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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Jan 11. 2021

동물들

교문 안쪽 운동장이나 교문 바깥 문구점, 완구점 앞에서는 노란 병아리를 팔았다. 나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 노란 것들을 염색해서 팔았다고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그런 것은 못 보았다. 때론 메추리를 팔기도 했으며(끔찍하게도 비닐봉투에 금붕어 팔듯이 넣어 팔았었지), 새장 수십 개를 오토바이이에 어떻게 실었는지 모를 '새장수'가 아파트 단지에 와서는, 언젠가 원숭이를 판 적도 있었다. 1동 살던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그걸 5천 원에 샀다. 그리고 며칠 뒤 그 형은 원숭이보다도 얼굴이 더 빨개져 울고 있었다. 죽었다고 했다. 80년대에 태어났던 이들, 늦어도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 막내동생 나이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병아리를 사고 싶었다. 지금은 병아리 부리에 난 작은 작은 주름이 눈에 띠고, 깃털이 복실복실할 뿐 머리가 동글동글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병아리든 닭이든 거칠거칠하게 갈라진 '닭발'이 거칠거칠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때 내 눈에 병아리는 작은 인형처럼 귀여웠다. 부리도, '닭발'도 미끈하고 머리도 동글동글한 줄 알았다. 그리고 삐약삐약, 하는 그 울음소리. 지금 들어도 귀여운 것이지만 그 땐 정말 병아리가 삐약삐약, 하고 우는 줄 알았다. 삐약삐약, 지금 입에 담아도 귀여운 말이다. 그런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병아리, 삐약삐약. 하고 함께 합창하듯 길을 걸어가는 일. 돼지 꿀꿀, 송아지 음메. 하는 울음소리에 비하면 얼마나. 강아지 멍멍, 그리고 고양이 야옹야옹은 더 귀엽지만.

 

어머니는 병아리 사는 걸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가져온 병아리들이 교실에서 삐약삐약 울 때도. 병아리들 목이 늘어나고 볏이 날 때도, 마침내 그 병아리들이 닭이 되었을 때, 어떨 땐 통닭이 될 때까지도 녀석들을 살 수 없었다. 키우지 못했다. 그래서 병아리의 복실복실한 깃털을 쓰다듬던 기억은 많지 않다. 그 땐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말을 어기지 않았다.

 

 대체 왜 그리 반대하였는지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병든 병아리들이야." 라고 하였던 것 같다. 왜 병든 병아리면 안 되었을까. 담번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에게 물어볼 생각이나 지금 짐작해보니, 아마도 그 귀여운 것들을 며칠 키우다 죽어버리면 나도 동생들도 크게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동생들이 키우던 햄스터가 죽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다른 녀석을 먹었다고 아마 막내가 이야기했던 것 같다. 막내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햄스터 사육통에 어째선지 한 마리만 들어있고, 한 마리 분의 짐승털 한 뭉텅이가 빠져 있는 광경을 봤을까. 얼마 후 나머지 한 마리도 죽었다. 녀석은 길게 누워 있었다. 동생들이 오기 전 치워야 아무도 울지 않을 것 같아서 녀석을 집어들고는 땅을 파고 묻어 주었다. 십자가를 세울 줄 몰라 막대기를 세웠다. 어린 아이들에게 십자가는,종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죽은 것들을 위해 우리는 어째선지 항상 십자가를 만들어 주려 했다.

 

토끼.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할머니가 가져 온 두 마리 토끼. 한 녀석은 회색, 한 녀석은 갈색. 어린 나는 집 앞 '청과' 가게에 가서 "우리 토끼 밥주게 상추 쪼끔만 주세요." 라고 해서 정말 상추 몇 장을 얻어 녀석들이 아그작 아그작 맛있게 먹는 걸 보았다. 상추 쪼끔만 주세요, 했던 이야기는 '청과' 가게 주인이 이야기했는지 동네 아줌마들에게 이야기했는지 날 따라하며 깔깔댔었지. 상추 쪼끔만 주세요. 마당이 있는 집에서 데리고 놀려 잠깐 바닥에 내려놓으니 도망쳐서 차 밑에 숨어버렸지. 너희들. 특히 회색 너 말이었어. 그래도 넌 마당 밖으로 도망가지 않았다. 두어 시간 씩씩거리면서 차 밑으로 고개도 숙여보고 기어서 들어가보려고도 했지. 마침내  잡았을 땐 화가 나서 너희들 키보다 조금 높은 상자에 다시 집어넣었다. 토끼똥 때문에 신문지를 바닥에 깔아 놓은 그 상자. 동생들, 그 중에서도 막내는 토끼들 두 귀를 잡고 들어올렸지. 만화 같았어. 근데 조금 무서운 만화처럼. 나는 그러면 너희들 귀가 찢어지는 줄 알고, 항상 겨드랑이 쪽에서 잡아 들어올렸다. 잠시 집을 비우고, 아랫집 할머니한테 "나 없을 때 우리 토끼 밥 좀 주세요." 했지만, 아랫집 할머니는 밥을 주지 않았던 걸까. 그 겨울, 돌아왔을 때 나는 우리 할머니로부터 토끼들이 꽁꽁 얼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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