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파도 앞에서 '나비'를 꿈꾸다
딸아이는 누워있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중학교 3년 동안 방과 후면 거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사춘기 무기력은 아이의 몸도 마음도 무겁게 했다. 아침이면 예민함이 더해져 학교를 자주 빠졌다. 우리 부부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 가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아이가 갑자기 겨울 방학 두 달간 윈터 스쿨에 가겠다고 했다. 그곳은 디지털 기기를 끊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곳이다. 우리 부부는 맨날 누워있던 아이가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아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 윈터 스쿨이 1월 5일 시작하니 그전에 여행을 가자고 했다. 목적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변산반도로 정했다. 계획에도 없던 여행이었다. 우리는 1월 1일 아침, 무작정 변산을 향해 차를 몰았다.
변산은 전북 부안군에 있다. 오산에서 출발해서 두 시간을 달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변산을 '소봉래(小蓬萊)라고 불렀다. 금강산의 여름 이름인 봉래산에 견줄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는 관음봉 아래 직소폭포가 있다. 한겨울 폭포가 얼어붙었을지, 아예 말라버린 건 아닐지 걱정을 품고 산속으로 향했다.
폭포에 닿기도 전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이미 마음을 뺏겨 버렸다. 기암절벽 사이로 뻗은 소나무의 기개가 비경을 이루며 시야를 압도했다. 마치 우리가 처음 숲을 발견한 것처럼 비밀스러운 기운이 서려 있어 직소폭포를 향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진 딸아이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햇볕이 성가신지 찡그리고 자는 아이를 보며 담요를 머리까지 올려주었다. 우리 부부는 그저 말없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딸아이의 단잠을 깨운 것은 변산의 백합 조개였다. 유명 만화가가 다녀갔다는 식당 벽면은 연예인 사인으로 가득했다.
"아, 더 자고 싶어. 식욕이 없네. 엄마, 연예인 사인 많아서 맛있는데 없는 거 알지?"
‘미슐랭 암행어사 나셨네, 나셨어. 잘 먹기만 해 봐라.’ 차마 뱉지 못한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이는 조금 전 냉소가 무색하게 백합죽과 탕, 칼국수까지 비워냈다. 연신 감탄사를 섞어가면 먹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숙소 앞 변산해수욕장으로 산책에 나섰다. 바람이 매서웠지만, 백사장을 거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자 하늘이 낮은 채도의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바다를 등지고, 노을을 향해 셀카를 찍느라 분주했다.
부안상설시장에 나가 갈치구이 정식을 먹고 숙소로 들어오니 눈발이 가늘게 날리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눈보라가 몰아쳤다. 새벽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니 눈보라에 나뭇가지는 휘청대고, 플래카드도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야외 주차장의 차들도 눈을 뒤집어쓰며 점점 윤곽을 잃어갔다. 다음 날 채석강과 내소사에 갈 생각이었지만, 이대로라면 호텔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8시쯤 눈을 떠보니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도로는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서해의 습한 공기가 변산의 산줄기에 부딪히는 곳이라 이 일대는 겨울이면 눈이 잦다. 새벽부터 대설 주의보가 내려 있었지만, 제설은 제때 이뤄진 듯했다. 우리는 눈이 말끔히 치워진 도로보다 십 센티미터가 넘게 쌓인 눈밭을 가로질러 변산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브런치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채석강으로 향했다.
강 이름인 줄 알았던 채석강은 약 7천만 년 전에 호수 바닥에 쌓였던 흙과 모래가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층이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켜켜이 쌓인 바위가 시루떡처럼 보였다. 주차장에서 올라가 도착한 곳은 퇴적층 쪽이 아닌 모래사장이었다. 채석강을 보려면 오른쪽으로 한참 걸어가야 했다. 우리 부부는 그곳으로 가려는데 아이는 파도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람이 거세서 파도는 높았고 물결은 모래사장에 깊숙이 밀려들었다. 파도를 피해 깔깔대며 뛰다가 이내 멀찍이 서서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파도 앞에 선 아이를 그대로 두었다. 채석강을 멀리 둔 채 아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채석강을 뒤로하고 내소사로 향했다.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잠잠했던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거친 겨울 바다가 멀어지자 고요한 산세가 우리를 맞았다. 차에서 내리니 산 공기는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 부부는 모자가 달린 패딩 덕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유행에 민감한 아이는 모자도 없는 숏패딩 차림이라 금세 몸을 떨었다. 나는 차 안에 있던 무릎 담요 두 장을 꺼내 아이에게 하나는 모자처럼 씌워 주고, 긴 것 하나는 망토처럼 둘러주었다. 보온 효과는 탁월했지만, 몰골은 엉망이었다.
내소사(來蘇寺)에는 '이곳에 오는(來) 사람은 누구나 다시 살아난다(蘇)'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약 600m의 전나무 길과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었다는 대웅보전의 꽃 창살은 이 절의 백미다. 눈까지 내리는 추운 날씨에 아이가 이 길을 끝까지 걸어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아이는 예상을 깨고 묵묵히 전나무 길을 걸었다. 예전 같으면 끊임없이 징징댔을 텐데 천왕문까지 말없이 걸었다. 그곳에 이르러서야 느닷없이 배가 고프다며 내려가자고 인상을 썼다. 올 것이 왔다.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서둘러 내려왔다. 배고프고 추운데 대웅전 꽃 창살이 무슨 대수일까.
다음 날 아침도 어제 들렀던 브런치 카페에 갔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부안 기념품 판매대 옆에 꽂힌 책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오래전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노란 책을 발견했다. 애벌레가 위로 오르는 기둥에서 벗어나 나비가 되는 이야기다. 문득 주인공은 애벌레인데 왜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일까 궁금해졌다. 이내 그 질문은 잊고 우리는 변산을 떠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아이는 윈터 스쿨에 2주째 나가고 있다. 오전은 거의 조는 모양이다. 그래도 집중이 안되면 그림을 그리고 짤막한 일기를 써오고 있다.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가 학원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봄이 되면 우리가 놓친 직소폭포, 채석강, 내소사 대웅전을 보러 가자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이는 변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파도와 놀았던 것이라고 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이번에도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아이의 생각은 늘 우리 부부의 예상을 벗어났다. 그것으로 우리는 행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아이는 대학이라는 기둥의 행렬에 동참한 쭈뼛대는 애벌레 같다. 문득 카페에서 스쳤던 질문의 답을 알 것 같았다. 나비가 꽃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전해 세상을 꽃피우듯, 제 모습을 찾아 날아오르는 것 자체가 세상이라는 정원에 희망을 보태는 일임을 말이다. 딸아이도 「꽃들에게 희망을」의 주인공처럼, 저만의 속도로 허물을 벗고 날아올라 마침내 애벌레들과 꽃들에게 반짝이는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또한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방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