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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Feb 06. 2021

「멜랑꼴리한 양치기」【시】

양치기는 양들과 걸음을 맞추었다.

걸음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박동하고,

그는 양들의 털 속에서 나는 코리한 냄새를 맡고서 잠이 쏟아졌다.

그 품 속에서 긴 잠이 들어버렸다가 벌-떡 깬 그는

침이 흘러 축 늘어진 털 뭉치를 보며 무언가 모두를 곤두서게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멜랑꼴리한 양치기는

<늑대가 온다, 으아악> 관심을 끌기 위해 애를 썼다.

<진짜로?>하고 달려오면 숨어있다가 웃는 얼굴로 <놀랬지?>하고 맞이할 계획이었단다.

그런데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누구는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밥을 먹고 힘내자>라고 후하게 위로했다.     


참지 못한 멜랑꼴리한 양치기는 늑대가 되기로 결심했다.

늑대의 탈을 쓴 양치기는 돌진했다.

늦잠에서 벌-떡 깬 양들 모두가 도망가 버렸다.

양들이 흘리고 간 눈물에서는 눈에서 나는 시큼한 비린내가 났다.  

   

헉헉 거리며 순식간에

질퍽한 눈으로 자신을 닮은 멜랑꼴리를 여러 개 만든 양치기는

빈 목장 울타리에 걸터앉아 햇빛이 비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멜랑꼴리한 양치기」

 



원래는 1월 달 ‘오늘 시 썼니?’에 쓴 모든 시를 이곳에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올해 상반기에 응모하기로 계획한 문학상은 인터넷에 발표한 글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길래, 그만두었다. 문학도 음악계처럼 일단 자유롭게 음원이든 작품이든 발표한 후에, 비평의 대상이 되면 좋겠다. 일단 1월 달에 쓴 시 중 두 편을 이곳에 올려두기로 했다. 이옥섭과 구교환의 유튜브 채널([2x9 HD] 구교환 X이옥섭)에는 브이로그 겸 짧은 영화가 올라와 있는 것은 물론 이전에 찍었던 독립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것에서 조금 용기를 얻었다. (그 영상들에 대한 글도 쓰고 싶은데...) 패기롭게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글로 쓰지도 못하면서 여러 곳에 문학 텍스트를 응모하지도 못하면서, 언제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또 언제는 왜 용기를 내는지 멜랑꼴리한 양치기의 행동처럼 도통 알 수가 없다. (물론 멜랑꼴리한 양치기는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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