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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을린 사랑> 깊이 보기

드니 빌뇌브 감독의 숨겨진 걸작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OY4cv1SBr10

최근 '듄'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 하지만 저에게는 한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 별점 2개를 준 것으로 인해 작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시카리오'에 그런 평을 할 수 있느냐, 혹시 드니 빌뇌브 감독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죠. 물론 저는 드니 빌뇌브 감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컨택트'나 '듄' 시리즈는 굉장히 인상 깊게 감상했습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전작들을 줄줄이 언급하며 이 작품은 봤는지, 저 작품은 어떤지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영화가 바로 '그을린 사랑'이었습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을 싫어한다는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그을린 사랑'을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이 영화는 결말이 워낙 충격적이니, 반드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감상해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언젠가 한 번쯤 봐야 할 영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씨네큐브에서 필름 상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매 오픈과 동시에 좌석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기에 이 정도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왓챠 파티를 통해 드디어 이 영화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두 개의 시선, 하나의 비극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을린 사랑'은 어머니의 과거를 따라가는 남매의 여정을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동시에 생지옥과도 같았던 종교 분쟁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낸 연출도 뛰어났고, 마지막 반전 역시 듣던 대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언급하는 엔딩의 충격도 물론 강렬했지만, 그보다 더 제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상을 묘사한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엔딩조차 결국 이 참혹한 종교 분쟁이 낳은 하나의 비극적인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컬트나 호러 장르의 공포 영화보다,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졌던 끔찍한 일들을 그린 작품이 주는 공포가 훨씬 더 크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세력이 서로를 증오하며 대립하던 시대, 종교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온갖 끔찍한 사건들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어머니 '나왈'의 시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와 형제에게 어머니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전하기 위해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의 시점입니다.


이 두 개의 시점은 어느 것 하나 관객에게 편안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깊은 고뇌에 빠뜨립니다.

어머니 나왈의 시선: 시대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개인의 삶

나왈의 시점은 종교 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무력하게 던져진 한 개인의 처절한 삶을 그리며 관객에게 깊은 슬픔과 불편함을 안겨줍니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비극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본인 역시 명예살인의 위협에 처합니다. 살해당한 연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집안의 불명예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고아원으로 보내집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을 찾기 위해 떠난 길에서 그녀가 탄 버스는 기독교 민병대의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나왈은 한 이슬람 모녀를 구하려 하지만 결국 눈앞에서 아이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버스 총격 장면이 영화의 엔딩보다 더 큰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집단에 대한 깊은 증오심으로 결국 이슬람 무장 단체에 합류하게 된 나왈은,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를 암살한 후 체포되어 악명 높은 감옥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녀의 진짜 비극이 시작됩니다. 무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문을 견뎌내야 했고, '아부 타렉'이라는 악랄한 고문 기술자로부터 지속적인 성고문까지 당하며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첫 번째 아이, 그리고 끔찍한 폭력의 결과로 잉태된 두 번째 아이들. 그녀에게 두 번의 출산은 모두 축복받지 못한, 지독한 아픔의 기억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영화는 이처럼 한 개인을 끊임없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면서, 비극적인 시대상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쌍둥이 남매의 시선: 진실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그 무게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미지의 형제를 찾아 나서는 잔느와 시몽.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이행하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끔찍한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수감되었던 감옥을 찾아간 잔느에게, 과거 어머니의 수감 생활을 지켜봤던 관리인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꼭 그 진실을 알아야만 하겠소?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오."


이 대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과연 모든 진실은 밝혀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운 거짓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이러한 묵직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시대의 아픔

영화를 보면서 문득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우리에게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깊은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과 설움,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 전쟁 같은 아픈 역사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영화에서 다루는 중동의 종교 분쟁 상황과 정확하게 1:1로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비극적인 시대상'이라는 맥락에서는 분명히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격동의 시기에도 이름 모를 수많은 개인들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폭력 아래 얼마나 처참하게 희생되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나왈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혹은 더 끔찍한 비극을 겪었을까요. 다시 한번 그 모진 시대를 꿋꿋이 견디며 살아오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의 위대함과 그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마음 깊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 대사에서도 언급되듯, 나왈은 잔느와 시몽에게 살가운 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쌍둥이 남매 역시 그런 어머니에게 서운함과 원망을 품고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추적해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점차 어머니를 이해하게 됩니다. 비록 그 진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을 보면서 가끔 '왜 저러실까?' 하며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살아오신 시대의 무게와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본다면, 지금의 모습 속에 숨겨진 깊은 마음을 발견하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적 장치와 기억에 남는 장면들

'그을린 사랑'을 감상하면서 몇 가지 특이하다고 느껴졌던 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심지어 이 영화의 장르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건 뭘까? 저건 뭘까?' 하며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어머니 나왈의 과거 시점과 딸 잔느의 현재 시점이 뚜렷한 신호 없이 교차 편집되는데, 두 배우의 외모가 상당히 닮아서 초반에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움 때문에 영화 초반 몰입이 다소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러한 연출 방식에 점차 적응하게 되었고, 오히려 두 시점이 교차되며 드러나는 비밀과 감정선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방식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흔히 영화에서 과장되거나 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과는 달리,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정말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의 모습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폭력의 현실성을 더욱 강조하며 관객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잔느와 시몽이 함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장면도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수영장은 마치 어머니의 양수를 상징하는 듯했고, 쌍둥이가 거칠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품속에서, 혹은 태어난 후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의 혼란스러움과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남매의 복잡한 심경이 함축적으로 담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왈이 감춰왔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고 쌍둥이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아니, 본인이 복수하고 용서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겨진 아이들은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하는 당혹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왈이 원했던 것은 단지 편지를 전달해달라는 것이었을 뿐,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과거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진실을 마주하기로 선택한 것은 결국 쌍둥이 자신들이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는 대사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영화의 충격적인 반전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더 나아가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었던 종교 분쟁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서로 다른 교리를 따르기에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두 종교. 하지만 그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며,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비극을 넘어 개인의 삶마저 송두리째 파괴하는 끔찍한 분쟁은 이제 멈추고,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외침처럼 들렸습니다.


어머니의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 후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겪었을 잔느와 시몽. 하지만 그들은 결국 각자의 슬픔과 분노를 하나로 합쳐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앞으로의 삶을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앞날을 조용히 응원하게 됩니다.


끔찍한 비극을 안겨준 대상에게 복수이자 용서를 건넨 나왈은 "하늘을 등지고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죽어서라도 이 잔혹한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그녀의 마지막 절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부디 하늘에서는 그녀가 모든 고통을 잊고 평안을 찾았기를 바라며, 영화 '그을린 사랑'에 대한 길었던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 영화는 저에게 오랫동안 깊은 잔상을 남기며 삶과 인간, 그리고 시대의 아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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