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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kki Apr 27. 2018

염세주의자들은 대체로 착하다

염세주의자들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염세주의자들을 좋아한다.


포털사이트 사전에서 '염세'를 검색해보면 '세상을 괴롭고 귀찮은 것으로 여겨 비관함.'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부정적이기 그지없는 단어다. 하지만 나는 염세를 생각하면 자꾸만 즐겁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염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 끝마다 "죽어야지", "왜 살까요" 등 축축 쳐지는 문장들을 던지며 마치 재미나는 개그프로를 본 듯 낄낄댄다. 이렇게 글로 설명하니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겠다, 싶다.


염세주의자들은 대체로 예민하다. 타고난 정서에 우울함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을 배려하며 공감력이 뛰어난 편이다. 마지막으로, 잘 웃고 열심히 산다. 어째 다소 사전적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정말 그들은 그렇다.


가상의 인물, 염세주의자 A씨의 성장과정을 살펴보자. 원하든 원치 않았든 시작된 삶. 수 없는 옹알이 뒤, 첫 단어를 내뱉는다. 유치원을 졸업한다. 순차적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일련의 과정 동안 A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 셀 수 없이 많은 생각과 상념에 사로잡힌다. 수 백만 개의 사건을 겪게 되며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신에게 각인된 여러 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염세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가  A씨와 같은 성장과정을 감내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A씨가 염세주의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A씨가 커왔던 환경은 '비교'와'우위 선점'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곳이다. A씨의 부모나 선생은 자주 타일르곤 했다. "너는 어리니까 뭐든 할 수 있어. 하지만 이때를 넘기면 힘들어지고 말 거야. 그러니까 지금 잘해야 돼."  어른이 된 A씨는 그것이 나름의 격려의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린 A씨는 그러지 못했다. 자기가 해내지 못하면 끊임없는 낙오의 늪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A씨는 열심이었다. 적어도 열심히 하는 시늉이라도 냈다. 하지만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표어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A씨는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있는 건, 결국 불가능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된다. 발버둥 쳐도 되지 않는 것은 상황 때문일 수도, 오해 때문일 수도, 단순히 나쁜 타이밍 때문일 수도 있다. A씨는 불가능이 발현되는 시점에서 포기하거나 절망할 순간들을 필연적으로 맞닥뜨린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예민함을 타고 나서였을까, A씨는 그때부터 본인 탓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그때 좀만 더 잘했더라면'하고 자꾸만 가정한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쌓인 부정적인 감정들을 삭히려 A씨는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예민한 감성을 가진 것과 더불어 작은 일도  유난히 더디게 잊는 망각력 때문에 쉽지 않다. 대문호 오스카 와일드의 격언인 '망각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삶의 기술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를 마주친다. A씨는 자신이 삶의 기술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비관은 그러나-죽지 않는 한-언제나 계속될 수만은 없다. 거듭되는 포기와 좌절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단계가 그때서야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 주위의 수많은  A씨들은 염세주의자가 된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무서워하며 피하는 게 아닌, 정면으로 맞닥뜨려 웃어넘겨 버리는 식으로 말이다. 하. 하. 하. 어차피 나아지지도 않을 거 한번 살벌한 농담이나 하고 웃어버리지. 하며 말이다.


A씨는 자신들이 겪었던 상처를 어제의 일처럼 기억한다. 때문에 쉽사리 남을 해치는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 만약 하더라도 그 죄책감에 오래도록 앓는 이가 바로 소심한 A씨다. A씨의 대인관계는 '너는 나 나는 너'가 아닌 '나는 나 너는 너'라며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흔히들 그걸 허물기 어려운 '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해하시지 마시라, 그건 A씨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A씨는 부단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한다. 때문에 귀찮고 힘들어도 본인 일을 무척이나 열심히 한다. 혹시라도, 자기가 처리하지 않은 일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 때문이다.


"귀찮은 인생. 내 꿈은 무병단수."

인생의 하찮음을 노래하는, 그러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열심히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A씨들은 자신들의 부러져버린 꿈을 품에 안고 있다. 많이 울고, 화도 내봤을 거다. 모든 문제의 원흉은 자신이라며 수없이 탓했겠지. 그러다 결국 찾은 게 바로 자조적인 성격이 짙은 유머다.


A씨와 같은 염세주의자들을 생각하면 가장 좋아하는 시가 생각난다. 심보선의 청춘.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 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내일 곧 죽어도 오늘은 웃을 염세주의자들이 그래서 나는 좋다. 언제든지 수위 높은 그들의 농담에 시원하게 한바탕 웃어줄테다. 그리곤 귓가에 꼭 속삭여주고 싶다.  "A, 당신 참 멋진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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