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의 말
번역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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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또한 이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문제와는 무관한 채로 살아왔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무렵, 9.11 테러가 발생했고, 아프간 전쟁에 이어,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언론에서 보도되는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의 이미지는 중동이라 불리는 이슬람 세계 전체에 대한 내 인상을 결정했다. 그 무렵엔 팔레스타인이 의식에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어렴풋한 기억 속에 급우 한 명이 “하마스 멋있다”라고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던 것이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었던 아라파트가 사망하여 쿠피예를 두른 그의 생전 모습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것, 언젠가 KBS의 <도전! 골든벨>을 시청할 때 ‘가자 지구’가 마지막 문제의 정답으로 나왔던 것 정도였을 것이다. 아직은 팔레스타인도, 인티파다도 여전히 낯설게 들렸다.
대학생 시절, 튀니지의 청년 노점상인 부아지지가 분신했다. 이는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범이슬람권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 충격 이후, 내게 이슬람 세계는 외부 세계에 적대적인 테러리스트들의 공간에서 저항하는 행위자들의 공간으로도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도 팔레스타인이 나의 의식에 전면에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훗날 부산의 인디고 서원에서 운영하는 영화 인문학 프로그램인 <부산 청년, 영화를 말하다> 2기에 참가했을 때였다.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운영진이 선정한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다양성과 인권 문제는 물론 동물권 문제까지 인문학적 관점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에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영화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 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이스라엘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함께 이끌었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출신 청소년들의 오케스트라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함께 모여 영화를 감상하며,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국회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지배를 성토한다거나, 두 나라 청소년들이 협주하는 장면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평화 속에서 공존하기를, 진정으로 기원했다. 그 때 함께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팔레스타인을, 세계의 수많은 지명들 중 하나,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아닌 비로소 그 자체로서 인식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부산 청년, 영화를 말하다> 2기 프로그램의 영화 중에는 <그을린 사랑>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영화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까지는 들었지만, 그 레바논 내전이 팔레스타인 역사의 거대한 비극의 하나였다는 점, 심지어는 주인공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볼 수 있다는 점은 한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시리아의 어린 난민 쿠르디가 사체로 떠오른 것이 그 무렵으로, 오늘날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을 때는 문득 쿠르디를 떠올리곤 한다. 단, 팔레스타인은 마치 어린 쿠르디처럼, 내 의식 속에 문득문득 떠오를 뿐이었다. 지금은 가자 지구에서 전 세계를 향해 발신되는 무수한 메시지들 속에서, 그 모습을 본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가자 지구 너머 이스라엘령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면서(‘알-아크사 홍수 작전’) 또다시 전면전이 발발했다. 그 이후 하마스가 이스라엘인들의 음악축제를 습격해 강간을 저질렀다거나, 이스라엘 아기들의 목을 잘랐다는 참혹한 주장들이 앞다투어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보도들은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을 지지했던 내 의견을 잠시나마 크게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주장들 중 상당한 분량이 근거 없다는 반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대규모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하마스가 병원 지하에 진지를 구축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간 방패로 쓰고 있다는 비난적인 기사들이 뒤를 이었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킨 보도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몇 달을 보냈다. 한편 여러 언론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는, 팔레스타인보다는 이란 등 주변 강대국들의 이 전쟁과 관련된 동향 따위를 활용해 어떻게 주식을 투자하면 좋을지를 신이 난 듯이 떠들고 있어, 혼란스러움을 더했다.
‘알-아크사 홍수 작전’과 전면전이 발발한 이듬해,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 역사교육을 공부하게 되었으며, 그해 말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번역을 맡게 되었다. 여기에는 분명 우연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처럼 생애 순간순간,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가까워졌다가 어느새 멀어지고, 그것을 잊어버렸다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번역을 계기로, 간접적이나마 마침내 팔레스타인 문제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느끼게 된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 지인이 ‘알-아크사 홍수 작전’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음악축제에서 하마스의 습격을 받고 인질로 잡혔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주변 사람들은 이를 처음 접한 듯 놀라워했다. 1년도 더 된, 과장된 보도가 마치 어젯밤 일인 듯 이야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 모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팔레스타인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얼마나 주변화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때마침 질베르 아슈카르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읽고 있던 나는, 그것을 민간인 습격으로만 볼 수 없으며, 포로 교환 목적을 지닌 것으로, 우리가 흔히 상상하듯 포로 학대로 이어지는 잔혹한 인질극과는 다르다는 점, 민간인 습격 및 인질극 이전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부터 이야기하라고 하며, 위 책을 챙겨 보라고 꼬집었다. 책은 다소 급진적인 논조였는데, 나는 그 이상으로 과격해지고 있었다.
그러자 동석한 다른 사람이 ‘전 세계 난민 중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출처가 어디냐고 되묻자, 그는 유튜브에서 어느 교수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기어이, 그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지원을 많이 받으니 팔레스타인에 관심을 끄자는 이야기인가 하며 물고 늘어졌다. 아마도 그 때 생애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로 화를냈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화두를 꺼낸 지인과 이야기했을 때, 그도 가자 지구를 침공한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조롱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을 경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그조차도 이번 전쟁의 시작을 하마스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습격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이야기하는 감이 있지만, 이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다. 번역자의 말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벌써 7년이나 되었다. 그렇기에 2023년에 발발한 가자 지구의 전쟁이 현재 진행형일지라도, 이 책이 지금도 시의성을 지닐 것인지 번역을 시작한 초기에 스스로 의문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분명, 이 책의 이야기-서사들은 2018년 이전의 이야기이다. 번역을 하면서 틈틈이 언론의 최근 보도, 그리고 번역을 시작할 즈음부터 구독하고 있던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여러 개인 및 단체들이 SNS에 올린 게시글을 읽다가, 금세 이 책의 지나간 이야기들을 번역하고, 또다시 오늘 올라온 게시글들을 확인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깝게는 수 년 전 이야기들과 오늘날 일어난 일들의 연대기가 뒤죽박죽으로 뒤섞이게 되었다.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일어난 초기에는 수많은 보도와 반박이 뒤엉키는 속에 허우적대었고, 번역 중에는 시간과 시간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중에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 시간의 경계는 흐려졌고, 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가령, 저자는 25년 전 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제닌 난민 캠프를 거닐다가,어느 뇌성마비 청년이 부모 눈 앞에서 이스라엘 군의 불도저에 짓밟힐 때함께 으스러졌다는 휠체어를 보았다고 한다. 다시 25년 뒤인 올해 4월 19일에, 나는 한국의 팔레스타인 평화연대가 올린 장문의 게시글을 읽었다. 거기에는 소아마비 장애아동인 아흐마드 아부 알-루스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엄마, 동생과 함께 불길 속에서 타 죽고 난 뒤 남겨진 휠체어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제정신을 차릴 때쯤 알아챈 사실이 있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서사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 그것은 결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기에 머릿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그토록 혼란스럽게 뒤엉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결코 나만이 그렇게 느꼈던 것 같지도 않다.
학살이 더 광범위하고 잔혹해지며, 치밀해지고 첨단화되고는 있으나, 팔레스타인에서 과거와 현실을 나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휴전이 되든 말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다만, 이번 전쟁에서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무자비할 만큼 늘어난 학살의 희생자 수일 것이다. 그 수는 유엔 인도주의업무지원국(OCHA)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5월 14일 기준으로 52,928명에 달한다. 언젠가는 희생자 수의 통계를 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만약 이번만큼은 그 말이 옳다면, 그것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분명 책의 제목은 미래지향적이고, 표지의 에메랄드 빛 돌담은 화사하게 빛이 나서, 왠지 모를 희망을 품게 한다. 번역자가 느꼈던 그런 첫인상을 비슷하게 느낀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이 책이 그와 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터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곳에 희망이 있다면, 말기 암의 극심한 고통을 통증 완화 치료 없이 맨몸으로 버텨내면서까지 딸의 학비를 대 주려는 어느 팔레스타인 어머니의 마지막 싸움이, 이스라엘군의 봉쇄로 처참하게 굶어 죽은 동물원의 동물들을 수습해 박제로 만들어서까지 아이들의 웃음을 되살려내려는 집념이 바로 그 증거일 것이다.
미프타흐(열쇠). 나크바의 그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인들에게 쫓겨나면서도 저마다 몸에 지녔던 그것으로 다시 열고자 했던 집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그것을 지녀왔던 이들도 난민인 채로 차례차례 죽고, 수시로 집단학살을 당했다. 그러면 그들의 남은 자식들이 그것을 이어받아 귀환을 위한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그들이 죽으면 그들의 자식들이,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이들의 염원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요르단 강에서 지중해까지.
비록 언젠가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까지라도.
번역을 마무리짓게 된 5월은 나크바가 일어난 그 달이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싸워주지 못했음은 물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책상에서 번역을 하는 데 그친 점에 대해, 번역자로서, 그리고 역사교사로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전 세계의 연대자들, 특히 연대하는 교사들에게 큰 미안함을 느낀다. 번역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아주 조금이나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며, 번역으로 연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번역하지 않게 되는날, 즉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비로소 평화를 찾는 날을 염원한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의 깃발을 나부끼며,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가산 카나파니가 한 말처럼 하나의 대의(大義)이다. 그리고 그 모든 대의는 요르단 강에서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을 향한 귀환의 대행진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귀환의 대행진에 나서는 그날을 염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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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나크바가 일어난 그 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