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드로잉

나팔꽃

by 혜윰

#43일차

뒷산을 갈 때마다 나무와 풀만 가득해 조금 아쉬웠다. 산책코스를 바꿨더니 그 길에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구청에서 뒷산은 인적이 드물고 도로 옆 인도는 사람이 많이 다녀 이곳에 집중적으로 화단을 조성해 놓은 것 같다. 일부러 심은 꽃과 산줄기에서 타고 내려온 들꽃이 만나 꽃밭이 화려했다. 오전 산책에서 예쁜 덩굴 사이 보랏빛, 자줏빛 작은 얼굴을 내미는 꽃을 만났다. 폰 앱을 켜서 꽃 이름 검색에 들어갔다. 세상에. 이게 나팔꽃이구나. 꽤나 시끄러운 군대 기상나팔소리가 연상되어 크기가 클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작고 여리고 하늘하늘하다니... 하늘을 능멸한다는 독한 이름의 능소화도 그렇고 꽃 이름이 생김새와 정반대로 호전적이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작명 센스 꽝인 자의 잘못인가. 그에게 이름을 맡긴 사람이 잘못인가. 아니면 나팔소리에 대한 내 고정관념 잘못인가. 그 당시로 돌아가 이름이 지어진 사정을 들어보고 싶다.


과학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식물을 배웠다. 뿌리에서 누린내가 나서 노루오줌, 불에 넣으면 꽝꽝 소리를 내며 타서 꽝꽝나무, 닭장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어서 닭의장풀, 고양이들이 먹는 풀이라서 괭이밥, 곰이 먹으면 취한다고 곰취.. 이름을 하나씩 소개하니 줌 화면 속 아이들이 하하호호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이름 안에 존재감이 가득하고 긍정의 기운이 뿜어 난다. 오줌 냄새가 나서 오줌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오? 기분 나쁘오? 오줌이 나쁘오? 오줌 안 싸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오줌 안 싸고 모으면 큰일 나오! 노루오줌을 의인화해서 성대모사(노루오줌이 말을 하면 어떤 목소리로 할 것 같아?)하면서 아이들과 재밌게 공부했다.


세계의 이름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영원히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이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할 때 조심스럽고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허락 없이 대표가 되어 꼬마 신사 숙녀들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얼떨결에 맡게 된 것 같다.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신뢰와 매력을 지녔을 때 우리는 새롭게 열리는 세계에 대해 호기심과 열망을 갖게 된다.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11살 어린 하얀 피부에 몸이 약한 젊은 엄마였다. 아들이 귀한 집이었다고 했다. 첫아들을 사산하고 딸만 줄줄이 낳았다고 했다. 세 번째까지는 그럴 수 있지 했다. 네 번째 내가 세상에 나오자 아빠는 무척 실망했다고 한다. 너무 속상해서 출산의 고통에서 갓 벗어난 엄마를 병원에 놔두고 혼자 택시 타고 집으로 가셨다고 했다. 택시 안에서 한숨을 푹푹 쉬는데 저녁 퇴근길에 눈이 엄청 많이 내려 길이 막혔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눈은 처음 봤다고.. 저기.. 아버지? 저 태어날 때 이야기하시는 거 맞죠? 확인하고 싶었다.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지만 들을 때마다 나는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 기뻤다는 뻔한 축복의 말은 고사하고 실망했다는 말을 (이제 와서 뒤엎기엔 너무 진실이라) 아무렇지 않게 하시며 기억에 남는 건 홧김에 탄 택시에서 본 펑펑 내리는 눈이라니..


아무튼 나는 태어날 때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나는 자유로웠다. 부모님은 아무 기대 없이, 의도하지 않은 적극적 자유방임형 가정교육을 하셨고 나는 사소한 감시나 통제도 받지 않았다. 나에게 관심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2 때 처음으로 일탈행위를 해봤는데 부모님이 전혀 모르시는 걸 알고 일탈이란 게 별게 아니구나 싶어 그만뒀다.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와 방바닥에 누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는데 엄마가 무심결에 혼잣말처럼 "넌 정말 공짜로 키운 거 같아. 아무 힘이 안 들었어" 했다.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 "거봐, 엄마는 나한테 관심 없지?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네 번째 손가락은 안 아프지?" 분해하며 말대꾸했었다.


그때는 그게 칭찬인지 몰랐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부모님은 자세히 묻지 않으셨다. 지구가 매일 시속 13000km로 돌고 있지만 못 느끼듯이 부모님의 나에 대한 믿음은 지구의 자전과 같다.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혈혈단신 고향을 떠나 아무 밑천 없이 생계에 뛰어든 3대 독자 중년 남자, 손자가 있어야 대를 이을 수 있다는 1900년 초에 태어난 할머니, 그 바람을 꼭 이뤄야 이 가문에 시집온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몸이 약한 여자의 처지와 입장.. 그 당시의 사회 풍속..우리 가족의 특수한 상황..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나이가 든다는 거, 나쁜 게 아니구나. (호주제가 잘못했네.)




매거진의 이전글1일1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