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차
2차 백신을 맞고 병원을 나서며 타이레놀을 사러 약국에 들렀다. 약사가 누가 요즘 여기서 그걸 찾냐는 듯 대답도 귀찮아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는 길, 화단에 붉은 칸나가 오롯이 서있다. 고리만 달면 그대로 브로치가 되고 귀걸이가 되기에 손색없어 보였다. 칸나 앞을 떠나지 못하고 붉은 꽃잎에 푹 빠지니 좀전의 민망함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친절해지면 좋을 텐데...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다짐한다. 아이들에게 친절하자. 친절한 말과 행동은 부드러우면서 강한 힘과 치유 효과가 있다. 친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만 검색해 봐도 수십 개의 친절에 대한 명언을 찾을 수 있다. 톨스토이는 친절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모든 비난을 해결하는 열쇠라고 했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마법도 부린다. 지혜로운 랍비들이 외우고 공부하는 경전인 탈무드에서는 똑똑한 것보다 친절한 편이 낫다고 단호히 친절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공자님이 친절은 잊지 말고 모욕은 잊어버리라고 하셨지.
내가 공감과 경청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힘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회복적 서클을 통해서다. 어제 회복적 서클을 만든 도미닉 바터 초대 강연이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깊은 눈망울, 따뜻한 목소리의 50대 남자를 보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존경하는 사람을 보면 닮고 싶어 진다.) 그의 이야기 중에 응급상황에서 30초 만에 전화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스트레스와 외로움, 갈등 상황, 앞에 앉은 상대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때 잠시 그 자리를 피해 나와서 연락할 사람이 있는가.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 평범한 대화 말고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함께 존재해주는 사람,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공감적 지지를 보내는 그 사람과의 연결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내 앞의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할 뻔한 위험에서 구조될 수 있다. 오늘 만난 약사는 지지해줄 사람이 없어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지 모른다.
SNS, 단체 대화방은 우리가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외롭다.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다. 무수한 독백으로 어지럽다. 관계에 질렸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연결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친절은 마음을 열고 시간을 들여 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내일 내가 보이는 작은 친절이 절망에 빠진 어느 학생에게 점멸하는 빨간 구조신호로 반짝일지 모른다.
<칸나는 붉다>에서 시인은 서로에게 열정을 다했던 두 사람이 어긋난 대화로 시멘트처럼 관계가 경직되어 버린 상황을 말한다. 적대감으로 얼굴과 생각이 굳고 몸이 차가워져 몸살감기약을 사러 갔다. 약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칸나를 봤다. 상대에게 품은 적대적인 에너지가 용암처럼 검붉은 칸나 속으로 빨려 들어가 용해되고 다시 연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칸나가 친절한 손길로 몸살 나으라고 따뜻한 불을 지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