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클럽, 다정함을 배우는 시간

나의 첫 번째 마음 친구, 아트퍼스트 에세이 쓰기

by 민보

처음에는 내 안의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이었다. 그게 말이든, 그림이든. 형태보다는 표현 자체가 중요했다. 마침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스케치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시간씩, 펜을 무기처럼 움켜쥐고 종이와 마주했다. 백지 위에 선을 긋는 것이 어쩌면 이토록 어려울 수 있는지. 내 머릿속 풍경은 선명했지만, 종이 위에 옮겨진 것은 낙서처럼 보이는 잔상에 불과했다. 실력의 부재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의 압도적인 무게였다. 형태와 선, 색감 사이에 방황하다가 결국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우연히 <사단법인 오늘은>에서 주최하는 아트퍼스트라는 청년 문화예술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평소 경쟁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획일화된 경쟁 사회 속에서 예술활동을 통해 청년들을 보듬는다는 기획 의도가 유난히 다정하게 느껴졌다. 연극, 달리기,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 가운데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정문정 작가님과 함께하는 에세이 수업이었다. ‘글쓰기를 통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말하다 보면 분명 우리는 어제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습니다’ 수업 소개글에 적힌 이 문장이 마음 속 깊이 남았다. 그날 밤, 용기를 내어 지원서를 작성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열다섯 명의 자리를 채운, 그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새로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란 설렘이 컸던 만큼 실망도 깊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에서 에세이 강좌를 찾아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전혀 기대하지 않은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통 나는 낯선 번호는 받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전화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사무실은 조용했고, 그 고요함을 깨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트퍼스트 담당자입니다. 에세이 수업에 자리가 났는데, 참여 가능하실까요?” 목이 메었다. 처음으로 떨어진 오디션에 다시 기회가 생긴 배우처럼. “네. 가능합니다.” 라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곧이어 문자로 받은 오픈 카톡 링크를 기쁜 마음에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나는 에세이 수업의 두 번째 회차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첫 과제는 좋아하는 에세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나는 류시화 작가의 「직박구리새의 죽음」을 골랐다. 장면을 묘사하는 힘이 탁월해 책장을 잠시 덮고 눈물을 흘렸던 글이었다. 수업에 모인 사람들도 저마다의 에세이를 들고 왔다. 여행, 이직, 상실, 연애… 에세이란 결국 '살아낸 시간'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서야 알게 됐다. 수업은 흥미로웠고, 토요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수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한 달간 가장 자주 떠오른 감정을 써오는 과제였다. 나는 선택한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그 감정을 골랐나요?”

“아무 의욕이 없어요. 어떤 일도 시작할 힘이 없었어요.”


내가 대답하자 선생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무기력한 사람이 주말에 지금 이 수업에 나와 있을까요?”


순간, 머릿속에서 '딩!'하고 종소리처럼 울렸다. 그 순간,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과소평가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치고 힘들었던 건 맞지만,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살아내고 있었다. 격주로 에세이 수업을 찾아오는 나, 감정을 글로 정리해보려 애쓰는 나—그 모든 순간들이 무기력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문득, 내가 말했던 '무기력'은 혹시 책임이나 시도 앞에서 한 발 물러나기 위한 내 방식의 방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나름의 이유, 혹은 핑계.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깨달음을 남긴 채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걷기 좋은 날씨이니 근처 경의선 숲길 산책을 권했다. 날이 좋았던 가을날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바로 가긴 아쉬워 숲길을 혼자 걸었다. 집에 가야지 마음먹을 무렵, 에세이 단톡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근처 카페에 있으니 시간 되는 분들은 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자고. 메시지를 보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낯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날의 감정을 혼자만의 생각으로 남겨두기에는 수업에서 얻은 깨달음이 컸다. 카페 문을 열자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수업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니 내적인 친밀감이 조금 생겼다. 그렇게 카페에서 나온 뒤 함께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에세이 수업, 취미,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그 날 모인 사람 모두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발견했다. 언젠가 함께 등산을 가기로 약속을 남긴 채 해가 기울 무렵 헤어졌다.


그 이후로, 토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감정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는 조금 더 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 과제로 최근 가장 기뻤던 순간을 담은 A4 두 장 분량의 에세이를 제출해야 했고, 나는 몇 해 전, 혼자 노고단에 올랐던 겨울의 이야기를 꺼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어오던 그날, 새하얀 설원 위에 혼자 서 있던 순간의 고요함과 그 후에 맛본 따끈한 붕어빵의 달콤함이 묘하게 대비되었던 기억이었다. 작은 가게에서 홀로 맛보았던 그 붕어빵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긴 여정 끝에 만질 수 있는 행복 같았다. 나는 그 날의 풍경과 감각, 혼자만의 시간이 선물했던 고요함을 글로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합평 시간.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이 소중하게 쓴 글에 의견을 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 경험하는 합평이라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수업을 차분하게 이끌어주신 덕분에, 조심스럽고 어색했던 첫 합평 시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던 수업이 어느덧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겹겹이 쌓아왔던 감정들이 많았기에 마지막 수업은 더 아쉽게만 느껴졌다. 선생님은 각자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했다. 책 표지 안쪽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다. 책 한 권, 이름 한 줄, 그 짧은 선물 안에 전해지는 마음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에세이 수업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아쉬움을 담아 롤링페이퍼를 남기며, 함께 했던 계절을 마음속에 고이 접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수업은 끝이 났지만,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듯 에세이 모임을 이어 나가자는 제안으로 ‘한량모임’이 탄생했다. 선생님은 없지만, 우리는 둘째, 넷째 일요일마다 모여 수업처럼 각자 쓴 글을 나누고 합평하는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덧 2년째, 계절이 여덟 번 바뀌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보듬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름은 한량이지만, 그 안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글과 마음을 읽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따뜻한 이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며, 나는 처음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사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였을 것이다.

IMG_8877.jpg?type=w3840 첫 에세이 수업 장소


작가의 이전글낯선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