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트로피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이번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직장인들에겐 참 가혹한 시간대에 열렸죠. 저 역시 한참 업무를 보던 중이라 본방 사수는 꿈도 못 꾸고 틈틈이 뉴스로만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뒤늦게 시상식을 쭉 보았는데, 올해 오스카는 유독 스크린 안팎으로 곱씹어볼 만한 흥미로운, 때로는 씁쓸한 장면들이 꽤 많았습니다. 단순히 누가 상을 받았느냐 보다는, 이번 시상식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순간들과 비하인드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의 영리한 한 방
가장 시선을 끌었던 건 단연 2년 연속 호스트를 맡은 코난 오브라이언이었습니다. 사전 녹화된 오프닝부터 그야말로 칼을 갈았더군요. 영화 <웨폰>의 글래디스로 분장해 올해 작품상 후보작들의 세트장을 미친 듯이 누비는 속도감과 에너지는 시상식 초반의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감탄했던 건 티모시 샬라메 발언 논란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상식 직전 발레나 오페라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티모시의 인터뷰가 예술계의 공분을 샀었죠. 당사자가 턱밑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이 민감한 이슈를 어떻게 건드릴까 싶었는데, 코난은 정면 돌파를 택했습니다. 오늘 보안이 유독 삼엄한 건 오페라와 발레 커뮤니티의 공격 때문이라고 툭 던진 뒤, 그들이 진짜 화난 이유는 티모시가 재즈를 빼먹었기 때문이라는 펀치라인을 꽂아버렸습니다. 객석은 초토화가 됐고, 카메라에 잡힌 티모시 샬라메 역시 여유롭게 빵 터진 모습이었습니다.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완벽한 오프닝이었죠.
그러면서도 요즘 같은 시대에 낙관주의야말로 가장 희귀해진 덕목이라며, AI와 스트리밍의 파도 속에서 영화를 회복력의 상징으로 바라보자는 진심 어린 찬사로 마무리하는 대목에선 노련한 방송인의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무거웠던 침묵을 깬 하비에르 바르뎀
내내 유쾌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올해 오스카는 전반적으로 전쟁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해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가 수상한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시상자로 나선 하비에르 바르뎀이 이 흐름을 깼습니다.
준비된 멘트를 시작하기 전, 마이크에 대고 짧고 단호하게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이라고 외쳤습니다. 가슴에 달고 나온 빨간 배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당시 오스카 무대에서 달았던 바로 그 배지였죠.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객석에선 즉각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고, 억눌려 있던 무거운 공기가 환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필버그가 환호한 무대, 그러나 아카데미의 옹졸함
이번 시상식에서 가장 비현실적으로 다가온 순간은 단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무대였습니다.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한국 전통 퍼포먼스가 펼쳐지는데, 객석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천진난만하게 응원봉을 흔드는 장면은 묘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급부상한 신인 체이스 인피니티 역시 시선을 강탈했죠. 과거 케이팝 커버 댄스 팀을 직접 꾸렸을 정도로 찐팬인 그가 꿈의 무대에서 K팝 콘서트를 즐기듯 방방 뛰는 모습은 무척이나 유쾌했습니다.
결과도 압도적이었습니다. '골든'이 오스카 역사상 최초의 K팝 기반 수상곡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주제가상을 거머쥐었고, 테디박을 비롯한 작곡진들은 이 부문 최초 한국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까지 2관왕을 차지한 무대 위에서 매기 강 감독은 자신과 닮은 얼굴의 아이들이 스크린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더 이상 오래 기다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애니메이션 장르를 늘 옹호해 온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가장 먼저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이 역사적 성취를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벅찬 순간에 아카데미는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습니다. '골든'팀 작곡가 이재 님이 과거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놀림받던 시절을 회상하며 끈기와 회복력에 대한 소감을 이어가던 중, 다른 작곡가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 틈을 타 오케스트라 음악을 엄청난 볼륨으로 틀어 말을 끊어버렸습니다. 평소 다양성과 포용성을 그토록 부르짖던 주최 측이 아시아 창작자들의 역사적인 순간 앞에서는 이토록 둔감하고 옹졸할 수 있는지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마이클 B 조던의 낭만
치열했던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은 씨너스의 마이클 B 조던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쌍둥이 캐릭터를 연기해 주연상을 따낸 그는 흑인 선배들에게 헌사를 바치며, 아직도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할리베리 한 명뿐이라는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시상식 직후의 행보였습니다. 턱시도를 입고 그 무거운 트로피를 든 채 인앤아웃 버거로 직행해 카운터에서 사인을 해주는 소탈한 모습, 그리고 인생 영화로 주저 없이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를 꼽는 반전 매력은 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죠.
디카프리오 효과
감독상 부문에선 재밌는 평행이론이 화제였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로 마침내 오스카를 품에 안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덕분인데요. 제임스 카메론, 마틴 스코세이지, 그리고 PTA까지. 번번이 고배를 마시던 거장들이 생애 첫 감독상을 받을 때마다 그 중심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으로 있었다는 이른바 디카프리오 효과 밈입니다. 정작 본인은 <레버넌트> 단 한 번 수상에 그쳤다는 점이 묘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남우조연상 숀 펜의 행방
같은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아 연기상 3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숀 펜의 빈자리도 묵직한 서사를 남겼습니다. <데드맨 워킹>과 <아이엠쌤> 때도 시상식에 불참했던 그는 이번에도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다큐멘터리 <슈퍼파워>를 만들고 자신의 첫 트로피까지 건넸던 그에게, 우크라이나 철도공사 CEO는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받은 철도 객차의 강철로 만든 트로피를 선물했습니다. 수백만 명을 대피시킨 강철을 무기가 아닌 감사의 징표로 만들었다는 뒷면에 새겨진 문구는 그 어떤 황금 트로피보다 빛났습니다.
화려한 장막 뒤의 위선과 할리우드의 위기
축제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돌비 극장의 씁쓸한 현실이 온라인을 덮쳤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객석 바닥과 복도에 버려진 생수병과 과자 상자들이 뒹구는 난장판 사진이 공개된 겁니다. 스크린 안팎에서 환경과 도덕을 설파하던 영화계 인사들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비판이 쏟아졌죠. 일반 초청객 좌석이라는 변명이나 쓰레기통 부족 탓이라는 해명도 분노한 여론을 달래진 못했습니다.
더 심각한 건 산업적인 위기입니다. 올해 작품상 후보 10편 중 LA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주로 촬영되거나 제작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습니다. LA 지역 촬영 일수는 3년 만에 반토막이 났고, 현장 인력 4만 천 명이 업계를 떠났습니다. 현장에서 기술을 전수하던 도제 시스템은 붕괴했고, 스튜디오들은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스트리밍 시대에 맞춰 합병과 비용 절감에만 매달리며 세제 혜택을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이 산산조각 나 흩어지고 있다는 현장의 탄식은 꽤나 섬뜩하게 들립니다.
시청률 지표 역시 뼈아픕니다. 시청자 수는 202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젊은 층 이탈률은 작년 대비 14%나 늘었습니다. 서너 시간짜리 생방송을 챙겨보기보다 시상식 직후 쏟아지는 소셜 미디어의 숏폼 클립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트렌드가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실제로 SNS 노출수는 1억 8천만 건으로 폭증했죠. 코난의 하드캐리가 없었다면 잦은 기술적 결함 속에서 묻혀버렸을 방송이라는 평가마저 나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오스카를 보는 이유
아쉬운 점도 많고 구조적인 위기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98회 아카데미는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이 영화를 썼다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고백, 흑인 선배들을 향한 마이클 B 조던의 뜨거운 외침, 그리고 자신과 닮은 관객들을 향해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 매기 강 감독의 눈물까지. 위기와 논란 속에서도 우리가 매년 이 거대한 쇼를 찾아보는 이유는 결국 그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오는 창작자들의 진심 어린 울림 때문일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여러분은 어느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깊은 여운을 남긴 순간이나, 혹은 못내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