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좋지 아니한가?

비 내리는 날 산책을 합시다

by 나나


두 번, 세 번 곱씹어 생각해서 얻은 깨달음으로

며칠을 살고 나면, 또 다른 내가 되어 버린다.

다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걸 글로 쓰다 보면 조금은 길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주로는 길을 잃고 생각에 잡아 먹힌다.

그럴 때면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으로 주문을 거는데, 이 생각이 그새 내 안으로 침투했는지, 시간이 흘러 그랬는지 빠져나온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은 힘이 있는 걸까?

오늘은 원래 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내리는 장대비, 감성에 젖어 고여있는 생각들이, 마음들이 줄줄 새어 나와 버렸다. 그렇게 나온 서문,

이번 주말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한다.

비가 오면, 어떤 가게들의 문 앞 오래 쌓인 먼지들이 씻겨 나가고, 하수도 아래 물은 흐르기 시작한다.

빗 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는 동물들에게 충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며, 공기는 한껏 청명해진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을 때의 맑은 하늘과

맑은 숨을 들이쉴 걸 기대하다 보면 며칠 축축한 것쯤이야, 별 것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축축한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빗물을 흡수하는 나무처럼 수분이 온몸에 감싸지는 느낌이라 왠지 충만하고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맑아지고, 새로워지는 느낌이 좋다.

아무튼, 비는 좋다.

비 내리는 걸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냄새이다.

몇 배는 강렬해지는 냄새, 특히 풀 향기는 아주 반가운 냄새다. 숲으로 가지 않아도 피톤치드가 느껴지고, 도로 앞에서도 매연 냄새보다 비 냄새가 강해져서

모든 냄새가 비에 가려져 향기로워지는 것을 좋아한다.

(왠지 비 향기 보다 비 냄새가 정겹다.)

비가 오는 날 큰 우산을 쓰고, 길거리를 산책하면 이런 것들을 모두 느낄 수 있으니, 비 내리는 날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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