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어제는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선배의 맞벌이 생활에 대한 고초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둘째와 같은 나이의 딸을 키우고 있는 선배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아이를 대신 봐줄 수 있는 가족이 없기에 두 부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쟁을 치루고 있을 것이다. 말하는 동안 선배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서러움이 가득 들어나 있었다. 부부 서로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육아라는 별도의 일이 하나씩 더 생기게 되고 사소한 문제에도 예민해지고 서로의 대한 이해가 부족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를 하는 내내, 마치 내일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어졌다. 마치 5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고향을 떠나 살아보지 않은 와이프는 직장 역시 같은 지역의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평생을 한 지역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나라는 남자를 만나고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경기도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다. 주변에 가족, 친구, 지인도 없는 상태에서 첫 아들을 낳은 우리는 정말 아무 도움 없이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만 육아를 해야 했다. 와이프가 출산으로 인해 육아휴직을 하고 있을 때만해도 그나마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서로의 입장을 이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는 나의 어려움을 알아주었고, 나는 집안에서 아이에게 메여있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최대한 육아에 집중했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버텨왔지만, 좋은 시기에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와이프는 첫째가 10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복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를 볼 수 없게 된 것 말이다.
매일 아침이 전쟁터였다. 어제 저녁에 먹은 식기는 싱크대에 가득했고, 자신은 굶어도 아이의 아침은 챙겨야 했기에 한손으로는 출근 준비를 나머지 한손으로 아이 입에 밥을 떠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의 출근은 8시30분, 와이프의 출근은 9시. 단지 출근이 나보다 늦다는 이유로 와이프는 아이의 등원을 책임져야 했다. 나는 최대한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나왔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먼저 가는 내가 항상 야속했을 것이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몸으로 그 무거운 짐과 아이를 안고 지각할세라 어린이집까지 뛰어다녔을 그녀,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매일 매일 울음으로 생이별을 완강히 거부했을 우리 아이.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았을까 싶다. 단지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인데..과연 우리는 그때 행복했던 것일까?
와이프의 어려움은 정작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후였다. 아이를 등원을 시킨 후 그때부터 그녀는 죽음의 레이서로 변신한다. 약 15km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각만큼은 면하기 위해서 신호는 불사하고 끼어들기 추월하기는 기본으로 매일매일 손에 땀을 쥐는 레이싱을 해야만 했다. 그걸 알고 있는 나는 매일 9시가 되길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직장에 도착했는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9시에 울리는 전화가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지만, 매일 받는 전화가 그렇게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는지 그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나마 아침에서는 서로의 배려가 존재했었다. 아니 내가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라 와이프를 이해하려고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업무에 지쳐있는 퇴근길부터 서로의 핑계가 시작된다. 둘 중 누가 더 피곤하다는 것을 티를 내야 하듯 서로의 힘든 점을 말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그녀가 항상 먼저 퇴근해 아이를 찾아왔다. 안정된 직장인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기업에 다니는 내가 조금 더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에서도 남존여비 사상이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와이프가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육아하러 가보겠다고 하면 ' 그걸 니가 왜 신경 쓰니?'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시선이 느끼면서 우리의 조직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깊이 했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서야 가족이 모였지만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정신없어진다. 드라마에 나오듯 가족끼리 둘러앉아 따듯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은 너무 과한 설정이듯 싶었다. 또 다시 전쟁같은 내일 아침이 다가 올 것이기에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씻기고 등원 준비를 하고, 와이프는 내일 아침에 먹일 아이 아침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싱크대는 다시 어질러지고, 거실과 방은 전쟁터가 다시 되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맞벌이라는 당연한 생활에 찌들어 가고 있었고, 어느새 일상의 행복은 곤욕으로 바뀌고 있었고 우리가 일해야 하는 이유를 잊은 채 그냥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ᅠ한번은 아이가 장염에 걸려 1주일을 넘게 입원을 해야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에 둘 중에 한명을 휴가를 써야 했었다. 그럼 누가 3일을 쉬고, 누가 2일을 쉬어야 하는가가 문제로 남았었다. 이때도 물론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유로 와이프가 3일 휴가를 쓰고 병실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을 하였다. 내가 병원에서 아이를 보게 된 날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서러움이 병원에 있으며 물밀듯이 밀려왔다. 분명 회사에는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며 휴가를 썼는데..내가 왜 미안해하고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일까? 휴가를 쓰고 놀러간 것도 아니고 나는 좁은 병실에서 아이와 부대끼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고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정말 서러웠다. 나를 위해, 내 가족과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과 결과가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그냥 힘들고 짜증나고 예민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똑같을 것만 같았고, 진짜 그러한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그때부터였을까? 오직 우리 가족의 행복에만 집중하자는 불씨가 내 가슴속에 박힌 것이 말이다. 지금의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을 하지 않는 삶을 개척하려고 한다. 가족과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삶을 개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 단 몇 시간만 같이 지내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되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하고 남은 시간에 일을 하는 그러한 삶을 설계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모든 우선순위는 가족이 되었고, 지금도 역시 불변하는 나의 기준 중 하나이다.
요즘에는 일하지 않는 자는 무능력하거나 게으른 사람처럼 취급되기 쉬우므로 어떻게 해서든 일이란 것을 버리고 살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예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처럼 남자가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든 자기만족을 위해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조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아주 두려운 일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는 대부분의 젊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도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조직에 충성하여 한 푼이라도 아껴 젊은 날에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가족의 삶을 버리고 그렇게나 회사에 충실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꼬박꼬박 월급을 잘 주는 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와이프는 사람들이 가끔 부러워한다는 공무원이다. 그렇게 둘이 직업을 가지고 맞벌이를 했을 때보다, 와이프가 휴직인 지금 상태가 우리는 너무나도 좋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 그런 말이 절대 아니다. 서로가 다른 위치에서 서로의 기댈 곳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 삶을 평온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고, 나는 그녀의 힘이 되어준다. 이제껏 맞벌이라는 이유로 서로가 바쁜 일상으로 인해 놓치고 살았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꿈을 바라봐줄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놀아보니 너무 좋다는 그녀. 그래서 절대 복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지내고 있다. 그리면서 나에게도 같이 놀자고 손을 내밀어준 그녀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는 맞벌이라는 생활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약 그녀가 복직을 한다고 하면, 나는 그 즉시 회사를 박차고 나올 것이다. 최소한 두 명 중 한명은 조직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더 좋은 건 두 명이 모두 울타리에서 벗어나 서로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서든 이겨내고 해내야하는 우리의 숙제이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가족이란 제일 중요한 기준을 뒤로 미루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우리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보폭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