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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를 사로잡은 <아노라>

계급, 욕망,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숀 베이커 감독의 신작 <아노라>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을 보면 <아노라>를 필두로 <추락의 해부>, <슬픔의 삼각형>, 그리고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화려한데요. 개인적으로 <추락의 해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상했는데, 이 작품 역시 조만간 챙겨볼 예정입니다.


<추락의 해부>를 아직 보지 못한 상태에서 <아노라>, <슬픔의 삼각형>, <기생충> 세 작품을 떠올려보면, 묘하게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황금종려상 심사위원단이 추구하는 어떤 방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글의 후반부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아노라>는 굉장히 재미있게 감상한 작품입니다. 권위 있는 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해서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을까 지레짐작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니, 부담 없이 감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아노라>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매혹적인 스토리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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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노라'는 스트리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가게를 찾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충동적인 결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님은 이 결혼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들의 하수인 3인방을 급파합니다. 부모님의 압박에 겁을 먹은 이반은 아노라를 두고 도망쳐 버립니다.


결국 아노라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하수인 3인방은 이반과 아노라를 혼인 무효 소송 재판장에 세우기 위해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이반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3개의 막으로 구성된 이야기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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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는 명시적으로 챕터가 나뉘어 있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뚜렷한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첫 번째 챕터는 아노라와 이반이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립니다. 아노라의 성 노동 현장이나 이반이 주최하는 호화로운 파티 장면들은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비트의 음악으로 채워져 경쾌하고 들뜬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두 번째 챕터는 아노라와 3인방이 이반을 찾아 나서는 여정입니다. 이반 부모님의 지시를 따라야 하지만,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애를 먹는 3인방의 모습은 블랙 코미디 풍으로 그려져 씁쓸한 웃음을 유발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챕터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반의 부모님이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아노라의 심경 변화에 깊이 초점을 맞추며, 이전 챕터들에서 유지되던 경쾌함은 점차 가라앉고 무거운 분위기로 전환됩니다.


이처럼 각 챕터마다 분위기를 달리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2시간 19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 계급 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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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계급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이나 <슬픔의 삼각형>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기득권층은 항상 여유롭습니다. 아노라의 고용주는 4대 보험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에 항의하는 아노라에게 늘 실실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이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직업은 그저 '재벌 2세'입니다.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죠. 그는 언제든 성대한 파티를 열고, 여자친구가 필요하면 돈으로 구하면 그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욕망 해소를 위해 돈을 지불하다가, 나중에는 일주일간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며 거액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결혼 역시 그에게는 즉흥적인 선택일 뿐입니다. 부모님이 계신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던 중, 마침 미국 시민권자인 아노라와 결혼하는 방법을 떠올립니다. 모든 선택이 쉽고 빠릅니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죠. 그 선택에 따르는 리스크는 돈이 해결해 줄 테니까요.


최상류층으로 그려지는 이반의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스트리퍼와 결혼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분노하지만, 정작 이반의 아버지는 미국에 온 뒤로 이 모든 상황이 즐겁다는 듯 연신 웃음을 터뜨립니다. 집안의 실세로 보이는 어머니 또한 혼인 무효에 저항하는 아노라의 발버둥을 우습다는 듯이 대합니다. 그들은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말 한마디면 수족처럼 움직이는 3인방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혼인 무효를 위한 행정 처리 과정도 일사천리입니다. 안 되면 되게 만들면 그만입니다. 절차상 시간이 부족한 변호사나 법원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됩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반과 아노라의 결혼쯤은 당사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오만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노동자로 묘사되는 아노라와 3인방의 모습입니다. 기득권층의 노동 장면은 단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는 반면, 아노라의 노동 현장은 영화 시작부터 놀랄 만큼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두 번째 챕터 전체는 하수인 3인방의 노동 현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늘 아등바등 살아가고, 부지런히 일해야 하며, 여유 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시끄러운 기찻길 옆에 위치한 아노라의 집과, 철저한 보안 게이트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반의 집(심지어 주 거주지도 아닌 미국의 별장)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돈에 대한 감각도 다릅니다. 이반이 아노라에게 일주일 여자친구를 제안할 때, 아노라가 협상한답시고 높게 부른 금액을 듣고도 이반은 "나라면 더 높게 불렀을 텐데"라며 여유를 부립니다. 이반의 부모님이 온 후 혼인 무효 서류 처리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갈 때는 다 같이 전용기를 타지만, 모든 절차가 끝난 후 뉴욕으로 돌아가는 아노라와 이고르(3인방 중 한 명)는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싣는 모습에서도 이러한 대비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두 번째 챕터는 자본가들에게 휘둘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블랙 코미디 풍으로 그려져 암울함이 희석되긴 하지만, 챕터 내내 하수인 3인방은 이반 부모님의 지시를 완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아노라 역시 이반 부모님이 갈라놓으려는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해 이반을 찾아 헤맵니다.


3인방과 아노라의 동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같은 계층끼리는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좀 더 희망적이고 그림도 좋게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노라는 아노라대로, 3인방은 3인방대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며, 연대는커녕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거립니다. 엔딩 장면에서야 아노라와 이고르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마저도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이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러한 기득권과 노동자의 선명하고 직접적인 대비를 통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그 안에서의 권력 관계,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노라'와 배우 미키 매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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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중심에는 단연 주인공 '아노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노라를 이토록 생생하게 스크린에 구현해낸 배우 미키 매디슨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아노라를 연기한다기보다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화면 속을 활보하는 듯했습니다. 매 순간이 아노라 그 자체였죠.


아노라의 직업인 스트리퍼는 사회적으로 천시받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작품 속에서도 아노라는 스트리퍼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모욕적인 말을 듣습니다. 현실에서 성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게다가 아노라는 신분 상승이라는 현대판 신데렐라를 꿈꾸며 재벌 2세와의 결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시작했지만 함께 지내다 보니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했다는 식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모습이 영화 전반에 걸쳐 그려집니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자극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상류 사회에 속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객의 관점에 따라 아노라와 이반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감정조차 결국 자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인물 설정과 내용만 놓고 보면,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듯 '꽃뱀'과 같은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인식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아노라가 밉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상황에 점차 동조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연민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은 전적으로 미키 매디슨의 매력과 연기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었습니다.

아노라의 곁을 지키는 '이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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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라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바로 하수인 3인방 중 한 명인 '이고르'입니다. 겉모습은 우락부락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입니다. 생각해보면 3인방 모두 그렇습니다. 외모만 보면 갱스터 같지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순박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고르는 아노라와의 여정을 통해 상류 사회의 실상을 함께 경험하는 인물입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코노미 비행기 안에서 잠든 아노라에게 자신의 재킷을 벗어 덮어주는 장면은 그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아노라에게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노라가 스트리퍼라는 이유로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이반의 가족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연민을 느끼는 듯합니다.


또한 그는 아노라가 사용하는 가명 '애니' 대신, 그녀의 본명 '아노라'에 '반짝이다', '빛나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고르와 아노라가 결국에는 연인 사이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 관계를 또다시 기가 막히게 마무리합니다.

여운을 남긴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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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엔딩 장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올해 최고의 엔딩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는데, 솔직히 제 기준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상 깊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혼인 무효 행정 처리를 마친 아노라와 이고르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반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밤에 함께 TV를 보는 장면에서 이고르의 눈빛은 누가 봐도 멜로 눈빛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둘이 티격태격했지만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화 도중 아노라는 이고르에게 "넌 나를 강간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악담을 퍼붓고 거리를 둡니다. 다음 날 아침, 이고르는 이반의 별장에서 아노라의 짐을 챙겨 그녀의 집 앞까지 태워다 줍니다. 차 안에서 이고르는 아노라가 그토록 원했지만 이반의 가족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결혼반지를 몰래 가져와 아노라에게 돌려줍니다.


바로 그 순간, 아노라는 운전석에 있는 이고르에게 갑자기 올라타 성관계를 시도합니다. 성관계 도중 이고르가 아노라에게 키스를 시도하지만, 아노라는 필사적으로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이고르의 품에 안겨 오열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때 사운드 연출이 참 좋았습니다. 앞서 제가 임의로 구분했던 챕터 1과 2에서는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음악이든, 쏟아지는 대사든, 무언가 항상 소란스러웠죠. 그런데 엔딩 장면에서는 조용한 차 안에서 내리는 눈을 치우는 와이퍼 소리만이 들립니다. 와이퍼 소리를 제외하면 거의 정적에 가깝습니다. 소란스럽고 속 시끄러웠던 아노라의 여정이 이제 마무리된다는 것을 이렇게 소리로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동안 아노라가 겪어왔던 일들에 감정 이입을 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노라에게 있어서 남자는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부류와, 손님으로 와서 성매수를 하던 부류, 이렇게 두 종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고르에게 "뭐야, 날 사지 않아? 그럼 넌 나를 강간하려는 사람인가?"라는 논리로 악담을 퍼부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고르를 경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남자를 이분법적으로 분류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의 민낯을 모두 들켜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자신의 밑바닥 욕망을 들킨 사람이 바로 이고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싫었던 것이죠.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이고르의 멜로 눈빛에도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고르에게 먼저 성관계를 시도한 것일까요? 다이아몬드 반지를 몰래 챙겨준 이고르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아노라가 알고 있는 감사의 표시는 그런 방법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성 노동 현장에 너무 깊이 물들다 보니, 순수한 감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고르의 키스를 거부한 것도, 이것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하는 성관계가 아니라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하는, 즉 이렇게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성관계였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고르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이고르의 품에서 어떤 온기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동안 상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아노라가 마침내 모든 가면을 벗고 진실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동안 감추고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이 엔딩에 와서야 터져 나온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울음이 단순히 서러운 울음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노라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울음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감추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는 방법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아노라>에 대한 정리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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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아노라>는 긴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를 따라가기만 해도 흥미롭게 볼 수 있고, 앞서 설명드렸던 계급에 대한 대비를 찾아가며 보셔도 흥미롭습니다. 또한, 주인공 아노라의 성장과 심리 변화를 따라가며 보셔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큰 상을 수상할 정도로 굉장한 작품이었는가를 생각하면, 솔직히 제 기준에서는 인상 깊긴 했지만 '그 정도였나?'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슬픔의 삼각형>, 그리고 <아노라>를 비교해보면 큰 줄기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득권자와 하층민(혹은 노동자)의 대비를 보여주고, 하층민이 계급 상승을 시도하며 그것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시스템 자체를 뒤엎지는 못하고 씁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기득권자와 하층민의 대립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끼리의 대립을 그리기도 하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블랙 코미디 요소를 통해 중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세 작품 모두 이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황금종려상의 어떤 공식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숀 베이커 감독을 이번 작품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전부터 성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다뤄온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차기작도 성 노동자 이야기라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성 노동자 이야기를 자주 다루는지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감독은 영화 제작 분야로 진출하는 인력들의 계층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과거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영화계에 진출했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 많이 진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천시받는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제작자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고, 본인이라도 이들을 계속 조명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성 노동자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노동자라는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인 선입견도 바꾸고 싶었다고 합니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계층에 대해 꾸준히 조명하려 한다는 면에서는 분명 대단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노라>는 개봉 첫 주에는 상영관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이 되신다면 놓치지 마시기를 바라며, 여건이 안 되시는 분들은 나중에 VOD나 OTT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꼭 한번 감상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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