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뼈의 사원' 후기와 해설

'28일 후'부터 이어진 대니 보일의 질문,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MxcqGOmYsd0


새로운 <28년 후> 트릴로지, 그 두 번째 이야기인 <28년 후: 뼈의 사원>을 보고 왔습니다. 1편이 다소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저는 꽤 인상 깊게 봤거든요. 그래서 기대를 잔뜩 안고 극장에 갔는데, 막상 보니까 1편이랑은 결이 좀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다 보고 나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를 꽤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완결된 한 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앞으로 이어질 3부작의 허리를 맡은 2막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시리즈 전체를 싹 다 복습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바로 직전 작품인 <28년 후> 정도는 꼭 보고 가시는 걸 권해드려요. 이야기가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안 보고 가시면 초반에 맥락을 잡느라 조금 당황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기괴하게 뒤틀린 세계

영화는 분노바이러스가 터지고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완전히 고립되어 버린 영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긴 했는데, 그 질서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롭거나 상식적인 모습은 절대 아니고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폭력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1편에서 살아남았던 소년 스파이크가 핑거스라는 기이한 생존자 집단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집단을 이끄는 리더가 바로 지미 크리스탈입니다.

보통 세상이 망하고 무법천지가 되면 매드맥스에 나오는 거친 갱단을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지미 크리스탈이 이끄는 핑거스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다 같이 알록달록한 원색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고, 심지어 서로를 전부 지미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러요. 밖에서는 온갖 끔찍하고 잔혹한 짓을 다 저지르고 다니면서, 옷 색깔이나 자기들끼리 하는 행동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어린아이 같습니다. 심지어 애들이 보는 프로그램인 텔레토비를 자주 언급하기도 하죠.


여기엔 꽤 비극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대재앙이 터졌을 때 지미 크리스탈은 어린아이였는데, 거실에서 평화롭게 텔레토비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가족들이 감염되면서 서로 물어뜯는 생지옥을 눈앞에서 겪은 겁니다.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서 지미의 정신연령은 가장 순수했던 그 유년기 시절에 딱 멈춰버린 거죠.


결국 그들이 입고 다니는 알록달록한 유니폼들은, 가장 순수했던 세계가 극단적인 폭력과 만나서 얼마나 끔찍하게 뒤틀려 버렸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인 셈입니다.

뼈의 사원

이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랄프 파인즈가 연기하는 켈슨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1편에서도 꽤 중요한 역할이었죠. 켈슨은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본인만의 방식으로 경건하게 장례를 치르고, 그 유골들을 모아 거대한 탑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이 영화의 부제이기도 한 '뼈의 사원'입니다.

켈슨은 삼손이라는 이름의 감염자와 조금씩 교감을 쌓아가면서 분노바이러스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고군분투하는데요. 사실 이 삼손이라는 캐릭터가 이번 영화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분명 감염자이긴 한데 우리가 알던 좀비랑은 뭔가 좀 달라요.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괴물도 아닌 아주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인물이거든요.


결국 이 영화는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괴물보다 더 잔혹해진 생존자들, 그리고 오히려 인간성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감염자라는 이 두 축이 뼈의 사원이라는 공간에서 강렬하게 충돌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좀 포함되어 있으니까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관람 후에 이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그리고 무겁게 느꼈던 주제는 바로 양면성이었습니다. 극 내내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거든요.


감염자인 삼손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잃어버렸던 언어와 감정을 조금씩 되찾아갑니다. 그런데 멀쩡한 인간인 지미 일당은 자신들의 폭력을 신앙처럼 포장하면서 갈수록 더 끔찍한 괴물이 되어가죠. 단순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괴물이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인간성을 버리기로 한 그 잔혹한 선택이 결국 인간을 진짜 괴물로 만든다는 걸 꼬집는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한 시각적인 답을 보여주는 장소가 바로 뼈의 사원이에요. 뼈라는 게 일차적으로는 죽음을 상징하지만, 무언가를 지탱하는 내부의 단단한 골격이기도 하잖아요.


똑같은 뼈로 쌓아 올린 공간인데도 켈슨에게 이곳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즉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메멘토 모리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지미 일당에게 이 사원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돼버리거든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공포의 상징물이자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화의 무대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똑같은 공간과 죽음의 기억을 두고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완전히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감독의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올드 닉

극 중에서 지미가 입버릇처럼 닉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장면들이 꽤 흥미롭습니다. 켈슨은 닉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게 사탄을 의미한다는 걸 바로 눈치채거든요. 저희한테는 좀 낯설 수 있는데 영국 영어 속어로 올드 닉이 악마나 사탄을 뜻한다고 하더라고요.


켈슨이 상처에 요오드를 잔뜩 발라서 피부가 붉게 변해가니까, 그걸 본 지미 일당들이 켈슨을 향해 올드 닉이라고 부르면서 기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탄은 진짜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아니에요. 지미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무지한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죠. 저기 저 끔찍한 사탄이 실존하니까 내가 너희를 구원해 줄 메시아가 맞다, 이렇게 포장하기 위해서 억지로 끼워 맞춘 허상인 겁니다.

결국 지미의 협박에 못 이겨서 켈슨이 사탄인 척 연기를 하며 지미 일당 앞에서 갑자기 기괴한 공연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극장에서 볼 때는 솔직히 좀 헛웃음이 나면서 당황스러웠는데, 켈슨 입장에서는 그냥 미친놈들 비위 적당히 맞춰주면서 일단 목숨부터 부지하려고 했던 절박한 몸부림이었겠죠. 게다가 세상이 망한 뒤에 자라난 핑거스 일당은 그런 식의 연극이나 퍼포먼스를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켈슨의 퍼포먼스가 정말 사탄의 강림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슬픈 촌극은 켈슨이 지미 일당 속에 잡혀있던 스파이크를 발견하면서 끝이 납니다. 결국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나서다가 지미의 손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든요.


겉보기에는 구원자처럼 행세하는 지미가 실은 가장 끔찍한 악마이고, 살기 위해 구차하게 사탄을 연기했던 켈슨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덕적이고 숭고한 희생을 선택한다는 기막힌 역설. 영화 내내 강조하던 양면성이라는 테마가 여기서 확 터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생 남의 죽음을 경건하게 기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려 했던 켈슨 본인은 너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런데 켈슨이 죽고 나서, 감염자인 삼손이 그 시신을 조심스럽게 안고 떠나잖아요. 숭고한 의사는 지독한 인간의 손에 살해당하고, 정작 괴물이라며 공포의 대상이었던 감염자가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이 아이러니한 씬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잔상으로 남았습니다.

새로운 창세기와 반복되는 역사

여기서 삼손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해보자면, 삼손이 처음으로 내뱉는 단어가 바로 달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을 내는 데다가 매일 모양이 바뀌는 특성이 있죠. 삼손에게 달은 아마도 일종의 거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온전한 인간도 아니고 완전히 이성을 잃은 괴물도 아닌, 그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달을 보면서 깨달은 거죠.


어떤 해석에서는 삼손의 궤적을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서사를 뒤집은 것으로 보기도 하던데, 저는 그게 꽤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이 가장 완벽했던 상태에서 타락해 버린 거라면 삼손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거든요. 오염된 괴물의 상태에서 출발했는데 오히려 언어를 깨치고, 옷을 챙겨 입고, 기억을 하나둘 되찾아가고 있으니까요. 완전히 무너진 세계에서 태어난 새로운 형태의 아담 같은 존재인 셈입니다.

이런 관점은 1편에서 좀비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등장했던 것과도 연결됩니다. 그 아이가 면역을 가진 일종의 이브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잖아요. 켈슨이 분노 바이러스가 일종의 치료 가능한 정신질환에 가깝다는 걸 밝혀냈으니, 삼손이 그 연구의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준다면 3편에서는 치료제 개발이라는 꽤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켈슨이 삼손에게 언어와 기억을 되찾게 하려는 시도가 일종의 새로운 창세기에 가깝다면, 삼손이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순간 이 세계는 선과 악, 인간과 괴물이라는 기준을 원점부터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 흐름을 생각하면 삼손은 인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보여주는 거대한 전조처럼 느껴집니다.


영화에 LP 음악이 자주 등장하는 연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세상이 다 망했는데 웬 아날로그 감성인가 싶지만, LP라는 매체의 특성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흠집이 나면 음악이 튀기도 하고 지지직거리는 탁한 잡음이 섞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바늘은 홈을 따라 묵묵히 계속 돌잖아요. 상처투성이가 된 과거의 기억들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살아가는 이 세계 생존자들의 질긴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한 면의 재생이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역사는 결국 반복된다는 영화의 씁쓸한 주제 의식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인류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이런 메시지들이 엔딩에서 킬리안 머피가 연기한 짐이 자기 딸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장면과 겹쳐지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시리즈의 시작인 28일 후부터 이 모든 생지옥을 겪어온 짐이 딸에게 굳이 역사를 가르쳐 준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지미 크리스탈처럼 트라우마에 갇혀 폭력의 역사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과거를 똑똑히 기억해서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가능성을 열어주겠다는 의지로 보였거든요.


인류는 과연 잔혹한 폭력의 역사를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그 생지옥 속에서도 어떻게든 지켜내려 했던 인간성을 기억할 것인가. 이게 아마도 이 시리즈의 총괄을 맡은 대니 보일 감독이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스파이크가 결국 짐 일행과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암시하면서 끝이 나는데, 진짜 3편에서 이 모든 떡밥이 어떻게 회수될지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트릴로지의 2편이라는 포지션 때문인지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깔끔한 완결성을 기대하셨다면 좀 허전하실 수도 있어요. 3편을 위한 거대한 판을 깔고 떡밥을 던지는 데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쓴 느낌이라, 1편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게다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팝콘 무비는 절대 아니고요. 던지는 질문들이 꽤 무겁고 1편을 안 보면 캐릭터들의 행동 배경이 충분히 전달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있는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스크린 너머로 던지는 질문은 곱씹을수록 매력적입니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문명이 무너진 이후에도 인간성은 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모든 게 무너진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후대에게 물려줘야 하는가.


1편을 인상 깊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충분히 시간 내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트릴로지의 징검다리라는 걸 알고 보시면, 이 영화가 깔아두는 무거운 질문들이 오히려 더 흥미로운 지적 유희로 느껴지실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편하게 감상 남겨주시면 같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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