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저녁 식사 중 신랑이 휴대폰을 보다 말했다.
“가장산업단지 고가 옆 옹벽이 무너졌대. 사람이 죽었대.”
그곳은 신랑이 수원 거래처를 오갈 때마다 지나던 길이었다. 우리와 같은 오산 시민이라면 수원으로 향할 때 자주 이용하는 서부우회도로이기에, 그 사고 소식은 결코 남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언론은 일제히 이 사고가 인재(人災)라며 비판의 기사를 쏟아냈다. 오산시는 불과 한 달 전인 6월, 정밀안전점검 결과 B등급(양호)을 받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옹벽이 부풀어 오르는 ‘배부름 현상’과 하얗게 변하는 ‘백화 현상’ 등 전조가 선명히 나타나고 있었다. 결국, 사고 하루 전인 15일 오전, 한 시민이 "지반 침하가 우려된다"며 사진까지 첨부해 제보했지만, 시는 '육안상 특이사항 없다'며 안일하게 판단했고 상부 도로만 통제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위험 신호가 반복되었음에도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도시 개발과 경제 성장을 우선시한 행정이 ‘기초 안전’이라는 본질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사고가 발생한 오산의 ‘가장산업단지’는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을 비롯한 다수의 화장품 기업들이 입주한 대한민국 화장품 산업의 심장부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기업인 램리서치(Lam Research)와 엘오티베큠(LOT Vacuum), 필옵틱스(Philoptics) 등 60여 개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둥지를 틀면서, 오산시 경제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자 그야말로 오산의 자부심과도 같은 곳이다.
사고가 난 서부우회도로와 가장산업단지는 단순한 도로와 공단이 아니라, 오산시가 자립 재정과 도시 위상을 상징하며 홍보해 온 대표 인프라다. 하지만 정작 시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듯한 모습이다. 이는 마치 고급 세단에 각종 편의 기능은 갖췄지만, 고장 난 브레이크로 질주하는 차와 다르지 않다.
옹벽 붕괴 사고의 복구 작업이 시작되면서 경찰은 사고 지점을 중심으로 교통통제 범위를 넓혔다. 그 여파로, 인근 도시에서 가장산업단지로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오산에서 수원, 화성으로 향하는 시민들은 극심한 차량 정체를 겪고 있다. 관리 부실의 대가를 시민들이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산시가 내놓은 "교통통제를 하고 18일 보수 공사를 하려고 했는데, 옹벽이 무너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라는 해명은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오산시는 안전을 바라는 시민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축제나 보도블록 교체, 화단 조성처럼 눈에 띄는 사업에 집중하기보다 시민의 ‘안전’에 행정의 우선순위를 둬야 할 때다.
시민 역시 ‘안전 불감증’에서 깨어나 ‘안전 민감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도로의 작은 균열이나 낯선 변화를 '이 정도쯤이야' 하고 외면하는 대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안전 신문고에 기록을 남기는 것. 그 작은 실천이 나와 내 이웃을 지키는 방법이다.
희생되신 분은 ‘한 사람의 이름 없는 죽음’이 아닌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였다. 어쩌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생각했을 평범한 이웃이었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는 옹벽의 위험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안전’이라는 사회적 빚을 졌다.
그렇기에 오산시와 시민 모두에게 7월 16일은 '안전이 무너진 날'이 아니라, '안전을 다시 세우기 시작한 날'로 기억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을 딛고, 우리 모두가 더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책임을 다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