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기록하고 50년을 기다리네

성당의 25년의 역사를 기록하다

by 수연길모

생각해 보면 참으로 겁 없이, 다가올 험난한 미래를 모른 채 작년 4월 ‘성당 25주년사 편찬위원회 발대식’에 참여했다. 그곳에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몇 사람이 모였다. 바울리나와 플로라, 미카엘라와 솔로몬 형제, 그리고 나까지 그렇게 편찬위원회가 꾸려졌다.


얼마 뒤 25주년사 편찬위원들의 회의실이 정해졌다. 그곳은 사제관 1층 소회의실로 미카엘라 자매가 부직포로 정성껏 만든 ‘집현전’이라는 명패가 붙었다. 이 이름에는 성당 공동체가 걸어온 25년의 자취를 기록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 명패는 1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첫 회의에서는 업무를 분담했다. 솔로몬 형제가 오산의 역사와 본당 관련 통계 자료를 하기로 하고 나머지 자매들은 일곱 분의 역대 사제들의 본당 역사를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로 했다.

25주년사 편찬 회의는 매월 둘째 주 화요일에 하기로 했다. 내가 맡은 신부님의 자료는 너무도 부족했다. 나는 창고에 보관돼 있던 분과별 기안철 서류와 주일학교 행사 자료를 토대로 기록을 정리했고, 부족한 부분은 관계자들의 기억과 개인 자료를 더해 채워 갔다.

이어서 출판사에 가서 출판에 관한 계획을 진행했다. 컬러 인쇄로 결정하고 2025년 11월 말을 출간 목표로 우리는 한배에 올랐다.

신부님 별 역사는 2024년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성당 안에서 두 개 이상의 봉사를 맡고 있다 보니 작업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정리해야 할 임무는 ‘공동체’였다.

우리 성당에는 소공동체위원회, 제분과 위원회, 재정관리위원회, 청소년 위원회,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있다. 나는 청소년 위원회를 맡았다. 청소년 위원회의 설립일, 설립 목적, 봉사 내용과 25년 동안의 봉사자 명단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올해 5월에는 본당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봉사단체 사진 촬영을 마쳤다.


6월 말에 1차 초안을 출판사로 보내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후부터는 활자와의 싸움이었다. 오타와 띄어쓰기, 맞춤법과 문장부호는 AI의 도움을 받았지만, 숫자와 날짜, 이름과 고유 명사를 끝까지 확인하고 책임지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그 과정은 눈이 빠질 것 같고 뼈를 깎는 시간이었다.

주중에는 각자의 하루를 마친 뒤 저녁에 다시 원고 앞에 앉았고, 주말이 되면 미사를 마친 후 시원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노트북을 맞대고 앉아 같은 문단을 함께 들여다보며, 이 문장이 맞는지, 이 날짜가 정확한지 하나씩 짚어 갔다.

총 3차 교정을 목표로, 8월에는 1차 교정을 마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모든 교정 작업은 9월 말에 마무리되었고, 10월 1일 마침내 출판 승인을 받았다.

드디어 10월 26일이 왔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성당 25주년 기념 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우리 성당의 역대 주임 신부님들과 주교님, 그리고 주변 성당의 신자들이 함께하는 뜻깊은 행사에서 우선 책 표지만 완성된 가본(假本)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가 작년 목표로 했던 그날, 11월 23일에 594쪽 책이 도착했고 신자들에게는 구역별로 순조로이 배포되었다. 책을 받아 들던 순간, 의외로 큰 감흥은 없었다. 벅차기보다는 길었던 고생이 이제 정말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의 진척이 더뎌 회의 때마다 한숨을 쉬던 글라라 위원장님은, 다른 위원의 업무까지 떠안느라 새벽이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책이 거의 완성된 10월이 되자, 그녀는 활자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후유증을 겪었다.

솔로몬 형제는 노트북이 없어 집현전 벽에 붙은, 회의 책상에서 떨어진 데스크톱 앞에서 늘 작업을 했다. 말수가 적은 그는 그곳에 앉아 조용히 화면을 들여다보며 혼자 섬처럼 일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어느 추운 날, 온 세상이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나간 그는 글라라 위원장님의 차에 쌓인 눈을 말끔히 치워 놓은 게 아닌가.

미카엘라 자매는 본당 10년사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위원이었다. 특별했던 행사와 봉사자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 여러 원고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바울리나 자매는 원래 위원이었던 자매의 공석을 대신해서 뒤늦게 합류했다. PC 작업이 서툴러서 힘들었다고 말하던 그녀는, 잘못된 한 글자도 그냥 넘기지 않는 현미경 같은 눈으로 다른 위원의 원고에서 오류를 찾아냈다.

위원 가운데 가장 퇴근이 늦었지만, 회의에 빠진 적 없던 플로라 자매는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녀는 특히 문장 감각이 탁월했다. 아주 짧은 정보만으로 맥락을 살려 풍부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위원장님의 재촉이 이어질수록, 회의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왜 내가 그 자리에 앉아 내 글은 미뤄 둔 채 공동체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고개 들면 함께 고생하고 있는 얼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5주년 미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는 신부님과 우연히 성물방(성당에서 기념품이나 신앙 물품을 파는 곳)에 모여 앉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25년 뒤인 성당 50주년으로 이어졌다. (천주교에서는 공동체의 25년, 50년을 기록한다 ) 40대인 신부님은 그 무렵이면 은퇴해 있을 거라고 하셨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70대, 80대가 되었을 거라며 웃었다. 글라라 위원장님은 “그때 내 발로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린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꼭 성당 50주년 미사 때 만나자고 약속했다.

25주년 미사도 지나고 책도 나왔다. 졸린 눈으로 집현전에 앉아 작업하던 피로의 밤들도 모두 끝났지만, 아직 완전히 그 여정에서 빠져나온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조금 더 지나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차츰 알게 될 것 같다.

성당의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신자와 봉사자들의 겹겹이 쌓인 시간을 보았다.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어느새 청년이 되었고, 한때 성당을 날쌔게 누비며 봉사하던 자매님들의 걸음은 느려졌다. 성전 건립을 위해 식당 한쪽에서 손수 밥을 짓던 어르신들은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스물다섯은 젊음의 시간이라면, 공동체의 스물다섯 해는 성숙이 시작되는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 성당 공동체가 차츰 영글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될 것이다. 성당 50주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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