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손가락을 만지고 싶어

예쁜 우리 엄마 손가락

by 수연길모

엄마는 기억력이 좋았다.

특히 노래를 한번 듣고 따라 부르거나 몇 번 듣고 가사까지 외우는 비범한 재주가 있었다. 또 엄마는 노래를 잘했다. 그건 아버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의 소유자였지만 두 분의 음악 세계는 사뭇 달랐다. 엄마는 가성을 써서 힘을 빼고 고음에 잘 올라갔다. 그러나 박자는 언제나 놓쳤다. 반면, 술에 취해야 집구석 라이브를 하던 아버지는 감정을 쥐어짜며 성대를 혹사하는 진성으로 불렀다. 특히 두 분 다 바이브레이션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술을 마신 날엔 당신의 애창곡 ‘황진이 내 사랑’을 불렀다. 마룻바닥을 손바닥으로 치며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라는 듯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듣는 이 없는 텅 빈 마루에서 노래했다. 지금도 눈이 풀린 채 노래 부르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는 간다아~나는 간다아~황진이 너~어를 두고~오~오~" 그러다 꼭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 노래를 멈췄다. 그러면 엄마는 어김없이 “저렇게 미련한 양반이 노래한다고 쯧쯧쯧” 이런 말로 쥐어박고 가사를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


언니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처가에 사위들이 오면 밥상을 물리고 술상이 차려졌다. 그러면 엄마는 사위들 보고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그중 돌아가신 둘째 형부가 부른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를 엄마는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샌님 같았던 막내 사위에겐 노래를 시키지 않으셨다. 내가 너무 늦게 결혼해서 엄마가 기운이 달렸던 걸까? 아님, 당신이 그런 걸 시켰다는 걸 잊어버렸을까?






화순의 우리 집과 정미소는 기역 형태였다. 우리 집은 신작로와 같은 높이에 옆으로 비켜서 지어졌는데 방 하나와 부엌 하나가 작은 나무 마루로 연결된 집이었다. 집 뒤엔 술 취한 아버지가 오는지 기대어 살펴보던 오동나무가 있었고 그 옆엔 펌프와 장독대가 있었다. 정미소는 신작로와 나란히 자리 잡았고 그보다 높이가 낮았다. 정미소와 신작로 사이엔 마당이 있었는데 눈 내리는 겨울이면 마당에서 신작로로 올라가는 경사에서 비료 비닐을 타고 썰매를 탔다. 정미소 끝엔 어린 시절 그토록 무섭던 변소와 그 뒤엔 텃밭이 있었고 신작로 너머 밭이 시작되는 지점엔 콘크리트로 만든 반 원통 모양의 농수로 관이 있었다. 그곳은 작은 오빠가 살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여름 내내 살다시피 하던 오빠의 수영장이었다.


아버지는 화가 많았고 몸이 허약했다. 그런 데다 술까지 매일 마셨으니 정미소일, 집안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일이 엄마의 몫이 되었다. 그중 털보 할아버지네 소를 돌보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혼자 볏짚을 작두로 썰 수가 없어 큰언니를 불렀다. 큰 언니가 작두를 잡고 엄마는 볏짚을 갖다 댔다. 그러다 그만 엄마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도 작두질에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집게손가락은 그나마 찾아서 봉합했지만, 엄지는 찾지 못해 엄마는 평생 뼈가 뭉툭하고 흉하게 튀어나온 엄지손가락으로 살아야 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정미소가 하나씩 있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엔 어찌 된 일인지 윗마을에 우리 정미소, 아랫마을에 또 하나의 정미소가 있었다. 그런데 정미소가 허가제가 되면서 아버지는 빨리 신고해야 했지만, 털보 할아버지의 정미소를 대신 운영해주고 있었기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털보 할아버지가 차일 피 미루는 사이 아랫마을 정미소가 먼저 신고를 해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법으로 계속 일을 해나갔다. 불법이었지만 정미소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큰 오빠와 외삼촌, 사촌 오빠까지 와서 소달구지를 몰고 집들을 다니며 찧을 쌀들은 날라야 했다. 그 시절은 뒤주에 돈이 쌓여도 쓸 시간이 없었다.


정미소엔 한 번씩 쌀을 빼내는 일이 있었다. 일꾼들이 쌀을 정리하다가 바닥과 나무 받침대 사이에 똬리를 틀고 있던 아이 팔뚝 두께의 누런 구렁이를 발견했다. 그들은 까무러치게 놀랐고 일꾼 한 명이 막대기에 불을 붙여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구렁이를 정미소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리곤 며칠 후 정미소에 불이 났다. 남의 집 쌀도, 뒤주에 넘치던 돈도 다 타버렸다. 엄마는 불에 잘 타는 것들로 가득 찬 정미소 앞에서 필사적으로 꺼낼 수 있는 것들을 꺼냈다. 불이 집으로도 옮겨붙었고 엄마는 아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자 9살이었던 큰언니는 집으로 달려 들어가 혼자 방에 누워있던 두 살짜리 여동생, 둘째 언니를 안고 나왔다.


모든 것은 잿더미로 변했다. 집도 반은 타버려서 다시 지어야 했다. 발동기만이 새까만 그을음을 뒤집어쓰고 살아남았다. 불이 난 후에도 정미소엔 예전처럼 요란한 발동기 소리가 울려 퍼져야 했지만, 그 기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발동이 걸리지 않아 아버지를 더욱 화나게 했고 발동기 소리 대신 아버지의 세상과 자신을 향한 욕지거리와 엄마를 향한 매질 소리만이 정미소를 채웠다.


아버지는 끝을 알 수 없는 불행을 술로 잊고자 했다. 마누라도 자식도 잊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들을 두고 도망갈 수 없었다. 그 옛날 외할머니가 재가해서 몇 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겪었던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기억이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비극에서도 자식들을 떠날 수 없게 했다.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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