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고통 없는 성장 없고

by ninabsch




1. 눈이 퉁퉁 부은 채 출근 시간 30분 전에 일어났다. 어젯밤 야근을 했어도 일과는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핸드폰 화면에서 'ㅇㅇㅇ 팀장님' 여섯 글자를 볼 때면 긴장하는 건 여전했다. 어제는 무사히 넘겼지만 오늘은 또 왕창 깨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뚝이처럼 금방 일어서는 일이 중요했다.




18살 때 의류회사 디자인팀에서 인턴십을 하며 부장님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 나는 부장이라는 직책은 얼마나 어렵고 또 고충이 따를지 역으로 헤아려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려고 했다. 역지사지는 아직도 필요한 것 같다. 6개월 어영부영 지내다가 나갈지도 모르는 인턴에게 커뮤니케이션 기본기를 가르치시는 것부터 일을 더 주시려고 하는 건 마음과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리더십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으면 뜻이 있어도 잘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장님조차도 나더러 좋은 팀에 들어갔다고 하시질 않았나. 부서 사람들이 ㅇㅇㅇ 팀장님 팀이라고 하면 '어후 무서워'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 꿀만 쏙 빼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2. 한 달 중 가장 바쁜 날, U+1 월마감일이었다. SAP 프로젝트의 여파로 한 달 내내 마감을 쳤던 지난 달에 비하면 거의 정상화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나적만에 해야했을 A/R clearing을 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말레이시아에서 보내온 unallocated incoming list에는 우리 부서 대리점들이 빼곡했고, 마음은 급한데 컴퓨터는 자꾸 white out(?) 상태가 되어 엑셀 파일 하나를 열 때마다 작업관리자를 드나들어야 했다.




17:59분에 Net off list를 보내고 나자 사수님한테 전화가 왔다. 이 일은 보통 두 달만에 익히는 일인데 니나님은 지금 4달째 익숙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오늘 보낸 clearing list에도 A 대리점 A/R을 11월분뿐만 아니라 12, 1, 2월 것까지 보냈고, credit을 종류에 따라 몇 월 A/R과 상계해야 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니나님 성향상 몰라도 잘 물어보지 않고 혼자 처리하는 것 같다고,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더 꼼꼼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도 이 일이 나한테 맞는 건지 모르겠고 답답했다. 언어를 배울 땐 1을 알려주면 2, 3, 4까지 보였는데 재무는 10을 가르쳐주면 간신히 5, 6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인턴 5개월차가 적성을 논하는 건 노력없이 성과를 바라는 안일한 심보일까. 나 자신한테 화가 났다.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나왔던 공부와 달리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또 경쟁하며 성과를 내야 하는 직장인의 일이라는 건 정말 다른 영역인 것 같다. 협업하고 섞이는 데 서툴다면 그만큼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일이라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업무를 멀티태스킹하는 게 어려웠다.




걱정인형이 되기보단 노력으로 극복하고 싶은데 우선은 답답한 마음을 풀 데가 필요했다. 우울해하다가 또 연습하겠지. 그렇게 언젠간 또 해내겠지. 아무도 대신 못 살아주는 내 인생 내가 살아야지. 맞는 말이어도 지적 받으면 기분이 언짢다. 하지만 애정어린 조언으로 새기고 바뀌려고 노력하겠지.




고통 없는 성장 없고, 두려움 없는 도전 없고, 쪽팔림 없는 사랑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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