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가 10년 묵은 감정을 꺼냈다

그림 앞에서 나를 만났다 2

by 오운다
Mikuláš Galanda, <Mother>, 1933, Slovak National Gallery.


붉은 세상 속에 떠 있는 부드러운 형체들.

처음엔 추상적인 형태로 보이다가

그 속에서 서로를 감싸안은 두 사람이 보인다.


Mikuláš Galanda 〈Mother〉


얼굴도 표정도 없는 그림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날 밤, 그림을 다시 꺼내보고

일기장을 폈다.


"붉은색 안에 안긴 작은 형체.

엄마 품이 이렇게 따뜻했나."


손을 멈추려 했는데,

다음 문장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 따뜻하기만 했나?

그 안에서 숨이 막힐 때도 있었는데."


그림은 내가 덮어두고 있던 복잡함을 건드렸다.


엄마의 사랑은 늘 따뜻했다.

내가 넘어진 날에도, 잘못된 선택을 한 날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믿어줬다.

그 사랑이 내 안에 안정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자신이 경험한 행복의 길로

나를 밀어넣으려 했다.

본인에겐 절실함이었지만

나에겐 버거운 무게였다.


"사랑받는다는 게 기쁨이면서도

왜 이렇게 무거웠을까."


일기를 쓰면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이중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그림은 그 복잡함을 먼저 보여줬고

기록은 그 감정에 이름을 지어줬다.


"결국 사랑은 품고 보내는 일이구나.

엄마는 나를 품었고, 이제는 보내려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이 완벽하지 않아도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안다."


그게 그날 내가 발견한 나였다.


내가 뭐라고, 왜 저렇게까지 할까.

그 질문이 일기 끝에 남았다.


아마 이 질문은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림 한 장이 10년 넘게 묻어두었던 감정을 꺼냈다.

따뜻함과 무거움, 감사와 죄책감.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복잡함에

기록이 형태를 부여했다.


우리 안에는 이렇게

이름 없이 떠다니는 감정들이 많다.

그림은 그 감정을 불러내고

기록은 그것을 붙잡아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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