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스로를 모를까?

그림 앞에서 나를 만났다 1

by 오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렷하게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누가 “넌 어떤 사람이야?”

라고 물으면, 말문이 막혔다.


내가 나를 몰랐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내 안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안의 자주 떠오르는 감정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잡히지 않는 그림자 같았고

말로 꺼내려 하면 허공에서 사라졌다.

Vincent van Gogh, <Shoes>, 1888,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한 그림 앞에 시선이 멈췄다.
거칠고 낡은 가죽, 풀린 끈, 닳은 바닥.
Vincent van Gogh의 <Shoes>였다.


아무 설명도 없는데

그 신발이 꼭 내 마음 같았다.
내 안의 무게가

거기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우리는 많은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예술 작품은 그 모호한 감정을 잡아채고,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 말해준다.


그랬다.
그림은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여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낡은 신발처럼 마음이 닳아 있었다.”
그게 그날 일기의 전부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또렷해졌다.


그 후로 나는 그림을 한 장씩 꺼내어

나를 적기 시작했다.
감정을 설명할 수 없을 때

말이 길어질수록 핵심이 멀어질 때
그림이 먼저 다가와 내 마음을 붙잡아주었다.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운 나 자신을
때로는 누구보다 모호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그럴 때 그림은, 그리고 기록은
내 안의 희미한 자국들을

다시 살피는 작은 창이 되어준다.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크게 울고 웃은 날보다
이렇게 조용히

내 마음의 모양을 살필 수 있었던 날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