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다
타시기는 늘 곧았다.
옳은 일, 정의로운 일, 원칙적인 일을 위해 싸웠다.
그 완벽한 태도 속에는
늘 스스로를 다그치는 불안이 있었다.
그녀는 '정의로운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 정의가 사람을 향하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자신조차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에 따르면,
비합리적 신념은 감정을 왜곡한다.
특히 '나는 반드시 옳아야 한다'는 생각은
자기비판과 불안을 낳는다.
타시기는 언제나 완벽해야 했다.
감정은 뒤로 미루고, 실수는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드시'라는 기준은
그녀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정의는 타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상처 입히고 있었다.
리처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에 따르면,
감정은 사건에서가 아니라,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비롯된다.
타시기에게 '패배'는 곧 '무능함'이었고,
'감정 표현'은 '약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해석의 문제였다.
패배는 배우는 과정이고,
감정은 인간다움의 증거다.
그녀가 스스로를 조금만 다르게 해석했다면,
그 완벽함은 따뜻함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에 따르면,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야말로 진짜 강함이다.
타시기는 정의의 언어로 말했지만,
그 마음속에는 늘 상처받기 싫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녀가 진짜로 강해진 순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였다.
완벽하려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책임지려는 사람이 더 멀리 간다.
우리도 타시기처럼
'옳은 사람'이 되려다 마음의 여유를 잃을 때가 있다.
하지만 완벽함은 관계를 지켜주지 못한다.
진짜 정의는 틀림없는 판단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타시기가 완벽하려다 진심을 놓쳤던 이유는,
정의가 감정 위에 있던 세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