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다.
-이어령,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중에서-
엄마는 9년 전 우리 곁을 떠났다. 젊어서는 소처럼 일만 하다 살만해진 노년에는 고혈압, 당뇨 그리고 그 합병증인 신부전증으로 5년 동안 투석하시다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부터 엄마와의 이별은 시작되었다. 마지막 주 화요일이면 엄마를 모시고 성빈센트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고 엄마 닮은 뒷모습의 할머니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주책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의 죽음이란 엄청난 사건을 겪고 나란 존재는 뿌리째 흔들렸고 엄마가 그리워서 내 불효가 부끄러워서 눈물 없이는 보낼 수 없던 날들이었다. 2년쯤 지나니 담담히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6남매와 12명의 손자 손녀라는 넝쿨 같은 후손을 만든 장한 엄마가 우리 기억에서 점점 잊히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일자무식이었던 이정자 엄마를 내가 대신해서 엄마의 흔적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5월부터 막내인 내가 주축이 되어 언니 오빠들과 두 올케언니의 기억을 총동원해서 엄마에 대한 기록을 써 내려갔다.
엄마가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나주였지만 곧 부모님은 내 고향인 전남 화순으로 이사하였기 때문에 엄마의 이야기는 엄마가 살던 곳을 중심으로 화순, 부산, 오산으로 나누었다. 막내인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엄마는 나이가 든 엄마의 모습이고 그것으로 엄마에 관해 쓰기엔 부족했기 때문에 언니 오빠들의 기억이 절실했다. 쉴 새 없이 형제들에게 전화해야 했다. 언니들은 아주 우호적이었고 오빠들은 비협조적이었으나 큰오빠는 그래도 기분 좋으면 부산에서의 이야기는 잘해주었다. 두 올케언니의 공도 컸다. 자식들의 관점과 며느리의 관점으로 바라본 엄마는 사뭇 달랐고 그 덕분에 다양한 각도로 엄마의 이야기는 완성될 수 있었다.
엄마는 투석하면서 자주 “새가 돼서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다”든지 “다음에는 새로 태어나련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엄마의 유언이 되었다. 우리 6남매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우린 엄마의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엄마는 새가 되고 싶다 했지’로 정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제목이 좀 튀는 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른 제목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마지막 봄, 2012년 3월’ ‘불멸의 우리 엄마’ ‘다음엔 내 딸로 태어나줘’ 등은 열심히 쥐어짜 보았다. 그러나 ‘엄마는 새가 되고 싶다 했지’ 이 제목만큼 맘에 드는 것은 없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엄마의 실제 유언이기도 하거니와 두 번째는 엄마가 젊어서나 늙어서나 자유롭게 훨훨 살아보지 못한 그 안타까움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죽음이 끝 이어선 안되며 새처럼 자유롭고 가벼운 영혼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원 없이 사셨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염원이 이 제목에 새겨 있기도 하다.
한 친구가 왜 엄마에 관해서 쓰려고 하냐고 물었다.
“고생만 한 우리 엄마가 짠해서 그렇지”
“그 시절엔 다 고생했지 뭐”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 보편적인 삶은 살지 않는다. 고생이라고 다 똑같은 무늬의 고생은 아니다. 내 어머니는 특별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었다.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 육 남매에게 이어지는 엄마의 사랑을 발견했고 엄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형제간의 화해와 용서라는 유산을 받았다.
이정자 엄마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그분들의 보석처럼 빛나는 특별한 삶에 관심을 두고, 돌아가셨다면 그분들을 기억하며 최종적으로 그 특별한 발자취를 기록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길 바란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예상치 못한 유산은 우리의 삶을 너머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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