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주제를 보자마자 마음이 가벼워진다. "season"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세상은 흉흉해도 그 시즌이 돌아오면 그 시기의 무드와 문화, 정서가 소복한 흰 눈처럼 조용히 감싸 안아주니 말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코로나19 전파 세력은 학교마저 뒤덮었다. 학교는 안전하다, 아이들은 코로나19에 강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 확진자와 같은 시간에 동선이 겹친 학급은 바로 귀가 조치하고 전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간다. 검사 결과가 빨리 나와서 오전에 받으면 당일 저녁에 문자가 온다. 빛의 속도 뒤에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진의 노고가 꽉 차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제 동선이 겹쳤다며 검사받으러 가란 연락을 받고 선별 진료소를 찾아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대중교통 이용하지 말고 자차나 도보로 이동하고 결과 나올 때까지 외출금지, 자가 격리하라는 문자에 유배당한 느낌이 들고 혹시 나로 인해 누군가 감염될까 싶어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밀접 접촉이라는 문자에 성인이 이럴 정도인데 확진된 학생이나 검사받는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어 별 일 아니라고 달래면서 새로운 학급 활동을 만들어서 신경을 돌리고 있다.
다시 전면 등교가 철회되고 3분의 2만 등교하는 와중에 불안한 학교 일상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어느 학교 어느 반은 확진 학생이 다닌 학원에 같은 시간 겹친 아이들을 검사받도록 보냈더니 교실에 학생 4명만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확진 학생이 나와서 자가격리, 원격학습으로 전환조치했더니 어떤 학부모님은 왜 아이들 학습권을 침해하냐며 학교에 항의하는 일도 있다. 어느 학교는 학부모에게 00 학원, 00 어린이집 등 초성으로 안내하며 확진으로 해당 학생들 돌려보낸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 학원이나 그 어린이집, 그 미술학원 측에서 불명예스럽고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받았다며 학교를 고소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반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종업식이 있는 2월이지만 12월만 되면 학급살 이를 마무리해야 될 것 같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눈이 내리면 교실에서 아이들과 보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The snowman>이라는 40년 전 만들어진 대사 없는 만화영화다.
내가 초등학생 일 때 집에 <팝송 대백과>라는 전화번호부 같은 두꺼운 책이 있었다. 거기에 Wham! 웸의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기타 악보로 그려져 있었다. 음표가 그려진 오선과 오선 사이에 영어와 한글로 된 노래 가사가 두 줄로 적혀있었다. 영어 줄은 건너뛰고 한글 가사를 읽는데 우리말에서 볼 수 없는 발음이라 기억에 남고 외우기 좋았다.
<팝송 대백과> 표지에는 듀엣이었던 웸이 있었는데 조지 마이클을 보고 이렇게 느끼하면서 예쁜 남자가 있구나, 외국인은 다 이런가 싶었다. 시간이 흘러 조지 마이클은 죽었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흥얼거린다. 노래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걸 보면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한글로 배운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 노래에서 빠지면 섭섭한 캐리 언니.. 머라이어 캐리는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노래 하나로 엄청난 돈을 지금도 벌고 있을 것이다. 봄만 되면 사람들이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찾아 들어서 벚꽃 연금을 벌듯이 캐리 언니는 전 세계인으로부터 클스 연금을 받고 있다.
초등학생이 학예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 <러브 액츄얼리>도 크리스마스 대표 영화다. 종종 연말에 영화관에서 재개봉할 정도로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찾는 영화가 되었다. 저 깜찍한 꼬마 아가씨가 노래하며 "All I want for christmas is..." 하다가 "you"를 부르는 순간, 그 아이를 짝사랑하는 드럼 치는 남자아이 샘과 한마음이 되어 여자아이의 손가락만 봤었다.
수년 전 영화관에서 이맘때 봤던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러브 액츄얼리>를 만든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이 영화를 만든 워킹타이틀 필름 제작사는 또 다른 최고의 영화 <어바웃 타임>을 만들었다. 삶이 언제나 죽음과 동행하고 있다는 진지한 사실을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낸 영화라서 묵은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생각나는 영화다. 덧없는 일생 같았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엉망이던 결혼식이 열린 영화 속 어느 하루가 좋았다.
시즌 영화, 시즌송을 떠올리니 시즌 시도 한 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오늘 고른 시는 루이스 글릭의 <눈풀꽃>이다. 눈풀꽃은 수선화과 알뿌리 식물로 추위에 잘 견디고 봄에 하얀 꽃을 피우는 유럽이 원산지인 꽃이다.
류시화 페이스북 갈무리
이제 2021년이 열흘이 채 안 남았다. 깊고 어두운 겨울밤이면 별로 한 일 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싶어 자책감이 들고 새해를 마주하자니 서먹한 마음이 찾아온다. 겨울의 시즌 poet <눈풀꽃>을 읽으면 두려움과 회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질 용기를 얻는다. 한가할 때 계절별로 시즌 무비, 시즌송, 시즌 시를 마련해놔야겠다. 시간에 쫓기고 일상이 이리저리 흩어져 나라는 존재감이 희미해질 때 시즌의 시와 노래와 예술작품이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가뿐하게 들어 올려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