후기와 해설

절대 검색 금지! 그냥 보세요!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ExvO9uiElWc



제7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 <시라트>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먼저 감상하고 온 지인들이 그 어떠한 정보도 찾아보지 말고 감상하라고 해서 정말 포스터 한 장만 보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음악 영화인가 싶다가도, 초반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시작하자마자 '시라트'라는 제목이 '지옥을 가로지르며 이승과 낙원을 연결하는 다리'를 의미한다는 설명이 나와서 오컬트물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평범한 로드무비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중후반부까지는 보는 내내 "대체 이건 무슨 영화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감상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올 때는 마치 뒤통수를 아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지더군요. 예측할 수 없었던 전개와 강렬한 메시지가 남긴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실종된 딸을 찾는 여정

스포일러가 없는 범위에서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드리자면, 광활한 모로코 사막 한가운데서 거대한 스피커로 테크노 음악이 울려 퍼지는 레이브 파티 현장이 나옵니다. 수백 명의 레이버들이 밤낮없이 춤추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루이스와 어린 아들 에스테반인데, 이들은 5개월 전 실종된 딸이자 누나인 마리나를 찾아 이곳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들이 파티를 해산시키면서 3차 대전 발발을 알리는 긴급 상황이 벌어집니다. 루이스 부자는 딸이 또 다른 레이브 파티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사막 깊숙이 향하는 레이버 무리를 따라나섭니다.

이제는 스포일러를 포함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혹시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은
이후 리뷰 내용은 영화를 감상한 후에 들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들으신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이어가보겠습니다.
'시라트'의 의미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영화의 제목인 '시라트'에 대해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시라트'는 이슬람교 기원설화에 등장하는 지옥을 가로질러 이승과 천국을 연결하는 다리를 의미합니다. 영화 초반 자막에서도 설명되듯이 이 다리는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고 묘사됩니다.


아랍어로는 '길' 또는 '방법'을 뜻하지만 이슬람 전통에서는 최후의 심판 날 모든 인간이 건너야 하는 지옥과 천국 사이의 다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이나 계산된 이성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믿음의 문제라고 하더군요.


영화가 시작되고 무려 31분이 지나서야 '시라트'라는 제목이 화면에 뜨는데, 이 제목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아, 이제부터 진짜 시험이 시작되는구나"라는 걸 직감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등장인물들이 가게 되는 그 사막 길이 바로 삶과 죽음의 경계, 즉 '시라트'라는 것을 선언하는 셈입니다.

반복되는 '선'의 이미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감독이 집요할 정도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선'의 이미지였습니다. 시라트라는 소재 자체도 다리를 의미하니까 일종의 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반 레이브 파티를 즐기던 군중들은 선을 지키지 않고 무질서하게 뒤섞여서 춤을 추다가 군대의 통제를 받고 선을 이루어 대피하게 됩니다. 주인공들은 대피 행렬인 선을 이탈해서 도망가게 되고, 그 뒤에 바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스팔트 도로의 중앙선입니다. 실선으로 그어져 있던 선은 점선으로 바뀌게 되고, 결국 아무런 선도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이 선의 이미지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변주됩니다. 루이스의 차가 강을 건너지 못해서 곤경에 처하는 장면에서 강 자체가 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레이버들의 트럭과 루이스의 차를 연결해서 겨우 강을 건너게 해주는 밧줄 역시 선의 이미지입니다.

군대를 피해서 위험천만한 산길을 운전해 가는데 그 길도 선이고, 이때 발생하는 에스테반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선에서 이탈하는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스테프가 에스테반의 머리를 스타일링 해주는 장면에서도 에스테반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선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 지뢰밭을 건너기 위해 생존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사람이 타지 않은 차를 먼저 보내고 타이어 자국을 따라 걷는 건데, 이 타이어 자국도 선의 이미지이고, 마지막에 생존자들이 기차를 타고 떠나는데 철로와 기차 모두 선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선에서 이탈한 주인공 일행이 결국 다시 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결국 또 다른 선 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래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체념 섞인 감독의 메시지가 느껴졌습니다.

레이브 파티의 의미

영화는 무려 17분간의 강렬한 레이브 파티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초반 시퀀스에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한 이유가 있겠죠.


레이브 파티는 쉽게 말해 전자 음악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춤을 추는 대규모 파티를 말하는데, 일반적인 클럽 파티와는 좀 다릅니다. 화려한 클럽 건물이 아니라 버려진 창고, 숲, 사막, 동굴 같은 허가받지 않거나 외진 곳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영화 속 배경이 사막인 것도 이런 레이브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겁니다.


음악도 가사가 있는 대중가요보다는 반복적이고 쿵쿵거리는 강한 비트가 주를 이루는데, 이런 음악은 사람을 무아지경 상태로 만들기 쉽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레이브 파티는 영화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생각을 멈추는 연습'입니다. 영화 결말 부분에서 지뢰밭을 살아남은 루이스의 비결이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는 거였습니다. 반면 이성적으로 계산하며 걸었던 비기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레이브 음악의 반복적인 비트는 사람을 무아지경의 상태로 이끕니다. 춤을 추는 동안에는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감각만 남습니다. 영화 초반의 긴 레이브 장면은 캐릭터와 관객들에게 감각에 몸을 맡기는 상태를 미리 체험하게 해줍니다. 결국 이 무아지경의 상태야말로 지옥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임을 암시하는 거대한 복선인 겁니다.


두 번째는 '종교 의식'으로서의 의미입니다. 제목 '시라트'가 종교적인 용어잖아요. 과거의 인간들은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의식을 올렸는데, 감독은 레이브 파티를 현대 사회의 종교 의식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라디오에서는 3차 대전 소식이 들려오고 세상은 흉흉한데, 미래가 없는 청춘들이 사막에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생명력을 불태우는 의식처럼 보이더군요.


세 번째는 '선의 경계를 지우는 행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레이브 파티는 선과 정반대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티장 안에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뒤엉킵니다. 여기서는 질서도, 줄도, 계급도 흐릿해집니다. 자유와 혼돈의 공간인 겁니다.

압도적 사운드의 힘

그리고 이 모든 걸 경험하게 만드는 건 바로 사운드인데요. 저는 평소에 테크노나 전자음악 이런 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막귀입니다만, 확실한 건 극장에서 봐야 이 사운드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겠다는 점은 알겠더군요.


영화의 상당 부분에서 음악이 꽉 채워지는데, 집에서 TV나 태블릿으로 보면 절대 이 느낌을 못 받을 겁니다. 초반 레이브 장면이 관객을 무아지경 상태로 안내하기 위한 장치라면, 극장의 빵빵한 사운드로 파티 음악을 함께 체감해야 더 효과적으로 이 작품의 세계관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냉혹한 현실의 부조리

이 영화에서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선함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선한 존재인 에스테반이 가장 먼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합니다. 이런 부조리함은 마지막 지뢰밭 장면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거기 남은 사람들은 쉽지 않은 여정 속에서도 서로를 버리지 않고 연대하는,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지뢰밭에 갇혀버린 상황에서도 서로 연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한 마음이 그들을 지뢰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안전한 지역까지 가야 하고, 그래서 차를 먼저 보내 안전한 길을 만들려 하지만 두 차 모두 폭발합니다. 계산되고 계획된 시도는 모두 실패합니다.


그때 루이스는 아무 말 없이 걸어 나가고 안전지대로 무사히 도착합니다. 비기는 같은 길을 따라갔지만 지뢰를 밟아 죽습니다.


이 부분에서 좀 어이없는 이야기긴 한데, 솔직히 저는 첫 지뢰 폭발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아직도 나는 이 영화를 완전히 파악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이 영화가 오컬트물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높은 확률로 뻥뻥 터져대는 지뢰밭 속에서 루이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뚜벅뚜벅 걸어서 안전지대까지 가고, 반면 그 뒤를 따르던 비기는 어이없이 죽어버리는 걸 보면서 순간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사실 루이스의 딸은 어떤 이유로 레이버들 때문에 사망하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안 루이스의 망령이 레이버들을 각종 고난에 빠트리고 끝내 지뢰밭으로 인도해서 하나하나 죽음으로 몰고 나가는 복수극인가 라는 상상을 잠깐 했습니다.


아무튼 헛소리였고,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스테프가 레이버에게 어떻게 건넜냐고 묻자 루이스는 "아무 생각 없이 걸었어"라고 대답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운명에 완전히 몸을 맡긴 상태. 이게 바로 영화가 말하는 '시라트'를 건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성적인 계산이나 통제가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스테프와 조쉬도 눈을 감고 루이스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무사히 건너게 되는데, 루이스가 보여준 그 '믿음의 길'을 의심 없이 따라갔기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권선징악' 같은 건 없습니다. 전쟁이나 재난 같은 거대한 폭력 앞에서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착한 마음씨가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부조리하고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감독이 정말 던지고 싶었던 질문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죽음 앞에서 선함은 의미 없으니 착하게 살라는 건가, 막 살라는 건가. 선을 이탈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통제에 순응하며 선 안으로 들어오라는 건가. 대체 이 영화는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동안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착하면 구원받는다'가 아니라,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것 같은 절망적인 세계에서도, 과연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더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친절하지 않지만 압도적인

정리하자면 <시라트>는 친절한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통쾌한 결말이나 명확한 해답, 혹은 따뜻한 휴머니즘을 원하신다면 보고 나서 화가 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사운드 체험을 원하시거나, 영화 속에 숨겨진 종교적, 철학적 상징들을 곱씹어 보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올해 최고의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특히 사운드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작품이라, 가능하면 사운드 시설이 빵빵한 극장에서 보시는 걸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비록 구원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라 해도, 서로를 구원하려는 그 시도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이 위태로운 세상을 건너게 해주는 유일한 다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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