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팬클럽 모임에 가다

'조용필 앓이'에 빠진 우리, '그래도 돼'를 함께 듣다

by 수연길모

지난 9월 6일 광복 80주년 KBS 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콘서트에 다녀온 뒤 후유증이 컸다. 식탁에서, 헬스장에서, 출퇴근길 차 안에서 나는 그의 노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https://brunch.co.kr/@nikita75/106 미지의 세계로 그와 함께 간다 참고)

▲응원봉고척돔을 환히 밝힌 수많은 응원봉들처럼, 조용필의 여정을 응원한다. ⓒ 김윤희

그 증상은 추석 때 TV를 통해 콘서트 실황을 보고 난 뒤 더 심해졌다. KBS가 방송된 29곡의 무대를 유튜브에 올리자, 팬들은 다시 그날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도 거의 매일 유튜브에 댓글을 달았고 최신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댓글 몇 줄로는 그 벅찬 감동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이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실컷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때 문득 팬클럽이 번쩍 떠올랐다. 온라인을 뒤져 '위대한 탄생'이라는 팬클럽에 가입했다. 그곳에는 '조용필 앓이'를 수십 년간 해온 선배 팬들과 나처럼 새로이 그에게 빠진 병아리 팬들이 수없이 많았다. 매일 들어가 그들의 글을 읽고 소통하니 답답함이 사라지고 새로운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매일 팬클럽 사이트를 들락거리던 어느 날, 공지사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1월 1일 토요일, '수원·경기 남부 가을 야유회'가 오산 물향기 수목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사는 오산에서, 그것도 조용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단체로 만날 기회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콘서트를 함께 다녀온 신랑과 함께 생애 첫 팬클럽 오프라인 모임에 가기로 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실컷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1일 아침. 분주히 도착한 물향기 수목원 주차장 입구에는 벌써 회원들이 삼삼오오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들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런데 몇몇 분이 우리 부부가 콘서트 화면에 잡힌 모습을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어색함도 잠시 금세 콘서트 이야기에 원래 아는 사이처럼 친밀해졌다.


인사를 하고 보니 그분들은 이미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단체로 제작했을 법한 반짝이 폼보드로 만든 예쁜 이름표였다. '뼛속까지 조용필', '단발머리 영란', '헬로', '황진이', 'pillonly' 등 명찰에도 온통 조용필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나무 데크로 이동했다. 돗자리가 깔리자 운영진들은 끊임없이 간식을 쏟아냈다. 잔기지떡, 따끈따끈한 커피, 식혜, 생강차부터 시작되었다. 한 회원이 온종일 튀겨 꿀에 절인 피칸 강정과 또 다른 회원의 후원이었던 귤까지 더해지자 마흔여섯 명의 팬들은 점심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불렀다.


조용필 팬심 간식들 회원들이 준비한 잔기지떡, 커피, 식혜, 피칸 강정, 귤 등 다양한 간식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 김윤희

회원들의 주요 나이대는 50대 후반에서 60대였다.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용필의 노래를 들으며 자라온 세대였다. 팬클럽 '위대한 탄생'은 2001년에 창단되었다고 했다. 한 운영진은 2013년 조용필이 19번째 앨범 '헬로(Hello)'를 발표했을 때 일화를 들려주었다. 연령대가 있는 팬들에게 '스트리밍'을 알리기 위해 스트리밍 교육 영상까지 만들어 올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빠 덕분에 디지털 세상에 눈을 떴다'며 활짝 웃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수목원 근처 횟집으로 이동했다. 식사 전 신입 회원들과 기존 회원들이 서로를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신랑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떠올리며 즉석에서 지은 '표범 박'이라는 닉네임으로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점심 식사 중 화제는 단연 연말과 내년 초에 있을 조용필 전국 콘서트였다. 운영진은 광주 공연에 가는 팬을 확인하고, 각 지역 콘서트마다 설치될 팬클럽 부스 참여를 당부하는 이야기로 식탁이 떠들썩했다. 놀랍게도 대부분 팬은 오는 12월 13일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인천, 광주 그리고 서울 등 모든 콘서트에 간다고 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한 회원이 말했다.


"몸은 피곤하지만, 오빠가 그러셨잖아요. '팬들이 있기에 내가 있다'고요. 그 말 때문에 또 가게 돼요."


회원들이 반 정도 집으로 돌아가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서 한 운영자 분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녀는 이번 모임을 위해 3주 전부터 수목원에서 식당까지 차량과 도보로 동선을 확인했다고 한다. 추석 콘서트 이후 신입 회원이 늘어 식당 섭외도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용필을 좋아하는 것과 팬클럽을 꾸려나가는 것은 별개인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힘들죠. 그런데 오빠 덕분에 이렇게 귀한 인연을 만나잖아요. 온라인으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 다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또 그 응집력이 오빠에게도 힘이 된다고 믿어요.


또 다른 운영자는 조용필과 함께한 순간 중 2013년 '바운스'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를 관통해서 세대 통합을 이뤄낸 그의 위업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그때 가요 순위 프로에서 1위를 했는데 가요 톱텐 시절부터 그의 1위 횟수를 세어보니 70번째였다고 한다. 그래서 팬들은 70송이의 빨간 장미와 리본을 보냈단다. 팬들의 확신이 리본 문구로 달려 있었다.


"오빠, 우리는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누군가는 일부 중년들이 50세가 지나면서 빈 둥지 증후군(자녀들이 독립한 후 부모들이 상실감과 외로움을 경험하는 현상)이나 우울증을 경험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조용필 팬클럽에서 만난 팬들에게서는 중년의 위기보다는 중년의 활기를 보았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수를 닮아, 여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사람들과 기꺼이 어울렸다. 주름살이 조금 늘어난 지금, 단발머리 소녀였던 너와 내가 만나 손을 맞잡고 이번 공연에서 그가 입은 옷을 이야기하고 다음 콘서트에서는 첫 곡을 함께 예상했다.


비가 온다더니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보인 날씨였다. 남성 팬이 준비한 스피커에서 조용필의 '그래도 돼'가 메타세쿼이아 숲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 노래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삶이 아무리 지치고 힘겨워도 노래처럼 "그래도 돼, 늦어도 돼" 그 위로에 이끌려 그들은 사람들 곁으로 나왔다. 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 하트를 만들어 사진 찍는 순간, 조용필의 노래는 팬들과 공명하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채 피해자들의 파수꾼, 민생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