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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Jan 11. 2021

토끼 인형

명절 2부작

꽤 오래전부터 명절 연휴는 우울한 나날이 되고 있었다. 직업이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명절의 우울함은 지속되곤 있었다. 그때문인지는 몰라도, 종종 명절은 내게까지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집안들이 설을 막 쇠려고 할 즈음, 그 때 명절은 끝이 났다.

 

홀로 성묘를 떠나는 길이었다. 고가도로 밑에는 항상 뭔가를 팔던 아주머니. 오늘도 있었다. 어떨 땐 먹을 것이었다가, 낚시 도구, 물놀이 용품. 산타 할아범 등. 아마도 계절을 타는 잡동사니를 팔았다. 내게 그것들이 필요 없었기에, 쓸데없는 것을 팔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차가 막히지 않았더라면, 오늘 저녁 만날 이들이 조상들 말고도 더 있었더라면 오늘도 그 아줌마는 쓸데없는 것을 팔고 있을 것이었다. 오늘은 낚싯대 끝에 흰 토끼 한 마리가 버둥버둥거리고 있었다. 원래는 걸어 다니는 녀석이었겠지만, 운전하는 녀석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낚싯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였다가,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가 열 장도 더 넘게 들어 있고, 웃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뀔 무렵, 토끼를 키웠다. 할머니가 사 온 토끼들은 두 마리로, 황갈색과 잿빛 토끼 한 마리씩이었다. 황갈색 토끼가 좀 더 일찍 죽었던 것 같고, 잿빛 토끼는 아마도, 집안 어른들의 권유로 풀어준 것 같다. 그 시절엔 어째서 지금과 같은 고집이 없었을까. 풀어 줬다기보단, 지금 생각해 보면 내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토끼는 어디론가 뛰어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줌마는 황갈색 토끼와 흰 토끼를 팔고 있었다. 황갈색은 어린 시절 키우던 녀석 중 하나였지만, 왠지 추운 겨울날 얼어 죽었다던 그 아픈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살아 있던 그 녀석보다 이쁘지도 않았다. 흰 토끼는 키워 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불길한 빨간 눈이 아니라 까만 눈이라 맘에 들었다. 국민학교 1학년, <꾸러기 수비대>의 새초미가 미인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왠지 머뭇거렸던 건, 그 빨간 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열고 왼 손을 높이 뻗자, 아줌마가 신이 난 듯 뛰어 왔다. 하얀 거 주세요. 아줌마가 꺼내기도 전에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는데, 언제 그랬던가. 책을 읽고 있다가 어머니가 밥 먹어라, 하고 불렀을 때. 막 커피를 마시려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을 때. 그럴 때처럼 아주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있었다. 아줌마가 오자마자 난 그 녀석을 받아 조수석에 휙 던졌고, 집에서 그놈이 내 좁은 방에서 아장아장 뛰어다닐 것을 생각했다.

 

토끼 두 마리를 기르던 시절.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는 청과물상이 있었다. 집에서 토끼들은 배추를 먹었고, 항상 더럽다고만 생각했는데 토끼의 똥은 그렇게 크지도, 그렇게 냄새나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다. 녀석들은 택배상자만한 종이 상자에, 바닥에 신문지가 깔린 그 위에서 살고 있었다. 녀석들을 위해 어느 날 나는 청과물상에 들려서, 상추 쪼끔만 주세요,라고 쪼그만한 입으로 부탁했고, 상 추 몇 장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청과물상에서 상추를 얻아 왔다는 사실은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도 알려졌고,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꽤나 귀여워했거나 재미있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으로 나는, 토끼를 먹일 상추 한 두 장을 어린아이에게 나눠 줄 선의는 세상 모든 이들이 갖고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믿던 시절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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