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mas Apr 23. 2024

그리스인 조르바_자유와 인간실격의 어딘가

조르바 이놈...딱 한 대만 줘팼으면.

언젠가, 유퀴즈에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나와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추천했었다.

제목은 많이 들어 본 꽤 유명한 책에, 성공한 여성 CEO가 추천하는 책이라 바로 e북을 주문한 게 n개월 전..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 묵혀 두다가 읽기 시작했다.


아직 초반을 읽고 있는데... 이거 더 읽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하면....주인공 조르바가 너무 기이하고, 열 받고, 한 대 패고 싶은 인물이기 때문.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왓챠피디아에서 여러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이 책에 등장하는 '조르바'라는 인물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실은 강간에 살인에 도둑질에 온갖 기행을 일삼는 기인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읽어보니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치솟는 살의를 참느라 허벅지를 10번을 꼬집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쟁점 두 가지


1. 인간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관념을 내던진 것을 '자유'로 칭하는 것이 옳은가?


책 소개나 주인공이 서술하는 바에 따르면 조르바는 자유의 화신 그 자체다. 도자기를 만들다가 자꾸 손가락이 걸려 도자기가 망가지자 자기 손을 잘라 버리고, 자식 새끼들이야 배고프다고 빽빽 울건 말건 악기를 치는 데에만 온갖 정성을 쏟는. 

그런데 더 혼란스러운 건 배울 만큼 배우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품고 노동의 현장으로 떠나는 지식인 주인공이 그런 조르바를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라며 칭송한다는 점..

책 속에 파묻혀, 여러 관습과 지켜야 하는 사회적 의무 등등의 껍데기에 가장 두껍게 싸여 있는 인물의 입장에서 '그래 저것이 자유지, 저것이야말로 내가 본받아야 하는 삶의 불꽃 그 자체다' 하고 느꼈던 맥락임은 알겠다.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와 같은 말들은 제법 멋있다. 이런 대목은 나에게도 울림이 없진 않았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하는 이유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10가지는 찾고 나서야 겨우 시작하는 답답한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이유 없이 그저 하고 싶어서 하고, 별 의미도 없는 일에 몸을 던지고, 지나가다 만난 사람을 따라 훌쩍 떠나곤 하는 자유로운 삶이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부인이나 자식을 대하는 무책임한 태도나 성실한 사회의 구성원이 지켜야 하는 사회적, 도덕적 책무들을 우스운 것으로 여기고 자유라는 미명 하에 떵떵거리는 건 솔직히 보기 불편했다.  

나중엔 별의별 기이하고 황당한 짓들을 벌인다는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2.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해서 읽어야 하는가? 작품성과 도덕성은 별개로 봐야 하는가?


물론, 문학은 시대상을 반영해서 읽고, 평가해야 한다.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른 남성의 권위, 여성에 대한 억압적 시선 등이 반영된 거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각자가 느끼는 불쾌함까지 '시대상이 그러했으니까' 흐린 눈으로 넘어가고, 그럼에도 이 책은 걸작이야!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글쎄, 현대의 관점에서의 평가와 과거의 관점에서의 평가는 분명 잣대가 다르니 달라질 수밖에 없고 어쨌든 현대의 내가 느끼는 불합리함까지 작품성으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필욘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작품성과 도덕성은 별개로 봐야 하는가? 이 또한 대학에서 문학 비평을 할 때부터 계속 화두가 돼왔던 주제이고, 어느 쪽이 맞는지 답은 없다. 비평가들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하겠지만, 과도한 도덕성의 파괴가 문학적으로 완성된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작품성이 워낙 뛰어나서 여타의 도덕성의 결여가 묻히는,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설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사람을 죽였다.)




사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주아주 일부만 읽고, 중간에 느낀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보는 거라, 다 읽고 난 뒤에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 '왜요'로 가득찬 나라는 인간에게 어떤 부분에선 또 귀감이 될 조르바의 면면(?)이 있을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