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독야독

『곤란한 결혼』 독후감

2025년 3월의 독서

by 야간선비
한 줄 소감 :
감정과 갈등으로 혼탁해진 결혼생활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곤란함은 이내 가라앉고 지혜와 감동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곤란한 결혼』,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솔바로 옮김, 민들레, 2017


내 결혼생활이 곤란해서 이 책을 집어든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제목이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대놓고 결혼을 곤란하다고 하다니. 관심이 동해서 읽어보았는데, 생각 외로 내용이 너무 실하고 괜찮다.


저자는 일본인 사상가인데,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를 전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레비나스가 누군지 대충 찾아보니, 타인•타자•관계를 다루는 철학자인 듯하다. 레비나스를 공부할 생각은 없고, 다만 그 전반적인 문제의식과 천착의 대상은 대강 알겠다. 이 책의 저자가 가진 관점의 필터는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서부터 일단 시작하겠구나.


책은 일반적으로 결혼과 연애에 대해 흔히들 생각하는 질문들에 대해 조곤조곤 답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을지, 결혼 후에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해야 하는지, 집안일 배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부모님과의 갈등이 있는데 어찌해야 하는지, 권태기가 오면 어떡해야 하는지,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지 등등,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들에 대해 저자는 (철학 전공자답게) 꽤나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그렇다고 무게감이 느껴지진 않게끔, 친절하고도 친근하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서술한다. 냉철한 이성을 기반으로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안에 배려와 유머와 따뜻함도 섞여 있어서, 읽는 내내 저자로부터 한 수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여기 브런치 플랫폼에서 내 결혼생활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써서 <아내 몰래 쓰는 일기>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으로 엮은 바 있다. 내가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 내가 했던 결혼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이 몇몇 있어서 좋았다는 것과 더불어, 내가 나의 결혼생활에 대해 숙고하고 반추하는 그 행위 자체가 매우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내와의 결혼생활에, 지금의 삶을 만들어준 아내에게 다시금 감사한 마음이다.


‘진짜 자신’을 찾겠답시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는 사람의 그 모습 자체가 진짜 모습이다. 따라서 누굴 만나든지 그 상대에 따라 나타나는 나의 모든 모습들이 전부 나 자신이다. 결혼이 적절했는지는 ‘지금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나 자신’을 데리고 와서 비교해 봐야지만 알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제3자로부터 누군가를 소개받았는데 본인의 기대 이하라면, 제3자의 눈에는 내가 그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결혼은 대단히 실리적이면서 리스크를 헷지하는 공동체 구성 행위이다. 앞으로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다. 결혼은 안전보장을 위한 사회계약이며, 내가 지쳐 쓰러졌을 때 배우자가 베푸는 도움이야말로 결혼의 참맛이다. 앞으로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 힘든 시기가 찾아왔을 때 ‘아, 결혼하길 잘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지금 결혼하는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말과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말은 사실 같은 말이다.


본인의 인생이 즐거우면 권태기가 와도 치명적이지 않다. 권태감이란 본디 자기 인생에 질려버린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다. 이를 인정할 수가 없으니 배우자 탓을 하게 되는 것. 자신이 변하면 보이는 세상도 변한다.


결혼은 사사로운 일이지만 둘만의 일이랍시고 거칠게 다루면 금방 무너진다. 결혼은 잠정적 관계가 아니라 산이나 바다와 같은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실존한다는 확신범적 거짓말이 결혼생활을 지탱한다. 이를 위해 하객을 모시고 결혼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렇게 공적인 속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배우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상대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고 생각되어도 괘념치 말자.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고, 같이 먹고 놀며 시간을 보내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등을 내어준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결혼은 훨씬 감동적이며, 이로써 결혼은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대예보 : 호명사회』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