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무가 되고, 너는 별이 되어라
엄마의 가슴엔 무덤 두 개가 있지
엄마는 옷을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공장에서 월급을 타면 학장 천 옆 엄마의 단골 양품점으로 달려갔다. 이 옷 저 옷 둘러보고 그중에 하나를 사서 아버지 눈치를 보며 장롱에 숨겨 두곤 했다. 그 많은 옷 중에 한 번도 입지도 못하고 버린 어깨 뽕이 심했던 짙은 파란색 재킷이 생각난다. 키가 작고 튀는 걸 싫어하는 엄마에겐 애당초 그 옷은 버거운 옷이었다. 엄마를 닮아 옷을 좋아하는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마에게 옷을 사주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부잣집 사모님처럼 화려하게 입길 바라서 꽃무늬에 원색의 옷을 사주었는데 처음엔 그런 옷들을 엄마는 질색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취향에 차츰 적응해 갔다. 그래도 엄마는 꼭 옷 수선집에 새 옷을 맡겼다. 엄마는 팔이 짧은데 옷 소매가 긴 것을 싫어해서 늘 소매를 손목 위 5에서 10센티 짧게 줄였다. 스타일에서만큼 엄격했던 맵시꾼 우리 엄마.
부모님은 화순군 이양면 금능리에 정착했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신작로를 앞에 두고 서면 왼쪽은 마을이 보이고 오른쪽은 밭과 산이 어우러져 있다. 금능리 끝에는 개천이 흘렀고 개천 옆에 끝없이 깔린 하얀 돌무더기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개천과 마을 사이엔 높다란 둑이 있었다.
백여 가구가 있던 마을엔 이양 북초등학교, 교회, 아버지 술을 받으러 가던 작은 점방 그리고 온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백 년도 넘은 당산나무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마을과 500m 정도 떨어진 외딴곳에 있었다. 섬처럼 보이는 그곳은 털보 할아버지 땅이었고 거기에 지어진 정미소를 아버지가 맡아서 운영하면서 털보 할아버지한테 얼마씩 상납하며 살았다. 털보 할아버지는 화순 일대의 거부였다. 당시 그 집엔 수십 명의 머슴이 있었고 먹을 것이 넘쳤다. 아버지는 정미소뿐 아니라 털보 할아버지네 소도 키웠다.
화순에서 큰딸 경희가 태어나고, 장남 임복, 둘째 아들 현준, 둘째 딸 경숙, 그리고 셋째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막 태어난 아기인데도 외국 아이처럼 큰 눈에 쌍꺼풀이 진하고 속눈썹도 길었으며 뽀얗고 예뻤다. 이름도 없던 그 아이는 돌도 되기 전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밥도 잘 먹지도 못하고 변도 잘 누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엄마는 아이를 안고 옆 동네에 있는 약방으로 갔다. 그 약만 먹으면 감쪽같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림처럼 예뻤던 아이는 약을 먹고 그다음 날 죽고 만다.
엄마는 죽은 아이를 이불에 싸서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 몇 분과 함께 산에 가서 아이를 묻고 왔다. 그다음 날 새벽, 엄마는 어제 죽은 아이에게 다녀왔다. 새벽이슬에 젖은 엄마의 연분홍 치마와 울어서 빨갛게 된 엄마의 얼굴을 큰언니는 자다 깨어 보았고 지금도 그날의 엄마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와 성격도 외모도 판박이였던 첫아들 임복 오빠는 작명부터 남달랐다. 모든 자식들의 이름을 아버지가 옥편을 보며 지은 것과 달리 오빠의 이름은 우리 집에 탁발하러 오신 스님이 아기를 보고 지어 주었다. 수풀 림에 복 복 林福. 즉 숲에 복이 있단 뜻이다.
오빠는 아랫동네 윗동네 할 것 없이 친구들이 많았다. 축구를 좋아하던 오빠는 키도 크고 덩치도 남달랐다. 그런 오빠는 동생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동생들이 어느 정도 자라 오빠의 심부름을 할 나이가 되자 현준이 오빠와 경숙이 언니를 2인 1조로 만들어 술과 담배 등 자신의 기호품을 사 오게 했다. 돈은 어디서 났을까? 바로 정미소 손님들이 맡겨둔 보리나 쌀에 조금씩 손을 댄 것이었다. 계속된 범죄로 꼬리가 잡힌 오빠는 아버지에게 모질게 맞았다. 사실 아버지의 폭력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엔 그런 행동은 마땅히 맞고도 남는 중죄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화풀이로 제일 큰 자식이었던 임복이 오빠를 때렸고 나쁜 짓을 하면 기둥에 묶어서 때렸다. 그럴수록 오빠의 성미는 거칠어졌고 아버지의 매질은 더 가혹해졌다. 미쳐 날뛰는 두 부자를 엄마도 말릴 재간이 없었다.
오빠가 17살이 되던 정월 대보름날에 아랫동네와 윗동네 간의 축구대회가 이양 북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오빠는 자신의 경기에 앞서 선배들 경기에서 심판 겸 점수를 매기며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경기 중 윗동네 선배와 다툼이 일어났다. 평소 자신의 덩치를 믿고 선배들에게도 함부로 대하던 오빠였고 평소 그 태도에 화가 난 선배가 또 무시를 당하자 씩씩거리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그 선배가 다시 돌아왔을 땐 그의 손엔 과도가 쥐어져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있던 오빠의 옆구리를 찔러 오빠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오빠는 이름처럼 너무도 일찍 숲에 묻히게 되었다.
엄마는 자식 둘을 먼저 보냈지만, 자신의 슬픔 따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술을 마시다 슬픔에 받쳐 피를 토하며 임복이 오빠 이름을 부르거나 에미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억지소리를 하며 자신의 슬픔을 해소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두 아이를 가슴에 묻고 아직 어린 자식들을 먹여야 했고 산과 들로 나가 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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