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끝나고 원격수업으로 개학하는 날이었다. 한 달 만에 만난 아이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한 명씩 돌아가며 방학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이나 하고 싶었던 말을 발표했다. 00이가 자기 차례에서 키우던 거북이가 다른 세상으로 갔다고 담담히 말하더니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가끔 줌 수업에서 종종 등장했던 그 거북이었고 00이가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다. 줌 수업을 하다 보면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아이들은 자기의 보물이라며 안고 와서 카메라 앞에 들이대고 자랑했다. 이름을 소개하고 만나게 된 사연이나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각별한 사랑을 담아 쏟아냈다.
원격이라 등을 쓰다듬어 줄 수 없는 아이들은 00이가 우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다 같이 00이를 위로하는 말을 해주자고 제안했더니 거북이가 저세상에서 편안하게 잘 지낼 거라는 말, 나중에 다 같이 만나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 네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랄 거라며 거북이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었다. 앵무새를 키우던 다른 아이도 겨울 동안 추워서 동사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도 같은 아픔을 겪었으니 함께 힘을 내보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었다. 열대어를 키우던 아이도 한 마리 남고 모두 죽었다며 쓸쓸한 소식을 보태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반려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치러야 할 것 같았다.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들은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고 사람에게 맞춰진 환경에서 동물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는 힘들다. 차곡차곡 정을 쌓아가는 것은 익숙한데 정해진 이치로 삶과 죽음으로 나뉘는 이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서툴고 어렵다.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숙고는 육식 문화에 대한 반성으로 확장된다. 공장식 사육으로 발생하는 동물권 문제와 함께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 문제, 목초지 확보를 위한 과도한 벌목이 문제 되므로 육식보다 채식을 하자고 말한다. 눈이 달린 것은 먹지 않는다는 어떤 베지테리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얼굴이 있는 건 먹지 않는다는 채식인도 있었다. 채식한다고 하면 식물도 생명인데 그건 왜 먹냐며 말꼬리를 잡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선생님은 채식을 하나요?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큰다는데요? 육식은 나쁜 건가요? 선생님 저는 맛있는 고기도 먹을 거고 우리 강아지도 사랑할 거예요. 머리 아프게 우리에게 그런 거 물어보지 마세요. 나와 내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멀어질수록 타인과 가축의 죽음은 사물처럼 밋밋해진다. 그 반지름의 어디쯤에 서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