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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스마미 김여사 Jan 06. 2019

아이 둘 낳고 보니 더 열심히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이를 낳지 않고 딩크족으로 사는 부부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이유가 뭐든지 간에 때로는 그들의 홀가분한 삶이 부러울 때가 있다. 치워도 돌아서면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볼 때, 어린 시절 나를 떠올리며 ‘다 나를 닮은 탓이다.’라 진정하고는 정리하기를 일주일쯤 포기할 때도 있다.


 우아한 삶을 항상 꿈꾸지만 현실은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분명 새벽 6시부터 아이들 깨우고 먹이고 열심히 준비하는데 왜 내가 세수할 시간은 안 나는 건지. 다 제대로 못 가르친 내 탓이거나 나의 느려터짐을 유전 받아 그런 것이니라 생각한다. 나도 분명히 열심히 움직이는데 어린이집 등원 길에 마주치는 다른 엄마들은 세수도 하고 화장도 하고 머리도 감고 오는 것 같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일찍 일어난 건지 아님, 어떻게 준비를 하고 나오는지 정말 지나가는 길에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이상한 엄마라고 좁은 동네에서 소문날까봐 그러지도 못한다.


 윗집 아주머니는 아침 8시 반만 되면 청소기를 돌린다. 물론 아들이 하나에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우리아이들보다 손이 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8시 반이면 들리는 청소기 소리에 나는 감탄한다. ‘오늘도 청소를 거르지 않는구나. 어찌 저리도 부지런 할 수 가.’


 언제쯤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들은 내가 누워만 있으면 올라타서 자는 시간이 아니면 누워 있을 수도 없고, 내가 쉬는 꼴을 못 본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집안일에 치여, 아무리 해도 티도 안 나고,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으려니 속이 썩는다.


 꿈이 있으면서 한 발짝도 띄지 못한 것 같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은 아들 둘이 버겁기도 하다. 특히 아직 어린 아이들을 혼내고는 상처를 준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는 날은 더하다. 왜 잘 키우지도 못할 것을 애를 둘이나 낳아서 서로 상처를 주는지 못난 나를 자책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러한 변화는 겪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책임감과 절박함이 지금의 나의 성장을 만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른으로써 더 성숙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야 하는 책임감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비록 아직은 아침에 세수도 못하고 아이들을 등원 시키는 날이 가끔 있지만 더 우아하고,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변하는 나를 발견하며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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