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이름은 이정자, 1938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돌아가신 지 9년째인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키가 작고 통통했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엄마는 목청도 좋았다. 점이 많았던 엄마의 피부는 할머니가 돼서도 주름이 잘 생기지 않을 정도로 탄력이 있었다. 엄마는 뽀얗고 조그만 달걀형 얼굴에 이마는 상하좌우가 답답했고 단 한 번도 탈모 걱정 없이 빠글빠글한 파마를 견딘 머리는 삼나무 숲 같았다. 올챙이 모양에다 속쌍꺼풀의 작은 눈은 눈썹보다 들어가 있어서 광대가 도드라지게 했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콧대는 잘 솟아 중심을 잡았고 콧방울도 두둑했으며 입술은 도톰하여 짙은 색 립스틱을 바르면 아주 난감했다. 반면 이는 고르고 튼튼해서 당뇨에도 엄마의 먹는 낙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엄마는 귀도, 귓구멍도 작아서 박복하다고 늘 말했다. 그러나 엄마가 유난히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발’이었다. 엄마의 몸에서 유일하게 날씬한 부분인 발은 작은 키에 맞게 조그맣고 적당히 발등이 솟아 고무신처럼 앞으로 뻗은 모양이 예뻤다. 하지만 나는 엄마 닮아 발이 예쁘기보다 얼굴이 예쁘길 바랐기 때문에 엄마의 “우리 딸들은 나 닮아 발이 이뻐!”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외할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둘을 낳으셨다. 엄마에겐 언니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하에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 건너갔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거기서 또 결혼하시고 아들 둘을 낳아 둘째 부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딸만 둘을 낳았던 외할머니는 아들 낳지 못한 죄로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쫓겨났다. 외할머니는 딸 둘과 친정살이를 하던 중 6·25 때 폭격으로 첫째 딸인 엄마의 언니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엄마와 둘만 남겨진 외할머니는 주변의 소개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집에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재가하면서 딸까지 데리고 갈 수 없어 외할머니는 엄마를 전남편인 외할아버지께 보내고 그 집에 들어갔다. 몇 년간 아버지 밑에서 살던 엄마는 새엄마의 구박과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울었다. 어느 날은 사람들에게 물어 외할머니에게 달려가곤 했다. 외할아버지 집에선 모든 게 풍족하고 학교도 다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외할머니에게 가겠다는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엄마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몇 년 동안 외할머니와 떨어져 산 경험은 훗날 엄마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부인으로 들어간 외할머니는 3남 1녀를 낳았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은 순하고 착해서 엄마를 잘 따랐다. 한 지붕 아래 두 부인은 사이가 좋았다. 첫째 부인은 외할머니를 시샘하지 않고 살뜰히 챙기면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았다. 그러나 얼마 후 첫째 부인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엄마는 학령기가 되어 양아버지한테 서당을 보내 달라고 했다. 친구들도 서당에 가서 글을 깨우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틈만 나면 외할머니를 졸랐다. 그러나 양반집 딸은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양아버지의 완고한 뜻에 따라 엄마는 끝내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엄마가 스무 살이 되자 가난하지만 뼈대 있는 양반 집안이었던 선산 김 씨 총각과 선을 보게 된다. 어른들은 방에 총각과 엄마를 들여보내고 여자는 남자를 쳐다볼 수 없다는 법도에 따라 엄마는 총각의 얼굴을 못 보게 돌아앉았고 총각만 엄마의 뒤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힐끔힐끔 그 총각의 얼굴을 보았다.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떡칠한 총각의 생김새를 보니 각진 턱에 날카롭게 생긴 것이 성미가 고약해 보였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총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지만, 양아버지는 양반집이니 괜찮다고만 했다. 엄마는 울고 또 울었지만 내키지 않는 시집을 떠밀리듯 가야 했다. 그 양반집 포마드 총각이 바로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였다. 경찰이었던 작은 큰아버지는 6·25 때 총살당하고 큰아버지 내외, 할머니와 나주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결혼 후 큰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결혼 전 부족할 것 없이 깔끔한 성격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엄마는 시집을 가서 그곳의 살림살이를 보고 경악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어찌나 지저분한지 이는 득실득실했기 때문이다. 살림에 젬병인 큰어머니는 노름꾼 남편을 대신해서 남의 집 농사를 지어주러 다녔기 때문에 엄마가 시집온 후 집안 살림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이 되었다. 일하러 나갔던 큰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의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갓 시집온 통통한 막내며느리를 예뻐한 시어머니는 큰며느리의 잔소리가 못마땅해서 작은 며느리 편을 들다 큰며느리의 화를 돋워 오히려 두 분의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외할머니는 없는 살림에 빨래를 자주 하는 처녀 적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가 맘에 걸려서 그 당시 엄마는 살 엄두도 못 내던 비누를 자주 사서 보냈다.
그러다 부모님은 분가하시게 된다. 큰어머니의 시집살이도 시집살이지만 큰아버지의 노름에 아버지까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버지는 털보 할아버지 정미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한 참 어린, 그것도 장가간 남동생의 몇 달 치 월급까지 가져가서 노름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분가를 결심했다. 아버지는 큰아버지에게 분가 계획을 알리고 집을 얻어 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엔 큰 집 근처에 쓰러져가는 집 한 칸에 수저 한 벌씩 챙겨 나와 살림을 꾸렸다. 그러다 정미소 주인 털보 할아버지가 다른 곳에 정미소를 하나 더 차리게 되면서 아버지가 그곳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곳이 나의 고향 화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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