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피해자들의 파수꾼, 민생연대

by 수연길모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김건희 전 영부인의 지난 3년은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의 기록이었다. 수천만 원짜리 명품 액세서리와 그림, 청탁용 금 거북이까지 그 목록은 화려하다. 심지어 그녀는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양평 고속도로 노선까지 자신의 고향 쪽으로 변경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정황이 포착되었다. 연일 갱신되는 매관매직과 부정 의혹 보도는 그녀의 거리낌 없는 욕망의 행보를 증명하고 있다.

전 영부인의 쏟아지는 비리 의혹 뉴스에 분노와 피로가 몰려올 즈음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느닷없이 <역시 참지 않는 한국인들, 방송 일주일도 안 돼 ‘발칵’>이라는 1년 전 JTBC 뉴스를 추천했다. 10분 남짓의 이 영상은 충격적인 사람을 담고 있었다.


"정말 충격적인 사람입니다"…방송 일주일도 안 돼 벌어진 일 #뉴스다 / JTBC News


3평 남짓한 허름한 사무실이 보였다. 도배지는 찢겨 너덜너덜했고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질 것 같은 책꽂이며 서류 뭉치는 아무 곳에 뒹굴고 있었다. 그곳은 ‘민생연대’라는 곳이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누런 전화기가 놓인 책상 앞에는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의 수척한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제주 출신인 그의 이름은 송태경. 『자본론』 박사이자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그는 2008년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를 창립하고 사무처장으로 일해 왔다.

KakaoTalk_20251012_221915367.jpg JTBC 최광일 PD와 송태경 사무처장이 민생연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장에 벽지가 너덜너덜한 모습이다. ©JTBC

민생연대는 사채 피해자들을 돕는 곳이다. 피해자 상담, 불법 이자와 원금을 재계산, 고소·소송과 환급·채무 조정을 지원한다. 어떤 피해자는 딸의 교복값 때문에 사채를 쓸 수밖에 없어서 30만 원으로 시작했다. 30만 원을 빌린 지 일주일 만에 50만 원을 갚았고, 두 달 뒤엔 빚이 1억 원으로 불어났다. 피해자가 못 갚는 상황에 빠지면 사채업자는 또 다른 사채업자를 소개하며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던 이 피해자는 송 사무처장을 만나 다시 회생할 수 있었다. 송태경 사무처장은 이 일을 16년간 무료로 해왔다.

이 영상을 만든 JTBC 최광일 PD는 2016년 불법 사채 취재 중 송 사무처장과 인연을 맺었다. 최 PD의 눈에 비친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피해자들의 자립을 돕는 모습이 활동가라기보다 종교인에 가까워 보였다고 한다. 최 PD는 취재로 지칠 때마다 그를 찾아 위로를 받곤 했다.

2024년 사채 피해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민생연대가 해산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후원으로 운영되는 민생연대는 코로나 이후 후원이 끊겨 더는 꾸려갈 수 없었다. 사무실 운영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밤중 침입한 도둑이 오히려 5만 원과 메모를 남기고 간 일화는 그 열악함을 보여준다. 송 사무처장은 3년을 버티다 주택담보 대출마저 막히자 결국, 해산을 결정했다. 최 PD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살고 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민생연대의 마지막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을 보면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은 순간이 있었다. 송 사무처장이 이 일을 계속해온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내가 좀 가난하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잖아요”

21세기가 시작된 지 25년이나 되었고 ‘영끌’과 ‘빚투’로 일확천금을 좇는 시대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KakaoTalk_20251012_222001614.jpg 송사무처장의 저 말은 많은 이들을 울렸다. ©JTBC

그의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지켜주려는 그 마음에,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싶다던 주인공 홀든처럼, 그는 사채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불법 추심으로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을 지켜 왔다. 벼랑 끝에서 16년 동안 홀로 파수꾼으로 살아온 그의 모습은 최광일 PD의 말처럼 ‘사채 피해자들의 성자’였다.

그런데 영상은 민생연대가 문 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보도 이틀 만에 500명이 넘는 시민이 3,000여만 원을 후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후속 보도로 약 8억 원으로 이어졌다. 송 사무처장은 드디어 자신도 최저 임금을 받으며 민생연대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영상의 댓글에는 이런 글들이 줄을 이었다.

“선생님의 치아도 꼭 치료해주세요. 본인도 돌보셔야 합니다. 5만원 후원합니다.”

“16년 동안 몰라서 미안합니다. 후원할게요.”

“저도 통장에 6만 원밖에 없지만 바로 기부했어요. 부끄럽지만 뿌듯하네요.”

“인테리어 업자입니다. 후원도 후원이지만 낡은 민생연대 사무실 보수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왜 많은 시민은 그에게 공감하고 후원에 동참하게 되었을까. 양극화와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한 맑은 영혼의 지식인이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인간 존엄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우리도 손을 내밀어 함께 연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지난해 민생연대는 시민들의 후원으로 사무국장이 복귀하고 사무실도 재정비되었다. 경제학 박사와 변호사를 전문위원으로 채용하여 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침내 송 사무처장도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최광일 PD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전했다.

“송 사무처장의 기적 같은 삶이, 시민들의 기적 같은 보답으로 돌아온 겁니다.”

우리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걸지 않아도 만 원의 후원금으로 누군가의 내일을 빛낼 수 있었다.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손목에 채울 수는 없어도, 우리는 이웃의 안녕을 묻고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살게 하는 연대하는 공동체가 이뤄내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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