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식탁

식탁에 앉으니 비로소 보이는 며느리의 마음

by 수연길모

나는 육 남매 중 막내다. 2남 4녀인 우리 형제는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부산에 살고 나머지 큰오빠와 작은 오빠, 셋째 언니 그리고 나는 경기도 오산에 살고 있다. 그중 큰 올케언니는 자주 만나지만, 작은 올케언니는 설날, 추석에 일 년에 두어 번 만난다.


작은 오빠와 올케언니는 뜨겁게 사랑했지만, 결혼 후 두 사람은 싸우는 일이 많았다. 그 싸움의 원인을 언니는 오빠의 음주에 돌렸고 작은 오빠는 올케언니의 꺾이지 않는 고집이라 우겼다.


작은 오빠도 우리 형제 중에서는 내성적인 편이지만, 올케언니는 그보다 더 조용하다. 그래서 서로 말하겠다고 야단인, 목청 큰 시댁 식구들과 모이면 언니는 기가 빨린다고 말하곤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4남매는 명절에 큰오빠 집에 모이면 마루에 큰 상을 펴고 술자리를 갖는다. 술잔이 오갈수록 형제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그간 쌓인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작은 올케언니가 술을 마실 때는 술자리의 단골 안주는 작은 오빠 흉이었다. 언니가 오빠 험담을 하면 작은 언니와 나 두 시누이는 오빠를 째려보고 욕하며 언니 편이 되어 주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얽힌 추억 또한, 빠질 수 없는 안줏거리였다. 조카들이 어릴 때는 상금을 건 장기자랑 대회까지 열며 떠들썩한 명절을 보냈다.


오빠가 전하기로 언니가 요즘 가려움증과 어깨 통증 때문에 집 밖으로 잘 안 나간다고 했다. 피부약 때문인지 살이 급격하게 불어 더 우울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올케언니의 자리는 요 몇 년 새 마루의 큰 상과 거리가 먼, 부엌 안쪽 식탁 자리가 되었다. 우리가 울고 웃으며 즐거워해도 올케언니는 섬 같은 자리에서 스마트폰 화면만 응시하며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술을 마시다가도 언니가 신경 쓰일 때가 많았다.




작은 오빠가 결혼하고 삼 년 뒤 나도 결혼했다. 남편은 2남 2녀 중 막내다. 모두 오산에 사는 시댁 식구들은 전반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어머니는 14년 전 돌아가시고 시아버님만 계신다. 큰딸과 살고 계신 아버님 댁에 가면 텔레비전 소리만 요란하다.


그나마 시댁에서 말이 많은 사람은 아버님이다. 의령이 고향이신 아버님은 다른 이가 말을 조금만 길게 하면 “그기 아이고!” 하며 이야기를 정리해 버린다.


새색시 시절이었다. 아버님 성함이 ‘국제’이시기에 나는 아버님을 만날 때마다 “인터내셔널 아버님!”하고 놀렸다. 버르장머리 없는 막내며느리였지만, 아버님은 나를 귀여워해 주셨다.


그러나 남편의 형제들은 내 안부를 묻거나 칭찬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신 막내 남동생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내게 목소리가 크다며 핀잔을 줄 뿐, 내 기를 살리기보다는 남동생 편에 서는 쪽이었다.


처음엔 만만한 신랑에게 서운한 마음을 쏟아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신랑이 가여워졌다. 안 보고 살 순 없으니 내가 먼저 이해해 보기로 했다. 남편에게 형제들의 어린 시절을 묻고, 책 속에서 관계의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늘 비슷했다. 오산에서 의령까지 어느 고속도로가 빠른지, 혹은 연예인 가십이었다. 수간호사인 작은 시누이가 오면 동료 간호사들 험담이 이어졌고, 요즘은 정년 퇴임 후 개인택시를 모는 아주버님의 다채로운 손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결혼 초에는 마루에 함께 앉아 그들의 대화에 섞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책에서 얻은 지식과 단기 속성 노력만으로 관계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형제들은 자신들의 익숙한 화제 안에서는 말이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시댁에서 점점 조용해졌다.


시댁에서도 명절 음식을 만들고 나면 술자리가 시작된다. 형제들도 술이 들어가면 수다스러워진다. 아주버님이 B급 감성의 트로트를 배경음악으로 틀기 시작하면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마루와 멀찍이 떨어진 식탁에 가서 앉는다. 혼자 앉아있는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버님이다. 거기 있지 말고 마루에 와서 같이 먹자고 말씀하신다. 그럼 나는 허리가 아파서 식탁에 앉아있겠다고 둘러댄다. 식탁에 앉아 말이 끊이지 않는 시댁 식구들을 보면 나는 그 장면에 꼭 필요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명절마다 시댁에 가면 식사를 끝내고 식탁 자리에 앉은 지 3년쯤 흘렀을까. 어느 날 친정에서의 올케언니 자리가 시댁에서 내 자리임을 깨달았다. 친정에 가면 그리운 엄마 음식에 코를 박고 열심히 먹었을 언니가 떠올랐다. 시댁에서는 말수가 적지만 형제자매 사이에 앉으면 사소한 이야기에도 목을 뒤로 젖히며 자지러지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언니 오빠 사이에 앉아 가벼운 투정을 하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얼굴로 웃고 있겠지. 그런 언니가 시댁에서는 식탁에 앉아, 나처럼 멀찍이 떨어진 시댁 식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닐지 모른다.

설이 다가온다. 작은 올케언니를 만나면 몸은 어떤지, 병원에 언제 갔는지 눈을 보며 살갑게 물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식탁 자리는 외로운 섬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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