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일차
이 집에 십 년 넘게 살고 있는데 아래층 아주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 대해 나이도 이름도 모른다. 단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아주머니와 내가 정반대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능력은 식물의 말에 귀 기울이며 소통하는 것이다. 웬만하지 않으면 죽기 힘들다는 다육식물, 관엽식물도 우리 집에만 오면 기운을 못 차린다. 집에 수맥이 흐르면 예민해지고 건강이 안 좋다는데 혹시 수맥 탐지기라도 가져와 검사해봐야 되는가 싶었다.
반대로 아래층 아주머니가 키우는 화분은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데도 하나같이 싱싱했다. 아랫집 앞에 놓인 화분이 하나둘씩 늘어가더니 해가 갈수록 화단의 규모가 상당해졌다. 출퇴근하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식물들이 어찌나 생글생글 행복해 보이던지... 그래 화분 키우는 보람이 저런 것이지, 더 이상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식물에 대한 몹쓸 짝사랑을 그만두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몇 개 안 남은 우리 집 화분 중 비교적 잘 지내던 산세베리아가 언제부턴가 비실비실해졌다.
죽음의 전조를 느낀 나는 부리나케 화분을 들고 뛰어내려가 아랫집 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는 놀란 얼굴로 흐물흐물해진 산세베리아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강적이 나타났구나! 하는 표정으로. 마이너스의 손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응급치료를 받으러 떠난 내 화분은 몇 개월 뒤 초록빛 생기를 되찾았고 새로 잎이 번식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을 거치면 죽어가는 식물이 부활하고 회춘하는구나. 잘 가라 산세베리아야! 널 위해 그만 놓아주마.
아래층 아주머니는 식물의 아름다움을 소유하지 않고 집 앞에 늘어놓아 그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있는 것이 주는 생생한 충만감을 공유했다. 아주머니의 아량으로 매일 출근할 때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면 화단에 사는 생명들도 옷깃을 여미며 겨울채비를 나선다는 것도 알 게 되었다. 마치 골목이 어둑해지면 뛰놀던 아이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다 하나둘 집으로 사라져 길이 텅 비고 허전해지는 것처럼.
고상하고 청초했던 가을꽃들이 하나 둘 뚝뚝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에 메말라가던 줄기가 갈색으로 변색되어 볼품 없어진 화분. 어느 방향으로 보나 죽은 게 분명했다. 왜 안 치우실까? 바쁘게 그 앞을 지나며 그런 의문을 한두 번 가진 뒤 화분은 관심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겨울이 지나 이듬해 봄이 되자 그 황무지 같던 화분에서 고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화분의 존재가 그 자리에게 계속 있던 것을 알아차렸다. 제 몸의 물기를 모두 몸 밖으로 내보내고 최소한의 것만 남긴 채 혹독한 추위를 잘 버텼구나. 생명이 정지된 무위의 시간을 보낸 줄 알았는데 실은 깊은 자기 내면의 여행을 떠나 있었구나.
앤서니 스토는 <고독의 위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행복을 좌우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제로 자신의 내면세계와 접촉하는 고독한 시간이 있어야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혼자인 시간을 통해 지혜와 용기를 얻고 불행과 맞설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겨울은 필연적으로 모든 생명에게 고독의 시간을 안겨주는 게 아닐까 싶다. 하루 중에도 고독의 시간이 있다. 내겐 지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지어먹고 잠들기 전 잠깐의 시간이 그렇다. (퇴근하고 육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혼자인 시간이 없어 그토록 힘겨운 것이다.)
한낮의 교실은 다음 수업에 대한 준비로 분주하다. 수업할 때 교사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수업을 풀어가고 때때로 들어오는 질문에 답하고 시간에 맞춰 계획한 내용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열두 개의 결정을 해야 될 때도 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학교 업무를 처리하며 동시에 다음 주 일과를 조정하고 수없이 많은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럴 때 의식적으로 호흡을 세 번 하면 치열한 일상이 낯설어지며 고요와 고독의 순간을 맞게 된다.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잠깐 사이에도 멈춤의 시간이 있고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지금 여기 이곳으로 돌아오는 마법이 일어난다.
퇴근길 집에 들어오는데 일일초 한송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꽃이 매일 한 송이씩 끊이지 않고 피어서 일일초日日草 라고 부른다. 루소는 어머니와 산책하며 이 작은 꽃을 처음 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산에 가면 이 꽃을 찾아 어머니를 추억했다고 한다. 루소 또한 고독한 산책자였다.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고 자신의 참모습을 수용하는 내적 성찰을 기록한 책이 그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기쁜 일, 슬픈 일, 울다 웃다, 미웠다 사랑했다 그런 분주한 일들 사이에도 잠깐의 공백이 있고 그 틈에서 숨을 쉬고 혼자인 시간 속에서 나답게 사는 힘을 채운다. 그 힘이 포기하고 싶은 불행을 견디게 하고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