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등은 완만한 언덕 같았다.
어린 나는 그 언덕 아래 있으면
세상의 바람이 다 멈추는 줄 알았다.
노을이 지는 들판에서,
할머니는 항상 땅을 향해 몸을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할머니 등 뒤에서
꽃을 꺾고, 개미를 세고, 구름을 보았다.
할머니의 꽃무늬 옷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옷에는 봄이 피어 있었다.
기차가 덜컹거렸다.
창밖으로 논밭이 지나갔다.
할머니가 과자를 사주었다.
빨갛고 노란 봉지. 바삭거리는 소리.
나는 과자를 꼭 안고 먹었다.
"나도 하나만 줄래?"
할머니의 손이 내밀어졌다.
나무껍질처럼 거친, 하지만 따뜻한 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그 손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른 나뭇가지 같았던 손가락들이.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밭을 일구고, 빨래를 털고, 솥을 젓고.
구부정한 허리로.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은 늘 땅을 향해 있었다.
우리가 흘린 신발 한 짝까지
다 주워 담으려는 듯이.
ㄱ 자로 굽은 허리.
그것은 멈추지 않는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랜만에 본 친척들이 많았다.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웃기도 했다.
나는 멍했다.
슬픔은 소리 없이 왔다.
사람들의 수다 소리에 묻혀,
아주 멀리 있는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 복도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발인식 때였다.
하얀 국화를 한 송이씩 놓았다.
마지막 말을 할 차례가 왔다.
무어라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꽃잎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투명한 방울 속에 모든 것이 비쳤다.
할머니의 굽은 등.
기차 안의 빨간 과자.
내밀었던 할머니의 손.
꽃이 무거웠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무거웠던 거다.
'할머니, 그때 과자 못 줘서 미안해.'
그 한마디가 목에 걸려, 꽃잎이 젖어버렸다.
사촌들과 나는 좋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외갓집에서의 여름들.
그 모든 것의 중심에 할머니가 있었다.
구부러진 허리로 우리를 돌보던 할머니.
이제 할머니는 더 이상 'ㄱ' 자가 아니다.
천국에서 할머니는 허리를 펴고 달린다.
꽃무늬 옷이 바람에 날리고
하얀 들판을 가로질러
하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일직선으로.
이제 할머니는 기차보다 빠르다.
굽은 등 뒤에 숨겨두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누구보다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