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신념, 그리고 변화의 기로에 선 가톨릭의 초상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 수상작 <콘클라베>를 드디어 감상했습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의 콘클라베, 즉 교황 선거 과정을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펼쳐냅니다. 원작 소설을 아직 접해보지 못했지만, 주변에서 소설 또한 탄탄한 스토리와 깊이 있는 메시지로 훌륭하다는 평이 자자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졌습니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전에, <콘클라베>의 배경지식인 콘클라베에 대해 먼저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콘클라베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비밀스럽고 엄중한 절차를 이해하는 것은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콘클라베: 신의 뜻을 묻는 비밀스러운 여정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회에서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열리는 비밀 회의입니다. 교황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들은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된 채, 바티칸 내 특정 장소에 격리되어 선거에 임하게 됩니다. TV, 라디오, 인터넷은 물론이고, 신문 등 외부 정보 접근은 원천 봉쇄됩니다. 심지어 유리창의 미세한 떨림을 이용한 도청을 막기 위한 첨단 장비까지 동원될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이 유지됩니다.
콘클라베의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극비로 진행되며,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은 물론이고 콘클라베에서 오고 간 모든 대화 내용에 대해 평생 침묵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갖습니다. 이 엄격한 비밀 유지 서약을 어길 시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징벌인 파문이라는 중벌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추기경들의 투표는 매일 진행됩니다. 투표 결과, 교황 선출에 필요한 특정 득표수를 얻는 추기경이 나오지 않으면, 투표용지를 태워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립니다. 반대로, 새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를 피워 올려 콘클라베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립니다. 바티칸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색깔을 통해 교황 선출 여부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확인하는 것이죠. 영화 <콘클라베>는 바로 이 엄숙하고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추기경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과 암투,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들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냈습니다.
물론, 콘클라베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영화 초반에 콘클라베의 의미와 절차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콘클라베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상징성을 알고 본다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생한 묘사, 숨 막히는 긴장감
영화는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의 준비 과정부터,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콘클라베 내부의 모습, 그리고 투표 방식까지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현실감 있게 묘사하여 관객들에게 마치 실제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웅장한 바티칸의 모습과 엄숙한 분위기, 그리고 추기경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까지,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 요소를 총동원하여 콘클라베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저는 종교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영화를 정치적인 암투극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감상했습니다. 교황 선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추기경들의 권력 다툼과 인간적인 고뇌는 종교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혹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영화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도 전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콘클라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예측 불허의 이야기 전개입니다. 차기 교황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그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외부와 단절된 상황에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추기경들은 혼란에 빠지고, 서로를 의심하며 갈등합니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인물들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극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킵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각각의 사건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사건으로 이어지는 짜임새 있는 구성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잘 쓰여진 원작 소설의 힘도 있겠지만, 각색 과정에서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고 설득력 있게 다듬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최초의 흑인 교황 후보였던 아데예미 추기경의 성추문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스캔들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데예미 추기경과 스캔들을 일으킨 수녀가 콘클라베 기간에 바티칸에 파견된 것이 우연이 아니며,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수녀를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콘클라베>는 하나의 사건이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반전을 거듭하고,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변화의 갈림길에 선 가톨릭
결국 이 모든 예측 불허의 상황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톨릭 교회가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누가 차기 교황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과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전통이라는 과거의 유산에만 머무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구체화합니다. 신의 뜻을 대변해야 하는 종교인이지만, 동시에 권력욕과 명예욕을 가진 인간적인 존재로서 갈등하는 추기경들의 모습,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추기경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교회의 혁신을 바라는 진보적인 추기경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뇌하는 로렌스 추기경을 통해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랄프 파인즈가 연기하는 로렌스 추기경은 극의 중심에서 갈등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교황 선출 과정을 총괄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자, 냉철한 원칙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을 끊임없이 하는 인물입니다. 랄프 파인즈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냉철한 표정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연약함,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의 갈등, 종교적 의무와 개인적인 양심 사이에서의 갈등을 섬세하게 연기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돌이켜보면 랄프 파인즈는 영화 <더 메뉴>에 이어서 다시 한번 고립된 공간에서 상황을 통제하는 인물을 연기했네요. 어쩌면 그는 이러한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의: 지금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감상 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파격적인 결말, 그리고 남겨진 여운
영화의 주제 의식은 베니테즈 추기경의 교황 당선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선대 교황이 임종 직전에 극비리에 추기경으로 임명한 베니테즈 추기경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콘클라베 초반부터 진보적인 성향의 추기경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으며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그런데, 교황 즉위식을 앞두고 로렌스 추기경은 베니테즈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자궁을 모두 가진 인터섹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게 됩니다. 베니테즈 본인조차도 남성으로 알고 살아왔으며, 수술을 위한 검사 과정에서 우연히 자궁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죠.
영화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콘클라베 기간 내내 수녀들은 추기경들의 일상적인 시중을 드는 역할, 마치 호텔 직원처럼 룸을 정돈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집니다. 이는 실제로 가톨릭 교회 내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낮은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남성만이 사제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교황은 오직 남성만이 계승할 수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과 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설정이 바로 베니테즈 추기경의 인터섹스 정체성인 것입니다.
남성으로 살아왔고, 스스로도 남성으로 인지하며 사제가 되었지만,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고수해 온 성별 이분법적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제, 더 나아가 교황은 남성만이 될 수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철칙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베니테즈 추기경의 성별 정체성이 결격 사유가 되어 교황 선출이 무산되었다면, 영화는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결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니테즈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는 파격적인 결말을 통해 가톨릭 교회가 과거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성별의 문제를 넘어서, 인종, 국적,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포용하고 더욱 열린 자세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베니테즈 추기경은 바티칸으로 향하기 전, 자신의 인터섹스 정체성을 인지하고 자궁 제거 수술을 고민했지만 결국 수술을 포기합니다. 로렌스 추기경이 베니테즈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 몸 또한 하느님이 주신 것인데, 내가 감히 하느님의 창조물에 손을 대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묵직한 대답을 건넵니다.
이 대사에서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니테즈는 남성과 여성의 성징을 모두 가진 자신의 육체를 '불완전하거나 오류가 있는 존재'로 규정하는 대신, 온전한 '하느님의 창조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하느님의 섭리로 규정해왔지만, 베니테즈 추기경의 존재는 그러한 획일적인 잣대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몸을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외부적인 선택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변화를 선택한 베니테즈의 결정은 가톨릭 역시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시대의 흐름에 맹목적으로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성찰과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변화의 속도 vs. 방향: 거북이가 던지는 메시지
그런데, 베니테즈 추기경은 자신의 정체성을 로렌스 추기경에게만 고백하고, 로렌스 추기경 역시 이 사실을 다른 추기경들에게는 물론, 외부에도 알리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납니다. 저는 이 비밀이 로렌스 추기경과 베니테즈 추기경 단 두 사람 사이에만 머무르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변화의 속도보다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만약 제 생각처럼 베니테즈 추기경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면, 변화는 급격하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겁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가톨릭에게 있어서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내부적인 반발과 혼란을 극대화시키고, 새로운 교황의 리더십에 타격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다소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한 변화만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북이입니다. 거북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합니다. 물속과 땅 위에서 모두 생활이 가능한 거북이를 통해 베니테즈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 로렌스 추기경이 연못에서 나가려는 거북이를 다시 연못으로 돌려보내는 모습을 통해 교황청의 일부가 되어 나가지 못하는 로렌스를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저는 느리게 걷지만 결국 목표한 곳인 연못으로 나가는 거북이를 통해 속도보다는 방향을 말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렌스 추기경이 거북이를 들어서 목적지인 연못으로 보내주는 것은 변화는 로렌스 추기경과 같은 일부 깨어있는 소수의 헌신과 노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그 작은 움직임이 결국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객들은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과 추기경들의 심리 묘사는 매우 섬세하고 촘촘하게 그려지지만, 막상 교황 후보가 결정되고 당선되는 과정은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졌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베니테즈 추기경의 인터섹스 정체성 설정이 메시지를 위해서 너무 무리수를 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클라베>는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한 매력적인 정치 스릴러입니다. 메시지 설명하느라 언급은 못 했지만 미장센과 음악도 훌륭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도 즐거웠습니다. 교황 선출이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권력 암투는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고, 앞으로의 종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서 현대 사회에서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콘클라베>는 잘 만들어진 정치 스릴러를 찾는 관객과 종교와 권력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