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의 만남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2010년,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화려한 네온 불빛과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음악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던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을 기억하시나요? 벌써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10월, 트론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트론: 아레스'가 긴 기다림 끝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개봉 초반부터 이런저런 혹평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저는 두 시간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갈 만큼 영화에 빠져들었습니다. 압도적인 사운드와 비주얼은 기본이고,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묵직한 철학적 질문까지 던지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안겨준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영화가 왜 매력적이었는지,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다만 '트론: 아레스'는 탄탄한 서사보다는 감각적인 스타일이 핵심인 영화이기에, 아직 관람 전인 분이라도 큰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현실로
영화는 '그리드'라는 디지털 세계에서 창조된 최강의 AI 프로그램이자 최종 병기, '아레스'가 현실 세계로 넘어오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막을 올립니다. 배우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아레스는 초인적인 힘과 속도, 인간을 초월하는 지능까지 갖췄지만, 현실에서는 단 29분만 존재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기술적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적인 프로그래머 '이브 킴'(그레타 리)이 '영속 코드' 기술을 연구하는 한편, 야심가 '줄리안 딜린저'(에반 피터스)는 이 강력한 기술을 군사 무기로 이용하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 세계로 나온 아레스는 난생 처음 빗방울을 맞아보고,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브의 공감 어린 시선을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 이는 그에게 부여된 임무와 자신의 존재 의미 사이에서 깊은 고뇌를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과연 아레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영화는 아레스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전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
최근 연이은 흥행 부진으로 '믿고 거르는 배우'라는 오명까지 얻었던 자레드 레토는 이번 작품으로 완벽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는 인간성을 발견하며 혼란에 빠지는 AI '아레스'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아레스라는 캐릭터가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라는 두 고전의 서사를 동시에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창조자가 자신을 "사용한 휴지처럼" 버릴 수 있다는 공포를 순종의 가면 뒤에 숨기지만, 결국 단순한 파괴의 괴물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해킹 전투 중 명령을 어기고 다른 AI 동료를 구하려는 모습은, 그가 단순한 무기를 넘어 도덕적 선택이 가능한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감독 역시 아레스를 "진짜 소년이 되고 싶어 하는 피노키오"처럼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켄슈타인과 피노키오 두 이야기 모두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비극적 관계를 다루고 있죠. 아레스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버림받고 도구로 취급당하면서도, 동시에 피노키오처럼 순수하게 '진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섭니다.
이러한 아레스의 반대편에는 AI '아테나'가 있습니다. 아레스가 감정을 통해 인간성을 탐구하는 반면, 아테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임무를 완수하라"는 명령을 맹목적으로 수행하며 파괴를 일삼습니다. 이는 현대 AI 개발의 딜레마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도덕적 판단 능력이 없는 AI는 '아테나'처럼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고, 감정을 가진 AI는 '아레스'처럼 창조자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지성을 창조하고도 이를 소모품으로 여긴 '줄리안'의 무책임함을 통해, 진정한 비극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에게서 비롯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엑스맨 시리즈의 유쾌한 '퀵실버'와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에반 피터스는 신경질적인 빌런 '줄리안'을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패스트 라이브즈'의 그레타 리는 트론 시리즈 최초의 한국인 주인공 '이브 킴'으로서 AI와 교감하는 과학자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해냈습니다. 다만, 액션 연기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눈과 귀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미장센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아레스가 모차르트보다 '디페쉬 모드'의 음악이 더 낫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클래식의 대명사인 모차르트가 인류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한다면, 1980년대 신디사이저로 신스팝 시대를 연 디페쉬 모드의 전자음악은 디지털 세계에서 태어난 아레스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트론: 새로운 시작'의 다프트 펑크를 누가 대체할지 큰 관심사였는데, 그 자리는 전설적인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가 맡았습니다. 이미 '소셜 네트워크', '소울' 등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쥔 그들은 강렬하고 날카로운 전자음과 묵직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영화의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완성하며, 시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했습니다.
AI 시대, 기술과 인간의 책임을 묻다
'트론: 아레스'는 감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현시대에 유효한 경고를 던집니다. 특히 AI '아테나'가 임무 수행에 방해되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제거한 뒤 "장애물 제거됨"이라고 무감각하게 보고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의 양심적 판단이 배제된 채 오직 명령 수행에만 최적화된 기술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죠.
결국 영화는 기술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중립적인 도구이며,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의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파티클 레이저'라는 동일한 기술로 이브 킴은 생명의 상징인 오렌지 나무를 만들어내는 반면, 줄리안은 대량 살상 무기를 생산하려는 모습이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연출의 힘
"비주얼은 좋지만 스토리가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저는 그 단점을 덮고도 남을 만큼 이 영화의 '스타일'이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개념을 물리적인 행동으로 번역해 보여주는 연출은 가히 압권입니다.
가령, 줄리안이 엔콤(Encom)의 서버를 공격하는 '해킹'은 영화 속에서 하나의 군사 작전처럼 그려집니다. 해킹 프로그램과 백신은 병사가 되고, 방화벽은 견고한 장벽이 되어 충돌합니다. 덕분에 관객은 사이버 공격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직관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체험하게 됩니다. 아레스가 29분밖에 존재하지 못하는 설정은 보안 시스템의 '세션 만료'를, 이브가 디지털화되어 그리드에 갇히는 장면은 '데이터 탈취'를 '인간 납치'로 치환하여 그 섬뜩함을 극대화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디지털 시대의 전쟁이 가진 폭력성을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체감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총평
'트론: 아레스'가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려한 네온의 세계와 철학적 고민이 공존하는 트론의 세계관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 쾌감, 그리고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시의적절한 화두만으로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경험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자유롭게 감상을 남겨주시면 저 또한 함께 읽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