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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Jun 05. 2022

장률과 하마구치 류스케와 나

부분과 전체


(1) 이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장면들과 대화할 수 있다 (w. 방백)


  

영화 <해피 아워>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우연과 상상>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경주>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를 감상한 순서대로)     



인물의 직업은 영화에서 은근히 중요한 요소다.

특히 영화 <경주>에서 ‘최현’의 직업이 동북아 정치학 교수인 설정은 굉장한 장치다.

일본인 관광객이 한일 외교관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용기 내서 (일본말로) 발언할 때 그가 “(한국말로) 낫또가 참 맛있죠”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것은 교수라는 직업과 '현'의 성격에 대한 적절한 유머였다고 생각한다)

<해피아워>에서도 '후미'가 아트센터에서 움직임에 관한 워크숍을 주최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친구들은 워크숍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참여한 덕분에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한편 <우연과 상상>, <경주>는 독특한 유머코드를 공유하고 있다(애초에 이 두 감독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인 걸까?)

<우연과 상상>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여자'가 ‘전 애인’과 ‘전 애인과 썸타고 있는 또 다른 여자’와 동석했을 때 얼마나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가를 두 개의 '케이스'로 분할하여 보여준다. 또 세 번째 에피소드는 '어쩌다 보니' 동창을 연기하고 있었던 두 사람이 재회를 '일부러' 맞춰보는 장면으로 페이드아웃된다. 이는 ‘최현’이 7년 전에 ‘공윤희’와 처음으로 만났으며 그때 ‘최현’은 심지어 웃은 적이 있음을 (누군가가) 기억 혹은 상상하는 장면이 <경주>에서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것과 어쩐지 비슷하다.

 

끝으로, 워크숍의 강사와 참가자들이 사물의 균형을 잡아서 다리 하나로만 의자를 세우려는 장면(<해피아워>), ‘최현’이 초로부터 멀리 서서 큰 걸음으로 움직이며 촛불을 끄는 장면, ‘공윤희’가 왕릉 꼭대기에 누워 “들려요?”라고 땅에 묻는 장면(<경주>)들이 사랑스러웠다. 갑자기 경주를 가보고 싶은데 돈은 넉넉지 않고, 그래서 대신 <경주>를 보며 여행 경비나 아끼려고 했는데, 마음을 더 달랠 수 없게 되어 좀 더 곤란해졌다.



BGM. 방백의 <사랑>

<경주>에서 진상 교수로 등장하는 백현진 배우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의 동료 ‘방준석’이 뛰어난 뮤지션이었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방백'은 방준석과 백현진의 밴드다. 영화 OST는 방백처럼 듣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독립영화에는 넘겨듣지 못하는 노래들이 자주 있다(강진아 배우가 부른 <우리의 이유>(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OST)도 너무 좋음).     



(2) 3개월을 일하고 3개월은 마땅한 직업이 없었으니,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글을 못 쓰는 (혹은 쓰기 싫어하는) 이유: 

1.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끝나고 드디어 시간이 났을 때) 맛있는 걸 먹으면서 여유롭게 무언가를 생각하고 엄청난 걸 쓰는 장면을 상상한다

2. 달콤한 간식을 산다

3. 간식을 뜯거나 그릇에 담으면서 집어먹는다

4. 간식에 걸맞은 음료가 필요하다고 깨닫는다(사실 간식을 살 때부터 마실 것에 대해 생각함)

5. 음료를 찾는다

6. 본격적으로 간식과 음료를 먹는다

7. 다 먹는다

8. 노트북이 켜져 있는 걸 본다(뭘 하려고 노트북을 켰더라?)

9. (기억나기 전에)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비슷한 속성의 일을 찾아낸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거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커밍 업 쇼트』(제니퍼 M. 실바 지음·박준규 옮김)는 노동계급 청년 100명의 인터뷰를 통해 전체가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부분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나아가 부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노동계급 청년 중 한 명으로서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전체를 보기 두렵고 자주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작다’는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난 요즘 예전보다 이기적인 편이라고 느낀다). 사실 전체와 부분들은 모두 나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사회학과 예술작품에서 ‘부분과 전체’의 개념은 다르게 사용될 여지가 충분하지만, 이 글에서는 최대한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쉽게 말하면 부분은 운명적으로 전체의 반대편에 설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체에 종속되기도 싫다(적어도 '나'라는 부분은 그렇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즐겨하는 요가 수련은 우짜이 호흡으로 시작한다. 숨을 따라서 갈비뼈가 늘어나고 수축하는 걸 알아차리다 보면, 내 몸은 부분적으로 동시에 커지고 작아진다. 예컨대 눈을 감고 있으면 머리통은 콩알만 해지고 허벅지는 요가매트만큼 길어지고 단단해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물론 정반대의 느낌도 가능하다). 마치 물풍선처럼, 몸(전체)의 부피는 변하지 않으면서 한쪽(부분1)을 누르면 한쪽(부분2)이 엄청나게 팽창하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와 비슷하게 대부분의 문장과 현상은 (심지어 사람까지도!)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무게중심을 계속 바꾸려고 한다. 그리고 이다음 문장을 끝으로, 제목부터 여기까지 한 모든 말의 무게가 하나의 문장으로 실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나는 친구에게 내가 쓴 시를 책의 모양으로 엮은 물건을 주었고, 친구는 답례로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선물로 주었다(이 장면은 무엇의 부분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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