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며칠 전 주말 저녁 뜬금없이 집주인이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다. 나는 집 관련해서 전달사항이 있나 싶어 대문을 열고 고개를 삐죽 내밀었는데 잠시 들어오겠단다. 식탁의자에 자리를 잡고 안더니 집주인은 괜찮은 사업이 있어 소개해주고 싶어 왔다며 목요일 저녁 8시에 보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샘플을 줄테니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집에도 나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샘플을 나누어 줄일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나누어 주면 될 것이지 이런 심부름까지 해야 하나 순간 기분이 나빠 웃으며 “제가 해야 하나요?” 반박했지만 “지금 집에 다 있으니까 나눠줘요.”라는 어이없는 한마디에 뒤이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직접 내가 샘플을 돌렸다. 우리 집주인은 항상 이렇게 경우가 없었다.
집주인이 그렇게 통보를 하고 간 뒤 직감적으로 소개할 사업이라는 것이 다단계사업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으면 될 것을 바로 거절하지 못해 일을 질질 끌었다. 결전의 목요일 저녁 8시. 연락이 왔다. 자기 집으로 올라오란다. 가보니 어떤 남자가 같이 있었다. 그 남자는 집주인을 대신해 열심히 사업설명을 했고, 결국에 예상이 맞았다. 다단계였다.
집주인은 같이 데려온 사람의 설명이 성에 차지 않는지 자기가 나서서 열심히 설명했다. 돈이 되지 않으면 각서까지 써주겠단다. 자기는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며 이미 교육사업으로 한 달에 1000만원 가량의 소득이 있지만 이게 너무 좋아서 ‘소시민’인 자기 건물 세입자들에게 소개를 먼저 하는 거라고 말했다. 성의와 허세를 보태가며 사업설명을 하는데 사실 나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까지 나에게 다단계사업을 권유할까? 돈 잘 번다고 나에게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사실은 정말 절박한 이유가 있을까. 엄청 미운 집주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집주인이 안타까웠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떤 상황이든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단 한번 시도해본 것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개 세입자인 나에게 되든 안 되든 시도라는 것을 해본 사람이다.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시도를 집주인은 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가구 건물의 집주인이고 그 시도를 두려워하는 나는 세입자로 살고 있는 차이가 아닐까.
무언가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소소하게 도전한 많은 것들 중에 아직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지에 이른 도전결과는 없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도전 중이거나, 할까 말까를 아직까지 고민하고 생각만 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막상 용기를 내서 시도하다보면 어떻게든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지만 그 결과가 꼭 좋지 않은 경우만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익히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도전하기가 망설여지고 멈짓하는 경우도 있다.
해보지도 않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조언이나 주변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겁을 내고 있는 나를 아직까지 발견할 때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지만 번데기를 벗고 나오는 나비처럼 극적인 변화나 환골탈태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집주인은 어찌됐든 건물주다. 자기가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몸과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는 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꺼내는 화두다. 아마 건물주가 되기 위해 물려받은 재산 없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 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상상이 되고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나에게 경우가 없고, 인정이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노력과 결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불과 5년 만에 세입자에서 건물주가 되기까지의 그 스토리를 알기에 그 사람이 나에게 가끔 경우가 없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사람임을 잘 안다.
집주인은 나에게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자극이 되는 사람이다. 부부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본받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끔 우리를 무시하고, 인정이 없고, 경우가 없어 이 집에 안주하기보다 빨리 더 나은 집으로 벗어나고 싶게 만들어 준다. 어느 주말 저녁 대문 노크로 시작된 집주인의 행동에서 많은 것을 보고 깨닫는 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