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후기와 해설

차가운 우주를 데우는 우정의 온도

by 나이트 시네마

https://youtu.be/evVt0WdPQLY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개봉 전부터 워낙 입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이죠. 이건 무조건 IMAX로 봐야 한다, 비싼 티켓값이 절대 아깝지 않다며 다들 입을 모아 칭찬하길래 저도 호기심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왜 사람들이 그런 극찬을 쏟아냈는지 완벽하게 납득하고 돌아왔습니다.


초반 지구를 배경으로 할 때는 우리가 평소 스크린에서 보던 익숙한 화면 비율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그러다 주인공이 우주로 나아가는 순간, 화면 위아래가 시원하게 열리면서 거대한 스크린이 꽉 채워지는데 이게 정말 장관이더라고요. 단순히 화면이 커졌다기보다는 진짜 우주 한복판에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은 압도적인 감각을 안겨줍니다. 눈으로 화면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그 캄캄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기왕 극장에서 보실 거라면 무조건 IMAX 관람을 추천해 드립니다. 따로 쿠키 영상은 없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광활한 우주 이미지들이 IMAX 비율로 계속 펼쳐지니까 여운을 즐기며 끝까지 앉아계시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절망 속에서 던진 인류의 마지막 롱패스

그냥 흔하게 봐왔던 우주 생존물일 거라 짐작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웃다가 울고 감탄하다가 결국 묵직한 여운까지 안고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꽤나 절망적입니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이름의 미지의 생물체가 나타나 태양 에너지를 갉아먹기 시작하거든요. 이로 인해 지구는 급격히 빙하기에 접어들고 사실상 멸망의 카운트다운이 켜집니다.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짜낸 유일한 해결책은 딱 하나였습니다. 12광년이나 떨어진 다른 별로 우주선을 보내는 거였죠. 오직 그 별만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했기에, 도대체 이유가 뭔지 알아오라는 막중한 임무를 띤 여정이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맥락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미식축구에서 경기 막판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일 때 제발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던지는 기적의 롱패스를 헤일메리 패스라고 부르잖아요. 가톨릭 기도문인 성모송에서 유래한 이 단어처럼,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인류 입장에선 달리 방도가 없으니 목숨을 걸고 던져보는 처절한 도박인 셈입니다.


여기에 원작자 앤디 위어 특유의 재치 있는 말장난도 숨어있습니다. 성모송 원문이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님으로 시작하는데 영어로는 Full of grace잖아요. 극 중 우주선의 이름이 메리이고, 그 안에 탄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그레이스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에게 바치는 간절한 기도인 동시에, 그레이스를 태운 메리호의 마지막 승부라는 중의적인 장치가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고립된 우주를 꽉 채우는 라이언 고슬링의 진가

우주선 안에서 홀로 눈을 뜬 그레이스의 상황은 막막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같이 탄 동료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본인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심각한 기억상실증 상태니까요.


그레이스 역을 맡은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 그야말로 만개합니다. 사실 그레이스는 처음부터 인류를 구하겠다고 나선 대단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중학교 과학 선생님일 뿐이고, 죽는 게 너무 무서워서 끝까지 우주엔 안 가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강제로 등 떠밀려 온 연약한 인간이거든요.


이런 설정 탓에 라이언 고슬링은 텅 빈 우주선이라는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극의 8할 이상을 혼자 끌고 가야만 합니다. 두려움과 허탈함, 호기심, 자기혐오, 그리고 점차 싹트는 책임감까지 그 복잡다단한 감정선을 오롯이 혼자 소화해 내죠. 본인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던데, 스크린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마치 영화 터널에서 하정우 배우가 좁은 차 안에서 관객을 쥐락펴락했던 것처럼, 고슬링은 관객이 자신과 함께 그 고립된 우주선에 갇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1인극을 펼쳐 보입니다.

투명한 벽 너머로 전해지는 경이로운 교감

사실 이 영화가 흔한 SF 조난물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결의 서사로 진입하는 순간은 외계 생명체 로키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에리드 행성에서 온 로키는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숱하게 봐왔던 외계인의 모습과 전혀 다릅니다. 암모니아로 호흡하고 초고온과 초고압의 암흑 속에서 살기 때문에 눈이라는 기관 자체가 없죠. 대신 소리로 세상을 인식하고 화음으로 대화하며, 다리가 다섯 개 달린 돌거미 같은 기괴한 외형을 가졌습니다.


인간과 생물학적 접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이 낯선 존재가,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정이 가는 캐릭터로 탈바꿈합니다.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특유의 말투는 묘하게 귀엽고, 무엇보다 우정과 의리를 아는 너무나 매력적인 친구거든요. 로키 덕분에 한없이 차갑고 무섭기만 하던 우주가 어느새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둘은 서로의 대기 환경이 완전히 달라서 노출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투명한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소통해야만 하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도 바로 이 가림막 앞에서 이루어지는 포옹 씬이었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안아주고 싶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그저 투명한 벽 양쪽에 손을 맞대고 가만히 서로에게 몸을 기대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애틋한 포옹을 나누고 로키가 묻습니다. "포옹은 언제 끝나는 건지 어떻게 알아?" 이 순진한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더라고요. 눈도 없고 인간의 스킨십도 모르는 로키에게 포옹은 그저 머리로 배운 흉내일 겁니다. 언제 끝내야 하는지 감 자체가 없는 거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로키가 포옹의 끝을 모른다는 건 지금 이 연결을 끝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대를 떠나보내기 싫다는 가장 순수하고 깊은 감정을, 아이러니하게도 포옹의 문법조차 모르는 외계인이 보여준 겁니다.


이 투명한 가림막은 우리 삶의 관계들로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어차피 로키와 그레이스는 영원히 맨살을 부딪치며 살 수 없고 그들의 포옹은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무리 사랑하고 가까운 사이라 한들 상대의 내면을 100% 온전히 이해하는 완전한 접촉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언어, 각자의 상처라는 보이지 않는 가림막을 사이에 둔 채 살아갑니다. 서로가 잠든 사이 곁을 지켜주는 에리드 행성의 풍습도 이런 맥락을 같이 합니다. 잠을 잔다는 가장 무방비하고 취약한 상태를 미지의 존재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신뢰의 행위가 두 캐릭터를 깊이 치유해 줍니다. 결국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어 뒤에 숨은 진심과 감정만큼은 어떻게든 가림막을 넘어 번역된다는 걸 영화는 아름답게 증명해 냅니다.

마션과는 다른 질문, 생존이 아닌 삶의 완성

원작자와 각본가가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작 <마션>을 떠올리며 비교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주 한가운데 갇힌 과학자가 본인의 지식과 유머로 위기를 헤쳐 나간다는 큰 뼈대는 확실히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방향은 완전히 다릅니다. <마션>의 마크 와트니는 처음부터 멘탈이 무쇠처럼 단단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왜 화성에 남겨졌는지 정확히 알고, 지구와 통신하며 전 인류의 응원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도 있죠. 관객은 그를 보며 대단하다는 감탄과 함께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반면 헤일메리의 그레이스는 불안함 그 자체입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깨어났고, 지구로 메시지를 보내봤자 닿는 데만 11년이 걸리는 철저한 고립 상태입니다. 관객은 그를 보며 감탄하기보다는 저 사람 진짜 무섭고 외롭겠다며 연민과 공감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마션이 지구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생존기라면, 헤일메리는 한 사람이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이자 이 막막한 우주 끝에서도 유대와 우정이라는 게 성립할 수 있는가를 묻는 관계의 서사에 가깝습니다.

기꺼이 방향을 트는 위대한 용기

영화가 품고 있던 핵심적인 메시지는 후반부 그레이스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폭발합니다. 지구로 돌아가 수십억 명의 인류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틀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친구 로키 한 명을 구하러 갈 것인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그레이스는 주저 없이 로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립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 텅 빈 우주 한복판에서, 그레이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타의가 아닌 완벽한 자유의지로 선택을 내린 겁니다. 이 선택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그것이 영웅적인 사명감이 아니라 순수한 우정에서 우러나온 마음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구에 있을 땐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이 그저 버티듯 살아왔던 그레이스가 로키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용기를 낼 이유를 찾은 거죠.


살아있다는 건 거창한 임무를 완수하는 순간에 증명되는 게 아니라,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생겼을 때 완성된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생존은 혼자서도 아등바등할 수 있지만, 진정한 삶은 결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는 묵직한 메시지죠.


영화의 마지막, 그레이스가 에리드 행성에서 에리디언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 따뜻한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인류를 구원한 거대한 영웅의 서사가 다시 소박한 교실의 일상으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행위로 돌아간다는 것이 퍽 감동적이더라고요.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거대한 위로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36분에 달하다 보니 중반부 서사가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고, 특히 결말부로 갈수록 호흡이 꽤 길게 늘어집니다.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이러고 있네? 싶을 정도로 엔딩이 여러 겹 덧대어진 것 같은 피로감을 느끼셨다는 의견들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보면, 이 긴 호흡 덕분에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가 차곡차곡 깊이 있게 쌓일 수 있었고, 후반부의 그 엄청난 선택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관객에게 꼭 전달하고 싶었던 그 거대한 감정의 파도에 도달하기 위해 기꺼이 치러야 했던 비용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자잘한 단점들쯤은 그냥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가슴 벅찬 연대를 경험하게 해 준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우주 배경의 SF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유독 요즘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아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관람해 보시길 권합니다. 아득히 먼 우주 끝에서도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맞닿을 수 있고, 그 작고 소중한 연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내 삶의 방향마저 틀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주 큰 위로가 될 테니까요. 오랜만에 과학의 차가움을 우정이라는 따뜻한 온기로 녹여낸 영화를 만나서 글을 쓰는 내내 저도 참 행복했습니다.


영화를 보신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주시면 저도 읽어보며 새로운 시각을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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