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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Aug 23. 2024

용산의 '밀정'

최근에 윤석열 정권이 독립기념관장 등 주요 기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하여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일부 인사들이 대통령실을 가리켜 '용산 밀정'이라고 표현했다. '용산 밀정'은 이종찬 광복회장이 사용하고 조국 의원 등이 인용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회장으로서는 독립유공자 후손ㆍ유관 공법단체장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 현 정권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용산으로 지칭되는 대통령실, 즉 외부를 향한 비난의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 내부의 적을 색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도 여겨진다. 나는 '밀정'이란 표현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위협으로까지 느껴진다.

'밀정'이란 표현이 나온 것은 블록버스터 영화 <밀정>(2016)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항일 영화이자,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밀정을 응징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화 내내 지속되는 일제에 대한 저항은 후반부의 반전(反轉)을 통해 독립운동 세력 내부의 밀정에 대한 응징 서사로 전환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의 일제에 대한 분노는 밀정에 대한 분노로 전이ㆍ폭발한다.

이 회장ㆍ조 의원 등이 언급한 '용산 밀정'이란 직접적으로는 대통령실이지만, 대통령인 윤석열 본인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진다. 영화 <밀정>의 파급력과 서사 구조를 고려했을 때, 용산 대통령실을 지칭해 '밀정'이라 하는 것은 정가(政 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세력을 막론하고 영향력 있는 문화 컨텐츠를 활용 또는 이용해 자신들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한다. 많은 국민이 봤다는 점에서 볼 때,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고도 이 영화만한 비유가 없다. '밀정', 이 한 마디로 충분하다. 이미 용산 대통령실과 영화 <밀정> 사이에는 그동안의 논란을 통해 탄탄한 연관성이 부여되었다.

문제는 '밀정'이란 표현에 담긴 잠재적인 위험성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용산 대통령실이야 이 회장ㆍ조 의원이나 대다수 국민에게는 아직 '외부'로 인식되지만, 애초에 해당 표현이나 동명의 영화에서는-나는 이 회장의 '밀정' 표현이 일반적인 개념이 아닌 영화 제목을 가리킨다고 여기는데-어느 쪽이든 정체가 의심스러운 '내부'의 적을 상정하고 있다.

'밀정'은 이 회장의 발언을 넘어 다수 정치인, 언론인, 일반 시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밀정'이란 용어에 대한 호응과 확산은 한편으로는 우리 내부의 적을 색출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느새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음을 가리킨다고 여기는 것. 이것은 그저 과도한 우려이자 논리의 비약일 뿐일까?

용산 대통령실의 인사 정책이 문제라면 평소대로 정실 인사라든지, (국가ㆍ민족주의를 전제하는)친일ㆍ매국ㆍ망국 인사라는 더 직접적이고 상투제인 표현들도 있다. 문제 제기는 당연하지만 내부 숙청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밀정'이란, 그러한 용어를 채택한 이들이 비난하는 또 다른 대상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공산주의에 협력할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원 등을 예비검속, 처형한 사건이 있다. 보도연맹 학살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다름 아닌 이승만 정권 시기에 저질러진 사건이다. 보도연맹원 학살을 정당화한 논리는 이미 공산주의로부터의 전향과 대한민국 정부에 충성까지 맹세한 그들이-그 중 상당수는 공산주의와는 관련 없이 무지 혹은 행정적 동원에 의해 보도연맹원이 되었는데-'다시' 공산주의에 협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왠지 정체가 의심스러운 내부의 적. 보도연맹원은 지금 그들이 이야기하는  '밀정'과 크게 다른가? 왜 '밀정'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전쟁 시기 내부의 적 색출의 논리는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 학살로 종결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잠재된 색출과 처단 의지와도 닮아 있다. 보도연맹원 학살 시기 집권자와 처형인들이 품었던 의심과 숙청의 의지가 오늘날 '밀정'의 존재와 그 응징에 대한 열광을 거쳐, 언젠가는 또다른 경악과 분노로 돌아오리라는 우려는 과연 없을까? 이미 우경화된 일본 정부에 대한 현 정권의 협력은 충분히 노골적이지 않은가? 용산 대통령실을 비판하는 데 동원할 논리와 표현들은 그밖에도 많이 있다. 언제부터 방첩이 이 시대의 핵심 키워드가 되어 버렸나?

#밀정 #친일 #반일 #독립기념관 #윤석열 #홍범도 #이종찬 #김형석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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