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앞에서 나를 만났다 3
그림 앞에서 울컥했던 적이 있다.
왜 우는지 스스로도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내 안에 뭔가 있다는 것.
하지만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그 감정은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까 뭐가 그렇게 울컥했지?"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그 감정은 거의 사라졌다.
분명히 느꼈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잊혀졌다.
생각은 바람 같다.
순간은 강렬하지만
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쓰지 않으면
오늘 느낀 감정은 내일 사라진다.
어제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은 다르다.
쓰는 순간
흩어지던 감정에 형태가 생긴다.
모호하던 생각에 윤곽이 잡힌다.
그림을 보고 일기를 쓴 어느 날.
"Mikuláš Galanda의 〈Mother〉를 봤다.
붉은색 안에 안긴 작은 형체.
엄마 품이 이렇게 따뜻했나."
여기까지 쓰고 나니,
다음 문장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 따뜻하기만 했나?
그 안에서 숨이 막힐 때도 있었는데."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무게를 벗고 싶어 했다는 것을.
기록은 그렇게
내 안의 모순을 드러냈다.
"아, 내가 느낀 게 이거였구나."
쓰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며칠 후, 그 일기를 다시 읽었다.
신기했다.
내가 쓴 글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너, 사실 이런 마음이었구나."
쓸 때는 몰랐던 것들이
읽을 때 보였다.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거울이 된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된다.
그림은 내 안의 감정을 깨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깨어난 감정을 붙잡지 않으면
다시 잠들어버린다.
기록은 그 감정을 붙잡아준다.
형태를 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생각은 흩어지지만
쓰인 문장은 남는다.
.
그림 앞에서 느낀 순간의 울림은 사라져도
기록 속에 새겨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쓴다.
흩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림 앞에서 느낀 그 순간을,
오늘의 나를
조용히 붙잡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