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인터뷰로 본 <웨폰>의 진짜 의미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잭 크레거 감독의 신작 영화 <웨폰>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어느 날 새벽 2시 17분이라는 특정 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 17명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동시에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포문을 엽니다. 영화는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을 교차하며 이 충격적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다소 갈리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어떤 지점에서 이 영화의 긴장감을 느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스포일러를 포함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스포일러가 감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관람 후에 이 글을 읽어주시기를 권합니다.
장르적 재미에 집중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일종의 '리뷰어 병'에 걸린 것처럼, 감독이 아이들의 실종이라는 이 상황을 통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혹은 특정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며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해석도 명확하게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동시에 사라지는 설정이 학교에서 발생하는 총기 난사에 대한 은유라는 해석도 있지만, 소재만 보면 그럴싸해 보여도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완벽하게 들어맞는 해석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거창한 의미를 담기보다는, 관객이 흥미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라면 무엇이든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마녀'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복잡한 해석을 내려놓고, 말 그대로 이 공포 스릴러 자체를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편안하게 보니 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챕터 구성의 묘미
영화는 각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화면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뜨며 그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 구조는 다음 챕터가 과연 누구의 시점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서는 블랙 코미디 요소도 등장합니다. 마녀 글래디스에게 정신 지배를 당하는 제임스가 아처에게 끊임없이 달려들고, 아처는 그를 계속 내동댕이칩니다. 제임스가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 달려들고, 또다시 내동댕이쳐지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 상황에서 '지금 웃어도 되나?' 싶으면서도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지막에 자신이 세뇌시켰던 아이들에게 역으로 공격당하게 된 글래디스가 아이들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글래디스 할머니가 어찌나 달리기를 잘하던지, 사람들의 생명 에너지를 얼마나 빨아들였으면 저럴까 싶었습니다. 아마 생명 에너지 외에도 몸에 좋은 보약 같은 것을 따로 챙겨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보다도 더 잘 뛰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맹렬하게 쫓아오는 아이들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글래디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웃기게 연출되었습니다. 분명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심각한 상황임에도 계속 웃음을 유발하는, '지금 내가 웃어도 되는 걸까?'라고 되묻게 되는, 그런 블랙 코미디 요소가 제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정말 뛰어나다고 느낀 지점은 바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오가는 서사 구조입니다. 영화는 이 하나의 거대한 비극을 여러 인물들의 시점에서 조각조각 나누어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이 직접 이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맞춰나가도록 유도합니다.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다시 조명하면서 '아, 그때 저 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구조가 흥미로웠습니다. 앞선 챕터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물의 행동이 다음 챕터에서 그 이유가 밝혀지면서, 관객이 스스로 추리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런 영리한 연출 덕분에 미스터리함이 더욱 강조되고, 관객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합니다. 또한 시점이 바뀔 때마다 인물들의 입장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뒤섞이며 모든 등장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입체적 인물들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실종된 아이들의 담임 교사 저스틴은 마을 전체에서 마녀로 낙인찍힙니다. 아처는 그녀의 차에 'WITCH(마녀)'라고 낙서를 하고, 과거 음주운전 전과와 이전 근무지에서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받습니다. 비록 폴의 거짓말에 속아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폴의 아내 입장에서는 저스틴이 상간녀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저스틴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과 싸우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거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아처는 실종된 아들 매튜의 아버지로,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저스틴을 괴롭힙니다. 그는 황폐해진 아버지로서 아들의 행방에 대한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의 아들 매튜는 알렉스를 괴롭히던 아이였으니, 알렉스 입장에서 매튜는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글래디스 입장에서 매튜는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중반부에 저스틴에 대한 오해가 풀린 아처는 저스틴과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지만, 글래디스에게 정신 지배를 당해 저스틴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처는 결국 아이들을 해방시켜주는 구원자 중 한 명이 됩니다.
경찰관 폴은 아내와 저스틴을 속이고 불륜을 저지르며, 마약 중독자 제임스를 폭행하고 증거를 은폐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도 글래디스에게 조종당하는 피해자가 되어 저스틴의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제임스는 마약 중독자이자 절도범이지만, 폴에게 부당하게 폭행당하고, 아이들을 발견했을 때 비록 동기는 불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이 있는 장소를 제보하려 하다가 결국 글래디스의 희생양이 됩니다.
마커스 교장은 저스틴과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선의를 가졌지만, 결국 글래디스에게 조종당해 동거자를 죽이고 저스틴을 공격하다 차에 치여 죽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알렉스 역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글래디스의 위협 아래 부모를 돌봐야 하는 어린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 친구들의 이름표를 훔쳐 글래디스를 돕는 공모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협박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글래디스를 도운 셈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글래디스의 마법을 역이용해 아이들을 시켜 그녀를 파괴하는 영웅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인물이 각자의 시선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에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방관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이런 구조를 통해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얼마나 주관적이고 불완전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하게 만듭니다.
대담한 장르 전환
현실적인 미스터리로 흘러가던 영화는 중반부, 알렉스의 이모로 위장한 '마녀 글래디스'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오컬트 호러 장르로 급격히 방향을 틉니다. 이 장르 전환은 사실 영화의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어떤 관객에게는 이 변화가 갑작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 대담한 전환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감독은 이러한 장르적 변화 속에서 고전 명작들에 대한 오마주를 심어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시간인 '2시 17분'은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에 나오는 공포의 근원인 '217호'에 대한 오마주가 확실해 보이며, 영화 마지막에 깨진 문틈 사이로 얼굴을 우겨넣는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을 즉각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아이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이끌려 사라지는 설정은 '피리 부는 사나이' 설화를 현대적으로 비틀어 저항할 수 없는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삼각형', '숫자 6'의 상징
글래디스는 마치 동충하초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존재입니다. 그녀의 능력은 '삼각형'과 '숫자 6'이라는 상징을 통해 더욱 구체화됩니다.
오컬트에서 삼각형은 악마를 소환하거나 주술적 공간을 여는 '게이트웨이'를 상징합니다. 특히 생명의 끝을 상징하는 '어둠의 여신'과 연결되며, 늙고 병든 글래디스가 사람들의 에너지로 건강을 회복하려는 상황과 맞아떨어집니다.
마녀 글래디스가 사용하는 황금빛 종에 새겨진 숫자 6은 더욱 직접적으로 그녀의 정체를 암시합니다. 숫자 6은 신의 완전수인 7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수'이자, '짐승의 숫자 666'과 연결되어 악마를 상징합니다. 또한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진 육각성은 6개의 꼭짓점을 가지며 악마 소환 의식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삼각형은 글래디스가 힘을 발현하는 '마법진'이며, 숫자 6은 그 힘의 근원이 악마적인 것임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이 두 상징의 조합은 그녀가 초자연적 존재임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아이들이 뛰는 자세가 옛날 '주라기 월드컵'의 야크 달리기 자세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이를 '나루토 달리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새삼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처럼 삼각형과 숫자 6이 계속 나타나는 것은 글래디스의 힘이 초자연적인 근원에서 왔음을 알려주는 장치로 보였습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그렇다면 영화의 제목인 '웨폰', 즉 '무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총기 난사로 희생되는 아이들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이 제목은 감독 잭 크레거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마녀를 파괴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아이들을 의미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감독 자기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인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는 전혀 유추할 수 없었고, 관람 후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고 나서야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챕터는 완전히 자전적입니다. 그것이 제 어린 시절이었죠. 알코올 중독자 부모와 함께 살면, 가족 역학의 역전이 일어납니다. 아이가 보호자가 되는 거죠. 외부 물질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의 행동을 바꿉니다. 집은 무서운 장소가 됩니다. 학교에 가서 모든 게 괜찮은 척할 수 있지만, 집에 돌아오면 좀비 같은 부모로부터 숨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게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알코올 중독자 부모 밑에서 자랐던 크레거 감독에게, 마녀(즉, '알코올 중독')에게 지배당한 부모를 어린 알렉스가 돌봐야 하는 상황은 자신의 과거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영화 제목이 나올 때 알파벳 'O' 안에 삼각형이 표시되는데, 이는 알코올 중독자 갱생회(AA)의 공식 상징인 원 안의 삼각형과 일치합니다. 영화 곳곳에는 AA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폴의 여자친구가 그에게 퇴근 후 AA 모임에 가라고 권하고, 저스틴 역시 알코올 중독이 재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감독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코미디 동료였던 트레버 무어가 2021년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어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적 한계를 훨씬 초과했으며 현장에서 빈 술병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중간에 마커스 집에 찾아온 글래디스에게 핫도그 7개를 주는 장면 역시, 과거 친구 트레버 무어와 함께했던 코미디 코너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크레거 감독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미친 듯이 글을 썼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웨폰>입니다. 즉, <웨폰>은 감독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총평
정리하자면, <웨폰>은 로튼 토마토 지수 94%라는 놀라운 평가가 증명하듯이 평론가와 관객 모두를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물론 영화가 수많은 떡밥을 던져놓고 이를 명확하게 다 회수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불친절함이 어떤 분들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명확한 결말이나 모든 떡밥이 회수되는 것을 선호하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관객이 좋아하는 작품 중 <곡성>이라는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웨폰>이 주는 모호함은, 저처럼 '그냥 즐기자'는 마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긴장감을 위한 장치구나'하고 넘기며 재미있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뭔데? 혹시 감독도 잔뜩 일을 벌여놓고 떡밥을 회수할 엄두가 안 나서 어물쩡 넘어간 거 아니야?"라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불호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이 영화는 관객에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거나 치밀한 상징을 깔아두고 나중에 모두 회수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겹겹이 쌓이는 미스터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통해 장르적인 재미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는 인상입니다.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영화 관람 후 찾아보며 알게 되었는데, 이는 저에게 있어 영화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되는 계기인 동시에 살짝은 감점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감독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은유가 깊이 들어가 있으면 관객이 인터뷰를 찾아보지 않고서는 유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러닝타임 110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었을 만큼 템포 조절은 탁월했습니다. 관객을 마지막 순간까지 끌고 가는 이 긴장감이야말로, <웨폰>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의 후기도 궁금합니다. 댓글로 다양한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