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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역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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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해룡 Oct 22. 2020

초년 기신의 표상- 나의 아저씨 '이지안'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보이는 성격이나 행동을 종합할 때  

'아 이 사람은 기신운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던 이지안(아이유)도 그렇다.


우선 기신운이란, 한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바탕으로 산출해낸 사주팔자를 근거로 그가 자신에게 해로운 시기를 지날 때를 뜻한다. 아주 정확한 예는 아니겠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홍시는 제철이 10~11월 정도다. 한여름에 홍시를 구할 수가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구할 수 있기야 하겠지만은, 제철이 아니어서 맛도 없을 테고 일단 그 시기에 난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굳이 끼어 맞추자면, 제철 가을 시기를 제외 나머지 시기는 홍시에겐 기신운인 셈이다.


과일과 마찬가지로 지구 상의 모든 것은 자연환경 혹은 순리에 영향을 받는다. 인간도 그렇다. 사주팔자는 인간이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자체로 고유한 성질을 가지게 된다고 본다. 그 성질을 파악하면 시간 흐름에 따라 그 자가 흥하고 길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예견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홍시가 제때에만 맛있게 익는 것처럼 사람도 그 자체의 사주팔자 성분(?)을 근거로 자기에게 맞는 '때'가 있다.


달리 말하면, 인생의 '전성기'는 사람마다 다를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10대에, 어느 누구는 20대에, 누구는 40대, 누구는 60대에 올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세상은 공평하다고 볼 수 있는지, 초년에 불행했던 사람은 중말년에 발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초년에 용신운(자기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시기를 지날 때- 인생에서 가장 부흥기)이었지만 중말년 어느 시기에 기신운을 맞는 경우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류는 이런 롤로코스터의 높낮이가 극명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외부에서 볼 때 마치 '인생역전' 혹은 반대로 '패가망신'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런 경우는 사주팔자 원국이 한쪽으로 쏠려있는 등 비교적 극단적일 확률이 높다. 반면 사주팔자 원국이 쏠려있지 않고 무난하다면 그 자는 대운(10년 주기), 세운(1년 단위)에 크게 상관없이 무난한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이 글에서 얘기할 이지안(아이유) 캐릭터는 아마도 사주팔자 원국이 무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캐릭터 설정을 살펴보면 초년 불행이 심각한 수준이다. 6살에 병든 할머니와 함께 남겨졌다. 어린 시절에 이미 살인(정당방위)을 저질렀다. 성인이 돼서도 버는 족족 사채 빚을 갚는 데 써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곡예질을 누구보다 빠르게 터득해야 했다. 얼굴엔 늘 상처가 가득하고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쉽게 공감받지 못할 인생을 살았기에 친구도 없다. 대화도 없다. 누구보다 밝고 씩씩하게 자랐어야 할 나이에 누구보다 어둡고 불행하게 자라 세상에 대한 냉소만 남았다.


물론, 기신운은 경제적 안정이나 성공과는 별개로 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초년 기신이어도 집안이 금수저라면 경제적인 고통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기신운이라면 세상은 어떻게든 다른 시련을 준다. 예를 들어 후계구도에서 밀려나 밖을 떠돌아다닌다든지, 혹은 도화살 등 살(殺) 작용이 흉해 늘 구설수에 시달려 정신이 피폐해진다든지 말이다. 이지안은 경제적인 궁핍은 물론, 너무 많은 고통이 한꺼번에 초년에 몰렸다. 그야말로 '핵'기신운이라 할 만하다.


극 중 박동훈(이선균)은 회식 장소에서

그 자리엔 없는 이지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박동훈 : 너희들은 불쌍하냐?


회사 후배 : 뭐가 불쌍해요 그런 싸가지가.


박동훈 :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 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박동훈은 이지안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남다르게 어두운지, 냉소적인지에 대한 이유를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이지안의 기신운은

나의 아저씨 OST의 대표곡인 어른(노래 손디아)에서도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하략)...



특히 2절의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과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라는 구절은 기신운을 겪은 모든 이가 공감할 만한 표현일 것이다.


나도 사람들 무리가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행복하게 자기들끼리의 교신을 주고받는 그들 속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안으로만 침잠하는 내 모습을 보곤, 부모를 포함한 타인은 "도대체 왜 그래"라고 묻는 게 전부였다. 기신운은 그런 것이다. 나말고는 아무도 내 고통을 모른다. 나조차도 정확하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몸과 정신은 파괴된다. 그런 인간이 행복한 무리 속에 섞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기신운은 언젠가는 끝난다. 특히 그 고통이 깊었던 사람일수록 언젠가는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이지안도 드라마 끝에서는 교운기(10년 단위인 대운이 다음 대운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거쳐 이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이다. 이지안은 회사 동료 혹은 친구들로 보이는 무리들과 커피숖에 나타난다.

그리고 박동훈을 만난다.


그리고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따뜻한 어투로

"오다가도 봐도 몰라보겠다"며 나지막이 말한다.


이지안은 아직은 본인의 달라진 모습이 서툰지

씁쓸한지 좋은지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다.  



동료들이 지안에게 오라고 부른다.

이제 그녀도 친구가 생긴 것이다.


친구가 생긴 이지안을 보고 대견한 듯 미소를 짓는 박동훈..




그리고 드라마는 유명한 대사를 끝으로 끝난다.

둘이 실제 주고받은 대화가 아닌, 상상 속 둘만의 교신 같은 느낌이다.



박동훈 :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이지안 : '네...    네!'




물론 아직 이지안은 기신운을 벗어나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할 수 있다. 너무 세게 초년 기신운을 맞았기 때문에 그 암울한 어둠을 걷어내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마지막 지안의 미소는 새로 시작할 그녀의 인생을 수줍게 대변하고 있다.


이지안처럼, 진짜 현실 속에서 기신운을 지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진정한 미소를 입가에 지을 수 있기를...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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