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림, 살기를 품고 살기

LIM KIM의 SAL - KI

by 목격자


김예림이 그간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는 신곡 'SAL-KI'를 발표했다. 동양의 분위기를 더한 비장한 비트와 칼날 부딪는 소리 위에, 날 선 문장을 던졌다.


<슈퍼스타K 3> '투개월' 이후의 김예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데뷔와 동시에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었는지 목격했을 것이다. 프로그램 종영 후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 그는 2013년 데뷔곡 'All right'을 발표하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 화제를 불러 모은 뮤직비디오는, 속옷만 입고 누운 김예림을 관음적 시선으로 담고 있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줄줄이 '속옷 노출, 파격, 섹시'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같은 해 두 번째 미니앨범에서 김예림은 '대중이 사랑한 김예림'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짧은 원피스와 하이힐. 신비로운 음색으로 첫사랑을 노래하는 순수한 소녀 이미지를 구현하는, 진부한 도식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발매한 세 번째 미니앨범은 김예림을 대놓고 성적 대상화한 결과물이었다. 이 앨범의 후속곡 '알면 다쳐'의 뮤직비디오는 당시 크게 문제 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다. 핫핑크 색이 지배적인 화면 위로 김예림의 방에 숨어든 남성들이 그를 관음 하다 부상을 입는 장면이 줄줄이 등장한다. 해당 곡으로 활동하는 내내, 금발의 김예림은 짧은 하의를 입고 골반을 흔드는 춤을 추었다.


Take dirty hands off of me.
나한테서 더러운 손 치워.

Don't identify self in the male gaze.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마.

I'm Unfuckable Creature.
난 성적 대상화나 당할 존재가 아냐.


김예림이 4년 간의 침묵을 깨고 인디펜던트 뮤지션으로서 발표한 'SAL-KI'의 가사를 곱씹어 보면, 그가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위해 얼마나 벼르고 별러왔는지 분명하게 보인다. 지난 26일 김예림은 지니뮤직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시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풀어놓았다.


스크린샷 2019-06-02 오후 3.31.42.png 지니뮤직 LOGMENTARY, 김예림 (LIM KIM) 편


"당시 갖고 있던 불만이든 공격성이든, 이런 걸 곡으로 토한 느낌이에요."


"미스틱을 나온 이유는 좀 복합적이에요. 첫 번째로는 스스로 제 인생을 살기가 어려웠어요. 음악을 하고자 했던 건 저 자신의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직접 세울 수 있는 목표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 것도 있었어요.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에 나오고 회사 등에서 저에게 '같이 하자'는 제안을 주신 건, 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저도 제 자신에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데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주체가 본인이 됐을 때 좀 더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 주체를 나로 한번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특히 해외에 살면서 동양인 여성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자신 안에 있는 에너지를 뿜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내도 되는구나', '내 목소리도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제일 반가울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건 이렇게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기는 거예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밝히는 김예림의 이야기 앞에서, 여성의 투지가 솟구친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을 수없이 목격한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일에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 체화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살기를 품어야 한다. 개인의 살기가 모여 쓰러뜨린 사회가 우리를 살게 하지 않을까.


나는 일찌감치 김예림의 EP를 올해의 앨범으로 정해두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